[이창섭의 MLB스코프] '구원자' 라파엘 데버스, 보스턴의 선택을 받다
[스포티비뉴스=이창섭 칼럼니스트] 보스턴 레드삭스가 마침내 팬들이 기다리는 소식을 전했다. 이번 겨울 또 한 명의 프랜차이즈 스타를 놓쳤지만, 또 한 명의 프랜차이즈 스타는 놓치지 않았다. 라파엘 데버스를 11년 3억3100만 달러 계약으로 눌러 앉히는 데 성공했다.
2017년 20살에 데뷔한 데버스는 어느덧 다음 시즌이 끝나면 FA 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 FA 시장에서는 성적만큼 중요한 요소가 '나이'다. 이미 리그 정상급 3루수로 올라선 데버스는 27살에 FA가 된다는 것이 굉장한 장점이었다. 이 사실을 본인도 알고, 보스턴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양측의 연장 계약 협상이 난항을 겪었다. 데버스는 "1억 달러 이상 차이가 난다"고 밝혔다.
바로 어제, 데버스는 이번 시즌 연봉 계약에 합의했다(1750만 달러). 양측이 별다른 잡음 없이 마지막 연봉조정을 잘 마무리한 것은 일종의 청신호였다(반대로 연봉조정 재판까지 가게됐다면 적신호다). 보스턴은 장기 계약도 추진할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고, 실제로 다음 날 그 말을 실현시켰다. 한편, 데버스의 계약은 올해가 아닌 내년부터 시작된다.
보스턴은 확실하게 대우를 해줬다. 데버스의 계약 규모는 브라이스 하퍼의 3억3000만 달러(13년)를 넘어서는 역대 6위에 해당한다(1위 마이크 트라웃 12년 4억2650만 달러). 연봉 3000만 달러를 넘긴 3루수도 앤서니 렌돈(3500만 달러)과 놀란 아레나도(3250만 달러)에 이어 데버스가 세 번째다. 데버스 이전 보스턴 야수의 최대 계약은 2000년 매니 라미레스의 8년 1억6000만 달러였다. 보스턴이 얼마나 큰 결단을 내렸는지 짐작할 수 있다.
데버스는 보스턴이 14살 때부터 주시한 선수였다. 데버스를 처음 본 담당 스카우트는 "과대포장된 수많은 선수들 중 과소평가된 선수"라고 설명했다. 타격과 수비보다 인상 깊은 부분으로는 온 몸에 베인 '자신감'을 꼽았다. 이 자신감은 지금도 데버스의 가장 큰 무기다.
데버스는 보스턴에게 고마운 선수다. 단순히 성적 때문만이 아니다. 2014년 겨울, 보스턴은 파블로 산도발에게 5년 9500만 달러 계약을 안겨줬다. 그리고 이 계약은 팀의 흑역사가 됐다. 자칫 큰 낭패를 볼 뻔 했던 3루수 자리를 데버스가 곧 물려 받으면서 그나마 빨리 충격에서 벗어났다. 데버스가 없었다면 산도발 후폭풍은 더 심했을 것이다.
데버스는 2019년 156경기 201안타를 때려내면서 두각을 드러냈다(타율 .311 32홈런). 2루타 54개는 리그 최다 기록이었다. 22세 이하 타자가 단일 시즌 2루타 50개를 친 것은 역사상 세 번째였다(1996년 알렉스 로드리게스 54개, 2013년 매니 마차도 51개). 2021년 첫 올스타에 뽑힌 데버스는 지난해 2년 연속 올스타로 선정되면서 리그를 대표하는 3루수로 거듭났다.
보스턴이 데버스를 잔류시켜야 할 이유는 자명했다. 그러나 확신할 수 없었다. 그동안 보스턴은 유독 프랜차이즈 스타를 홀대했다. 배신감을 느끼고 떠난 선수들이 한 두명이 아니었고, 끝이 좋았던 선수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2014년 존 레스터는 보스턴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두 차례나 견인한 에이스였다. 레스터는 보스턴 선수로서의 자부심이 대단했다. FA 시장에 나오면 더 큰 돈을 만질 수 있었지만, 보스턴에 남고 싶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할 정도였다. 당시 레스터의 요구는 신시내티 호머 베일리의 1억500만 달러보다 1달러만 더 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보스턴이 처음 제안한 계약 규모는 4년 7000만 달러였다. 다시 생각해도 민망한 수준이었다. 보스턴의 최종 제안은 1억3500만 달러였지만, 시기가 늦었고 규모도 적었다. 결과적으로 레스터는 시카고 컵스와 6년 1억5500만 달러에 계약했다.
3년 전 겨울에는 무키 베츠가 보스턴을 떠났다. 베츠는 꾸준히 FA 시장에서 자신의 가치를 평가받고 싶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에 베츠와의 결별은 막을 수 없는 미래였다. 그렇다고 해도 보스턴 역시 협상에 적극적으로 임하지는 않았다. FA 시장에서 자신의 가치를 평가받고 싶다고 했던 베츠는, 다저스 이적 후 12년 3억6500만 달러 연장 계약을 발표했다. 잡을 여력도 없었지만, 잡을 마음도 없었던 것이다.
이번 겨울에는 잰더 보가츠가 있었다. 보가츠는 지난 시즌 중 연장 계약을 하고 싶다는 의지를 두 번이나 드러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스턴은 보가츠에게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누구보다 보가츠를 오래 지켜봤지만, 정작 보가츠의 가치는 제대로 매기지 못했다.
보가츠가 샌디에이고와 11년 2억8000만 달러 계약에 성공하자, 팬들은 더 이상 화를 참지 않았다. 현지 매체도 보스턴 수뇌부의 안일한 태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존 헨리 구단주도 이 화살을 피할 수 없었다. 데버스와의 연장 계약은 이 분위기를 타개하려는 목적도 내재되어 있다.
보스턴의 또 다른 문제는 최근 제대로 된 투자가 없었다는 것이다. 레스터를 내보내고 데려온 데이빗 프라이스(7년 2억1700만 달러)는 팀의 상당한 골칫거리였다. 현재는 크리스 세일(5년 1억4500만 달러)이 프라이스의 길을 걷고 있다. 지난 겨울 트레버 스토리(6년 1억4000만 달러)도 의아한 영입이었고, 이번 겨울 요시다 마사타카(5년 9000만 달러)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다. 베츠 트레이드도 박탈감이 더 컸던 것은 받아온 선수들이 아쉬웠기 때문이었다(핵심 유망주였던 지터 다운스는 지난 12월에 방출됐다).
데버스는 이러한 잔혹사를 끊어줄 구원자가 되어줘야 한다. 과거 산도발 구렁텅이에서 구해준 역할을 또 다시 해주길 기대하고 있다. 무엇보다 보가츠 없이도 팀을 이끌 수 있는 재목인지를 증명해야 한다. 보스턴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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