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과학 논문 '파괴적 혁신' 줄었다

21세기에 이르러 과학자은 패러다임을 바꾸는 연구보다는 기존의 성과를 잇는 연구를 더 많이 수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게티이미지뱅크

출판된 과학기술 연구 논문의 수가 지난 수십 년 동안 급증했지만 연구 성과의 혁신은 오히려 줄었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현대 과학은 다소 실패할 위험이 있지만 패러다임을 바꾸는 도전적인 연구보다는 기존 연구를 일부분 개선하는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러셀 펑크 미국 미네소타대 교수팀은 지난 60년간 발표된 논문 4500만 편과 특허 390만 개를 분석한 결과 20세기에 비해 21세기에 들어 논문의 파괴성을 나타내는 지표가 감소했다는 사실을 국제학술지 '네이처' 1월 4일(현지시간)자에 발표했다. 이런 경향성은 1976~2010년까지 출원된 특허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났다.

연구팀은 연구의 혁신 정도를 평가하기 위해 '파괴성(disruptiveness)'을 정량화할 수 있는 지표(CD 인덱스)를 개발했다. 파괴성은 기존의 아이디어에서 벗어나 그간의 연구 성과를 뒤집거나 쓸모없게 만들 정도의 새로운 발견을 말한다. 오랫동안 정설로 자리잡았던 천동설을 정면으로 반박했던 지동설이 대표적인 파괴적 연구 성과다. 지동설로 그간 천동설을 기반으로 우주의 변화를 설명하기 위한 복잡한 수식은 모두 쓸모없어졌다.

분석 결과 논문의 파괴성은 1945년에서 2010년에 이를 때까지 91.9% 감소했다. 분야별로는 사회과학 분야에서 감소폭이 가장 가팔랐고 기술 분야, 물리학 분야, 생명과학·의바이오 분야 순이었다. 연구팀은 1950년대 연구에는 '생산하다(produce)' '결정하다(determine)' 등 창조나 발견을 의미하는 단어를 많이 사용했지만 2010년대 연구에는 '개선하다(improve)' '강화하다(enhance)' 등의 용어가 많아졌다고 분석했다. 특허의 경우에도 1980년에서 2010년 사이 78% 이상 파괴성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연구 결과에 대해 이안 윈 미국 노스웨스턴대 박사과정 연구원은 "과학 트렌드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데이터 분석으로 조사해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다"고 평가했다. 

다만 다슌 왕 미국 노스웨스턴대 교수는 파괴성이 무조건 좋고, 기존의 연구를 잇는 점진적인 연구가 나쁜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2015년 미국 레이저 간섭계 중력파 관측소(LIGO)가 중력파를 최초로 관측한 것은 혁신적인 연구 성과로 평가받았지만 동시에 오랜 기간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발견할 수 있었기에 점진적인 성과로 평가받는다.

전문가들은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 과학계 변화가 생긴 이유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연구팀은 정확한 원인을 알기는 어렵지만 현재의 흐름에는 과학 기업들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일례로 1940년대보다 더 많은 연구자들이 기업을 운영하며 경쟁적인 환경이 조성됐고 연구 출판이나 특허 출원에 대한 이해관계도 훨씬 복잡해졌다. 그 결과 연구자들이 하나의 혁신적인 성과보다는 안전성을 택할 가능성이 높아졌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발표되는 과학 논문의 숫자는 분야를 막론하고 21세기 이르러 급증하는 추세다. 덴마크대 연구팀이 2010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950년 전 세계 과학계에서 발표된 과학 논문은 6만 편 수준이었지만 2000년에 이르러서는 100만 편으로 늘었다. 이런 경향성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1960~1970년대까지만 해도 발표 논문은 10편 이내로 과학기술 연구성과가 전무한 상황이었지만 2000년 처음으로 1만 편을 넘어섰고 2020년 기준 7만 6000여 편의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이 발표됐다.

[이영애 기자 ya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