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삼성과 LG의 ‘2023 신년사’[안승호의 PM 6:29]
그날 같은 공간에 있던 한 선배 기자의 목격담이다. 2001년 10월28일 늦은 오후 잠실구장 2층 로비. 관계자 대기실 구석에서 삼성 구단의 팀장급 직원 한 명이 눈물을 떨구고 있었다. 팀의 패전을 수없이 지켜본 그였지만, 그날만큼은 원통함과 허탈함이 ‘폭탄주’처럼 뒤섞여 치솟아 올라오는 감정을 차마 누르지 못했던 것이었다. 선배 기자는 그 자리에서 어떤 위로도 하지 못했다고 했다.
한국시리즈 6차전이 열린 날이었다. 정규시즌 승률 0.609(81승52패)로 가볍게 한국시리즈에 직행했던 삼성은 그해 정규시즌 승률 0.508(65승5무63패)로 3위로 포스트시즌에 올라온 ‘언더독’ 두산에 2승4패로 발목이 잡히고 말았다.
그해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은 1차전을 7-4로 잡았다. 지쳐있던 두산과 만남에서 앞서가기 시작한 그날 밤, 삼성 구단 관계자들은 ‘우승 축하’ 인사를 미리 받기도 했다. 구단 핵심관계자들은 바로 손사래를 쳤지만 이번만큼은 변수가 없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2차전이 열려야 했던 이튿날 대구에는 많은 비가 내렸고, 예정에 없던 하루 휴식은 시리즈 전체 흐름을 바꿔놨다.
1985년 전후기 통합 우승 이력은 있지만 프로 원년 이후 한국시리즈 우승은 한 차례도 없던 삼성이었다. 1990년대 이후로는 현장과 프런트 모두 ‘우승 압박감’이라는 또 다른 적과도 싸워야 했다. 2001년 한국시리즈 1차전 승리와 6차전 패배를 경험한 관계자들이나 근거리에서 이를 지켜본 사람들 모두 유별난 반응을 보인 이유이기도 했다.
지난 4일 LG는 ‘신년하례식’에서 또 한번의 새출발을 다짐했다. 김인석 LG 트윈스 대표이사의 신년사 화두 역시 ‘마지막’에 맞춰져 있었다. “2022년 우리 트윈스는 상당한 성과를 창출했다. 145경기(정규시즌 144경기 + 플레이오프 1차전)를 잘 했으나 마지막 3경기에서 다소 부족해 아쉬움이 남았다. 수많은 팬들로부터 3경기에서의 아쉬움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은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이사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지금부터 2023년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새 시즌을 맞는 구단 대표이사라면 능히 할 수 있는 얘기였다. 지난해 결과가 담긴 지표와 더불어 겨우내 체감한 얘기들을 섞으며 구성원들과 공감하려는 뜻도 엿보였다.
그러나 이날 행사에서는 표현을 많이 하고 덜 하고 차이일 뿐, 이같은 마음으로 새해를 맞은 사람이 김 대표이사만은 아니었다. 마이크를 잡은 누구도, 인터뷰를 하는 누구도, 우승 얘기를 습관적으로 이어갔다. 사실, 아주 새로운 분위기 또한 아니다. 지난해 이후로 LG 클럽하우스 안팎으로는, 산 정상 어느 지점에서 계곡 물이 흘러내려오듯 메시지가 전해오기도 했다. 수험생에게는 마치 합격을 해야 하는 대학의 절대적 ‘커트라인’ 같은 것이었다.
90년대 삼성이 그랬다. 삼성이 마주했던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스스로 만든 것일 수 있었다. 그 안의 누군가로부터 비롯될 것일 수 있었다.
이날, LG는 다시 한번 큰 목표를 내걸고 출발선을 떠났지만, 무대 뒤편에선 불안감이 담긴 목소리도 없지 않았다. 그 중에는 “작년보다 성적이 좋지 않으면 어떡하냐”는 얘기도 있었다. 어쩌면 LG가 올시즌 막판까지 가져갈 수밖에 없는 숙명적 걱정이다.
김 대표이사부터 모두가 앞을 보고 ‘전진’을 다짐했다. 그러나 지금은 안보이는 곳에서라도 ‘뒤’도 살짝 살펴야 할 때로 보인다. 아직 ‘상처’가 다 아물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미래를 위해서라면 부담’과 ‘압박’, 그 어떤 결과에 목매는 감정을 이겨내거나 덜어내는 ‘기술’이 필요한 시간이기도 하다.
안승호 기자 siwo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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