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할머니, 그림 배워 집집마다 전시
박수민 앵커>
뒤늦게 그림을 배워 집에 전시까지 한 어르신들이 있습니다.
제주에 사시는 8, 90대 할머니 아홉 분이 바로 그 열정의 주인공인데요.
그림을 그리고 나면 해방감을 맛보신다고 합니다.
박혜란 국민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박혜란 국민기자>
(제주시 조천읍)
제주의 한 농촌마을, 이곳에 사시는 오가자 할머니가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 벽에 편백나무를 그립니다.
나뭇가지 하나하나를 수채화로 표현하는데요.
곁에서 지켜보는 지역문화단체의 그림선생님과 정겨운 대화를 나눕니다.
어르신이 주로 그린 것은 즐겨 입는 옷이나 바구니 같은 생활물건 그림들, 집 창고에 전시 해놨습니다.
인터뷰> 오가자 / 제주시 조천읍
"그릴 것은 없고 (물건을) 한번 그려볼까 싶어서 그려봤는데 잘 된 것 같아요."
쉬엄쉬엄 시간 날 때마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행복한 마음을 느낀다고 하는데요.
인터뷰> 오가자 / 제주시 조천읍
"한 번에 다 그리진 않고 하나 그리고 어디 가서 놀다가 시간 나면 또 하나 그리는 식으로 그렸지요."
이 창고미술관에는 분홍색을 좋아하는 이웃집 부희순 할머니의 그림도 전시됐는데요.
분홍빛 덧신을 그리고 그림은 잘 못 그리면 다시 그리면 되고 공부는 늙어도 해야 한다는 글씨까지 썼습니다.
현장음>
"제주시에 사는 내 딸이 (덧신을) 만들어줘서 그려 봤지..."
이처럼 어르신이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은 지역의 문화단체 도움으로 이뤄진 것, 제주문화예술재단의 지원을 받아 지난해 마을 어르신 9명을 대상으로 예술교육을 진행한 결실입니다.
인터뷰> 최소연 / 소셜뮤지엄 대표
"할머니들이 혼자 큰 집에서 긴 밤을 보내다 보니까 무료하기도 하고 그래서 제가 작년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권했어요."
예전에 소마구간으로 쓰던 곳에 그림을 전시한 어르신도 있는데요.
집에서 키우는 무나 채소를 그린 강희선 할머니는 인생을 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현장음> 강희선 / 제주시 조천읍
"땅에서 커가는 작은 열무를 어린 아기가 크는 것처럼 (그렸고) 이제 이파리도 나이 드니까..."
그림을 그리면서 해방감을 맛봤다는 어르신의 일기는 마음을 짠하게 하는데요.
집에 전시해놓다 보니 더욱 뿌듯함을 맛봅니다.
홍태옥 할머니도 소 다섯 마리를 키우던 마구간에 직접 그린 그림을 전시했는데요. 문이 세 개가 있던 옛날 집을 회상하며 그렸다고 합니다.
현장음> 홍태옥 / 제주시 조천읍
"이거는 문인데요, 문을 열면 이 안에 옛날 부엌이 있어서..."
어르신은 지금까지 그린 그림을 책으로도 펴냈습니다. 자화상을 그리신 분도 계신데요.
주인공 윤춘자 할머니는 어린이로 돌아간 듯 즐거운 표정입니다.
현장음> 윤춘자 / 제주시 조천읍
"얼굴하고 머리를 그려요∼ 이제 눈을 그려요, 코도 그리고..."
그림 그리는 것이 그저 좋으시다며 환한 웃음을 짓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어르신들 가운데 최고령자인 93세 조수용 할머니, 방에 그림이 가득한데요.
집에서 키우고 있는 50년 된 하귤나무를 그린 이유를 이야기하십니다.
인터뷰> 조수용 / 제주시 조천읍
"하귤은 여름에 차로 매일 마시는 겁니다. 그래서 그렸습니다. 소박한 느낌의 어르신들 작품에 주민들도 관심을 보입니다."
인터뷰> 조주환 / 제주시 한림읍
"진솔한 할머니들의 삶을 그대로 어떠한 기교 없이 아주 순수하게 표현되어 있어서 너무 감동적이었고..."
이 마을 할머니 아홉 분이 그동안 직접 그린 그림은 모두 160여 점, 활동 내용은 스케치북 아홉 권에 기록돼 있습니다.
인터뷰> 최소연 / 소셜뮤지엄 대표
"오랫동안 이 마을에 정주해서 살아온 할머니들을 소개하고자 전시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취재: 박혜란 국민기자 / 촬영: 김상구 국민기자)
어르신들은 마음속에 품은 말을 그림으로 그리면서 '해방감'을 느낀다고 말합니다.
현장음>
"그림 그리는 것은 해방이죠∼"
세월 속 삶의 이야기를 그림 하나하나에 담아낸 어르신들의 열정,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다시 한번 실감 나게 합니다.
국민리포트 박혜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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