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자칭 진보세력의 위험한 ‘도구적 감성’

2023. 1. 5.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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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거악에 복수하는 드라마 인기

고통 돌려주는 폭력에도 환호

新좌파가 비판한 ‘도구적 이성’

실제 정치에 활용 땐 매우 위험

日帝와 독재 끝없이 소환하는

감성 방패로 미래와 법치 파괴

일진의 학교폭력과 부패 기업인이나 정치인, 갑질 상사의 비열한 폭력에 대항해 피해자가 치밀한 계획으로 그 절대악(絶對惡)을 짓밟고 복수하는 드라마들이 요즘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이 드라마들은 작가가 얼마나 정교하게 사건을 전개해 나가느냐, 배우들이 연기를 얼마나 리얼하게 하느냐 등의 차이는 있지만, 해체해 보면 매우 단순한 플롯을 가지고 있다. 거악을 만들어 놓고, 그 악에 대해 분노를 느끼게 하고, 피해자가 행하는 응징을 통해 시청자들이 정의감과 통쾌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에서 시청자에게 이성의 영역은 별로 보여주지 않는다. 분노조절장애(간헐폭발장애), 우월감, 치욕, 지독한 외로움, 응징의 쾌감, 그리고 적당히 통제된 피해자의 분노 등이 주로 보이는 인간의 내면이다. 드라마는 처음부터 끝까지 감성의 영역을 파고든다. 하지만 이성의 영역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건 복수를 위한 철저한 분석과 계획, 그리고 치밀한 복수의 실행 속에 들어 있다. 그 복수는 피해자가 당한 만큼 폭력적이다.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고통을 가해자에게 돌려준다.

흥미롭게도 20세기 초·중반 신좌파 이론가들인 독일의 호르크하이머나 아도르노 등은 이런 치밀한 수단적 성격을 띤 이성에 대해,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를 유지해 주는 ‘도구적 이성’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프랑크푸르트학파라고도 불리는 이들은 계몽주의의 산물인 인간의 이성이 역설적으로 지배의 도구가 됐다고 비판한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당시 좌파 이론가들이 ‘도구적 이성’이라고 비판한 그 폭력의 도구가 다시 저 드라마에서는 피해자가 가해자를 응징하는 ‘정의로운 이성’으로 변하게 된다. 단, 이번에는 약자도 강자를 향해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리고 대다수 시청자는 피해자에 대한 ‘감정이입’으로 인해 같이 분노하고, 같이 고통받고, 같이 복수의 쾌감을 느낀다. 우리는 주인공인 약자에게 ‘공감’하고 있고, 그래서 그 폭력적인 드라마에 빠져든다.

드라마는 드라마이고, 오락은 오락으로 즐기면 된다. 공감하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시청자에게 도덕적이고 복잡한 분석으로 초를 칠 일은 없다. 하지만 감성과 공감으로 시청자를 들었다 놨다 하는 이 드라마의 플롯이 오락의 세계가 아닌 실제 정치의 영역에서 지배 수단으로 사용되면 문제는 매우 심각해진다. 예를 들어, 오랜 기간 피해만 받아 왔다고 주장하는 정치 세력이 한국의 기득권 세력을 절대악으로 규정하고 그들을 분노해야 할 대상으로 만들어 버리면 감성에 흔들리는 대다수 국민은 저 플롯과 똑같은 정치의 드라마를 보게 된다. 약자와 피해자로 자신을 규정한 저 정치 세력은 피해와 억압, 슬픔에 대한 공감을 국민에게 은연중에 강요하고, 결국은 절대악을 폭력적인 방법을 통해서라도 응징해야 한다는 드라마를 만들어 나간다.

중요한 것은, 이 드라마가 인기를 끌어 계속 방영되기 위해서는 끝나지 않는 ‘과거사’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과거부터 오랜 기간 반복되는 억압과 핍박의 역사, 그리고 그에 저항해 정의를 구현해 온 그들의 서사는 절대로 해체돼선 안 된다. 그것이 해체되는 순간 그들의 권력도 해체되기 때문이다. 그 서사가 유지되는 한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무엇을 해도 정의 구현으로 용서되고, 무엇을 해도 같이 분노하고 공감하는 ‘시청자’를 만들어낼 수 있다. 물론 약자와 소외계층에 대한 공감은 중요하다. 하지만 요즘의 자칭 진보 세력은 불법과 부정과 부패가 드러나더라도 일제강점기와 권위주의 독재라는 과거를 소환해 분노라는 공감과 슬픔·아픔이라는 공감을 강요하면서, 무적의 감성 방패를 만들려고 한다. 이들은 그래서 미래 어젠다를 말하지 못하고, 언제까지나 과거의 정의를 실현해 나가야 한다.

이들이 사용하는 정치적 수단을 나는 ‘도구적 감성’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이들의 도구적 감성은 국가 간 치열한 경쟁을 통해 미래를 선점하려는 21세기에 대한민국을 과거와 분열에 묶어 놓는 망국적 정치를 재생산한다. 불법과 부정과 부패를 감성으로 가리려는 행위는 정의가 아니라 민주주의와 법치를 파괴하는 행위다. 이 서사를 빨리 깨지 못하면 대한민국의 미래가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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