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생존자 편향 오류와 후진적 구속 제도

김종용 기자 2023. 1. 5.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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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군은 전투기 성능을 보강하기 위해 작전에 투입된 전투기의 총알 자국을 연구했다.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전투기의 양쪽 날개와 꼬리 부분에 총알 자국이 다수 발견됐고, 미군은 이 부분을 보강하기로 했다.

미군이 복귀에 성공한 전투기들만 보고 오판했듯, 구속 기간 제한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불완전한 데이터를 근거로 내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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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군은 전투기 성능을 보강하기 위해 작전에 투입된 전투기의 총알 자국을 연구했다.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전투기의 양쪽 날개와 꼬리 부분에 총알 자국이 다수 발견됐고, 미군은 이 부분을 보강하기로 했다.

그러나 한 통계학자는 정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총알 자국이 다수 발견된 양 날개와 꼬리가 아닌 몸통 부분을 보강해야 한다는 것이다. 몸통에 총격을 받은 전투기가 돌아오지 못하고 추락한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격추된 전투기는 복귀할 수 없으니 데이터를 수집할 때 반영할 수 없었다는 설명이다.

이를 ‘생존자 편향(survivorship bias)’ 오류라고 한다. 특정 문제를 진단할 때 이미 걸러진 일부의 데이터만으로 판단, 잘못된 결론을 얻게 되는 논리적 실수를 가리키는 말이다.

구속 기간을 제한하는 제도 역시 생존자 편향 오류를 범하는 사례로 볼 수 있다. 우리 형사소송법은 피고인의 구속 기간을 심급마다 최장 6개월로 제한한다. 미군이 복귀에 성공한 전투기들만 보고 오판했듯, 구속 기간 제한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불완전한 데이터를 근거로 내세운다. 2021년 기준 형사 재판 1심에서 구속된 피고인 1만8986명 가운데 1만6966명(90%)이 6개월 안에 재판을 받았다. 90%에 달하는 피고인이 구속 기간 내에 재판을 마칠 수 있으니 6개월이라는 구속 기간 제한이 적절하다는 게 주장의 골자다.

그러나 이는 나머지 10%에 대한 데이터를 고려하지 않은 결론이다. 1조6000억원에 달하는 피해를 입힌 ‘라임 사태’의 주범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은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다 보석으로 풀려난 뒤 지난해 11월 위치추적 전자장치를 절단하고 도주했다.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의 범인 전주환도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던 중 피해자를 살해했다.

피고인들의 고의적인 재판 지연도 늘고 있다. 일선 법원의 한 판사는 “변호인을 단체로 사임시키고 증인을 대거 신청하는 등 의도적인 재판 지연 시도가 보인다”며 “6개월의 구속 기간 제한이라는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현실보다 빠른 법은 없다지만, 구속 기간과 관련된 법제적 대응은 사태의 심각성에 비해 너무 느리다. 법리를 세심하게 따지는 직권남용 등 공직자 범죄가 늘고 범죄 수법은 진화하는데 우리 형사소송법은 1954년에 멈춰있다. 2021년 불구속 재판 중 실형이 확정됐으나 도주한 자유형 미집행자는 5345명이었다. 2019년 4413명, 2020년 4548명으로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이제는 구속 기간을 연장하는 방안을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대법원 산하 사법정책연구원은 일선 판사들의 문제의식에 따라 조사를 진행해 피고인의 구속 기간을 최대 2년 더 연장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인신 구속은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지만, 후진적 구속 제도의 개혁은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예외적 사유가 인정될 때에 한해 구속 기간을 늘리는 효율적인 방안을 고려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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