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깃든 훈데르트바서 미학…“오스트리아와 우도를 잇다” [함영훈의 멋·맛·쉼]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비가 오면 우도봉 근처 빗물이 하얀 물기둥 폭포가 되어 기암절벽 위에서 우레와 같은 소리를 내며 바다와 만난다. 비와사 폭포는 제주 우도에 또 하나의 작품을 낳았다.
폭포수가 흘러내리는 암벽은 우도의 절경 중 한 곳이다. 때마침 날이 개어 햇빛이 쬐면 무지개가 나타나 새로운 수채화를 그린다. 절벽에는 풍란 등 다양한 식물이 서식하며 끈질길 생명력을 보여주고, 현무암 뿐 만 아니라 편성암, 화강암등 다채로운 지층이 공생한다. 주변에는 해식동굴 속에 달이 뜨는 풍경 주간명월, 광대코지, 몽돌해안 등이 있다.
이 하얀 물기둥을 받아준 바다는 여물통 ‘톨칸이’이다. 톨칸이는 소의 여물통이라는 뜻으로 ‘촐까니’라고도 한다. 촐은 꼴, 건초로 소와 말의 먹이이다. 까니는 큰 그릇을 말한다. 우도는 소가 누워있는 모습의 섬으로, 톨칸이 앞에 있는 오름은 소의 머리, 툭 튀어나온 기암절벽은 소 얼굴의 광대뼈이다. 이곳 남서쪽에 있는 성산읍 오조리 식산봉은 촐눌(건초를 쌓아올린 더미)이다. 촐눌과 소 사이에 소먹이통이 있어야 하니, 신은 기암절벽과 먹돌해안으로 둘러친 톨칸이를 하사한 것이다.
이야기도 정겹고, 풍경이 기가막힌 톨칸이와 비와사폭포 옆에 오스트리아 친환경 자연주의 미술가 훈데르트 바서가 우도를 제2의 고향삼아 찾아들었다.
시인 박인숙은 우도의 친구 성산포에 서서 “바다 위에 하얗게 유영하던 햇살의 파편들/ 태양도 바다에 스며드는 법을 아는데/ 나는 유독 너에게만 스미지 못했다/ 서서 자던 육중한 바람도 성산포에서 누워자는데/ 넌 어디에서 젖은 어깨를 말리고 있는가”라고 물었다.
알고 보니, 우도였다. 이역만리에서 쉴 곳을 찾에 떠돌던 나그네 프리덴스라이히 레겐타크 둥켈분트 훈데르트바서와 그의 문하생들은 우도에 와서 지난했던 참 예술, 환경보호 투쟁의 긴 마침표를 찍고, 물감에 젖은 어깨를 말리고 있었던 것이다. 우도가 더욱 낭만적이고 예술적인 빌리지가 된 것이다. 그래서 요즘 우도를 찾는 여행자들이 ‘우도에 오면 소(牛) 되는 줄 알았는데 시인이 되었다’는 이생진의 시어에 깊은 공감을 표한다.
지난 가을부터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가 낳은 또 한명의 스타 정은혜 작가가 훈데르트바서 예술테마파크에서 전시회를 열고 있어 관심이 커지는 상황이다.
훈데르트바서(1928~2000)는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3대 화가(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실레, 훈데르트바서)로 가우디와 더불어 가장 독창적인 건축가 그리고 자연을 사랑한 환경운동가로 평가받는다.
작가가 스스로 지은 본명, 프리덴슈라이히 훈데르트바서(Friedensreich Hundertwasser)는 ‘평화롭고 풍요로운 곳에 흐르는 백 개의 강’이라는 뜻이다. 그만큼 그는 자연에 애착이 깊었으며 물이 가진 이미지를 좋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문하생들이 물과 물, 섬(제주본섬)과 섬(우도의 막내 비양도) 사이에 터잡은 아름다운 우도를 새로운 정착지 후보로 삼은 이유다. 자연에는 직선이 없고 인간은 이 땅의 모든 생명체와 더불어 자연스럽게 살아가야 한다는 그의 굳은 신념과 철학은 그의 예술작품과 건축 안에 그대로 녹아 들어있다.
‘색채의 마술사’라 불릴 정도로 색 조합 능력이 뛰어나 천재 화가라 불린 훈데르트바서는 강렬하고 화려한 색을 선호했으며, 보색을 함께 쓰는 것을 좋아했다. 자연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추구한 그의 대표 회화작품으로는 224〈빅웨이〉, 630〈노란색집-사람이 다른 어딘 가에 있을 때 기다림은 상처가 된다〉 등이 있다.
그는 또한 ‘인간은 자연에 들른 손님’이라는 이념 아래 도심의 건축물에 자연의 생명력을 불어넣은 건축가이며 건축치료사이기도 하다. 유명 관광지로 손꼽히는 오스트리아의 훈데르트바서하우스, 쿤스트 하우스 빈, 바트블루마우 등이 그의 대표적인 건축예술작품이다.
훈데르트바서는 예술가로서의 삶 뿐만 아니라 끊임없는 자연보호를 실천하며 환경 운동가로서 활동했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주장하며 자연보호, 산림운동, 반핵운동 등에 앞장섰고, 성명 발표, 포스터 캠페인 진행, 실천적 퍼포먼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환경 운동을 했다.
훈데르트바서파크는 훈데르트바서의 철학과 작품세계가 제주 우도의 자연에 그대로 녹아든 내추럴 아티스틱 파크(Natural Artistic Park)다.
오스트리아에 있는 ‘훈데르트바서재단’과 훈데르트바서의 기획 및 디자인을 실제 건축물로 탄생시켰던 건축가 ‘하인즈 스프링맨(Heinz Springmann)’이 건축 작업에 직접 참여해 훈데르트바서의 생전 건축 작품들의 콘셉트와 디테일들을 파크 안에 구현해냈다.
훈데르트바서파크의 건축물은 어느 것 하나 동일한 형태가 없다. 건축적 기교에서 단조로움 보다 다양성을 우선시 한 훈데르트바서는 건축물을 구성하는 각 요소에 개성과 독창성을 부여함으로써 건축물을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훈데르트바서파크 역시 다양성이 반영된 곳. 파크 내에 총 78개의 기둥과 131개의 유리창이 있는데, 이 중 같은 형태를 지닌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모두 화려하고 대담한 색감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파크 광장의 세라믹분수를 둘러싼 세 동의 훈데르트바서식 건축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반지의 제왕 호빗마을의 그 곳, 훈데르트바서가 창조한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자연주의 온천마을 ‘블루마우’에 와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 정도. 그 정도로 이 파크는 훈데르트바서 건축예술작품들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건물을 지을 때 베어지는 수목을 최소화하기 위해 그 자리에 자생하던 수목들을 건물 옥상 위에 옮겨 심는 훈데르트바서의 ‘나무세입자’ 철학을 파크 내 건축물들에 적용시킨 것도 이 새로운 파크가 훈데르트바서식 건축물의 정체성을 계승한 곳임을 설명한다.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주장하던 훈데르트바서는 메마른 도시의 건축물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건축물 그 자체가 인간의 마음을 치유하는 도구가 될 수 있도록 힘써온 건축치료사이자 자연과의 평화로운 공존을 꿈꿨던 환경운동가다.
그의 이념을 그대로 계승하기 위해 비용부담과 기술적 난제에도 불구하고 사업부지 내 자생하고 있던 수목 1600여 주를 옮겨 심는 한편 건물이 들어서는 곳의 토지를 건축물 옥상에 되돌려 놓는 방식으로 파크 개발 사업이 진행되었고, 그 결과 총 사업부지의 약 45%가 녹지공간인 내추럴 아티스틱 파크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평지와 옥상은 연결돼 있다.
또한, 뮤지엄과 갤러리는 우도의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을 창문을 통해 작품과 함께 감상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는데, 이는 작가 중심의 전시가 아닌 관람자 중심의 열린 전시를 표방하는 것으로 그의 자연친화적인 철학, 권위적인 미술 전시를 지양하여 작품과 자연을 온전하게 느낄 수 있도록 기획된 것이다.
훈데르트바서파크는 훈데르트바서의 일생과 작품들을 훈데르트바서식 건축물 안에서 오롯하게 관람하고 체험할 수 있는 상설기념관 ‘훈데르트바서뮤지엄’, 우도의 바다를 조망할 수 있도록 낮게 들어선 지중해풍의 저층형 프리미엄 콘도미니엄 ‘훈데르트힐즈’, 성산일출봉을 화룡점정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우도의 바다를 두 눈에 담을 수 있는 뷰카페 ‘훈데르트윈즈’로 구성된다.
훈데르트바서 뮤지엄은 ‘드림 투게더(Dream Together)’라는 테마로 훈데르트바서의 생애부터 미술 작품, 친환경 건축 철학을 고스란히 만날 수 있도록 기획된 아시아 최초이자 유일의 상설 기념관이다. 훈데르트바서뮤지엄(연면적 1424㎡)은 1층, 2층과 옥상정원으로 이루어진 건물로, 회화관, 판화관, 생애관, 환경건축관, 파크관까지 총 5개의 전시관으로 구성됐다. 판화관에서는 훈데르트바서의 오리지널 판화 작품 20여점이 전시되며, 생애관에서는 우표, 두들 등 그의 삶을 조명할 수 있는 각종 기록들을 만나볼 수 있고, 건축관에는 담스타르트, 스피텔라우, 성바르바라가 전시되어 해외에 있는 그의 유명 건축물 모형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
훈데르트바서의 친환경 건축철학을 적용한 개성있는 전시공간인 우도갤러리는 뮤지엄 맞은편에 위치한다. 약 683㎡의 전시공간에서 새롭고 다양한 주제를 담은 국내외 예술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곳으로, 동화 작가 전이수에 이어 정은혜 작가 작품전이 진행중이다.
갤러리 내에 있는 유럽풍의 노천 카페 ‘레겐탁’도 꼭 들러봐야 할 곳이다. 부드럽고 달달한 디저트 테린느가 일품인 이 곳에서는 훈데르트바서 건축물들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독특한 형태의 세라믹 소재 쌍둥이 분수를 보며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제주 푸른바다와 성산일출봉이 한눈에 보이는 프리미엄 숙박 시설 ‘훈데르트힐즈’는 대지의 자연스러운 경사면에 앉혀진 지중해풍의 저층형 콘도미니엄으로 총 8개동 48개의 객실로 이루어져 있다.
리조트 내에는 캐주얼 다이닝 레스토랑인 ‘말차이트’가 위치해 있다. 말차이트(Mahl-zeit)란 “맛있게 드세요”라는 독일 인사말이다. 이 곳에서는 제주 특선 식재료 베이스의 현무암 슈니첼, 톨칸이 리조또, 뿔소라 갈치 속젓파스타 등의 이색적인 메뉴를 맛 볼 수 있다.
훈데르트윈즈는 성산일출봉과 제주 바다가 눈앞에 펼쳐지는 1300㎡ 규모의 대형 베이커리 카페다. 제주의 건강함을 품은 디저트 우도넛(U-DONUT)과 바다를 닮은 시원한 색감의 보롬 에이드는 이 곳에서만 경험해볼 수 있는 대표적인 메뉴이다.
운영에 있어서도 훈데르트바서의 이념 계승은 지속된다. 모든 부속시설의 주방에서 발생하는 음식물은 음식물 감량기를 설치하여 수분을 제거하고 발효시킨 뒤 조경수 퇴비로 사용하고, 카페에서 사용되는 일회용 컵, 빨대 등도 친환경 소재를 활용할 예정이다. 또한 환경법적 기준보다 많은 전기차 충전설비를 설치함으로써 작지만 세심한 부분까지 환경을 생각하고 자연과의 공존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이젠 우도봉에 올라 톨카니, 성산일출봉, 훈데르트바서 파크의 조화를 보자.
훈데르트바서 파크에서 오른쪽 길로 가다가 다시 우도의 브로드웨이 가운데 길로 우회전 한뒤 한번더 땅콩마을쪽 우측길을 걸으면 20~30분만에 우도봉과 우도등대를 만난다. 봉우리라고 하기엔 뭣하고, 야트막한 고원 초원 같은 이곳 입구엔 말들의 여물을 주는 간이시설이 있고 그 앞을 소(牛) 조형물이 지킨다. 너른 들판 말들이 뛰는 모습, 지중해 같은 색감의 제주바다를 좌우 번갈아보면서 S라인 동편 해안 절벽 윗길을 따라 정상에 이르면, 성산일출봉 오조 식산봉, 구좌 지미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천진항과 톨칸이 사이에 땅에서 솟아오른 양파 몇 개가 보인다. 바로 훈데르트바서 파크이다. 자연앞에 납작 엎드리다 땅속에서만 자라던 양파 몇 개만 내민 형상이다.
우도 여행은 1인승 친환경 전기차로 한다. 전기차 중에는 롤스로이스도 있다. 전기차를 타고 돌아보거나 유람선을 통해 만다는 우도 팔경은 ▷주간명월(晝間明月:한낮에 굴 속에서 달을 본다는 뜻. 남쪽 어귀 해식동굴 초입에 반사경 같은 둥근 흰돌이 깊숙이 비춘다) ▷야항어범(夜航漁帆:밤 고깃배의 풍경) ▷천진관산(天津觀山:천진동에서 한라산을 바라본다) ▷지두청사(地頭靑莎: 우도봉에서 내려다본 푸른 모래:파도와 백사장의 끊임없는 만남) ▷전포망도(前浦望島:구좌읍 종달리와 하도리 사이의 앞바다에서 본 우도의 모습) ▷후해석벽(後海石壁:동쪽의 웅혼한 수직절벽인 광대코지) ▷동안경굴(東岸鯨窟:검멀레 해변에 콧구멍 같은 2개의 해식동굴. 거인고래가 살았다는 전설) ▷서빈백사(西濱白沙:서쪽의 흰 모래톱 빛나는 산호 백사장)이다.
abc@heraldcorp.com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65억 건물 사면서 직원은 최저임금"…강민경 해명, 통하지 않았다
- 고양이는 버둥버둥 이기영은 함박웃음...작년 여름 휴가지 영상 등장
- BTS진, 신병 훈련 모습 공개…화생방에 수류탄 투척 연습까지
- "5000만원 보증금 지원에 회식없음"…퇴사자 0명 이 회사 어디?
- “10만원은 민망하고 20만원은 부담되고” 설 부모님 용돈 남들은 얼마나?
- 도주 중국인 옷에 ‘메이드 인 차이나 무적’, 中도 “도저히 이해 안 간다”
- “빌딩만 3채, 1천억 건물주” 전직 얼짱에 또 100억원 돈 몰렸다
- 주문한 김치 박스 열었더니 살아있는 쥐가…어쩌다가?
- 마약, 탈세, 병역비리까지… 막나가는 래퍼들 "이게 스웩?"
- “北김정은 갑자기 사망하면 김여정이 후계자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