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7% 유럽 10% 한국 5%, 우리 물가상승률 괜찮네”… 진짜?
전 세계가 1년 넘게 인플레이션으로 신음하고 있다. 2022년 11월 미국과 유로존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각각 7.1%, 10.1%를 기록했다. 한국은 5%다. 최근 약 20년간 가장 높은 수준이긴 하지만, 미국이나 유럽에 비하면 상당히 낮다. 이렇게 보면 한국은 다른 선진국보다 인플레이션에 상대적으로 잘 대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수치만으로 한국의 물가 사정이 낫다고 판단해서는 곤란하다. 나라마다 물가 상승률을 산정하는 방식에 다소 차이가 있는데, 한국의 경우 외국에 비해 물가 상승률이 낮게 나오는 구조적 요인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국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물가가 낮게 산정되는 첫 번째 이유는 자가 주거비, 즉 자기 집에 사는 주거 비용 때문이다. 혹자는 ‘내가 내 집에 사는데 웬 주거 비용이 드느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경제학에서 비용은 명목 비용이 아니라 실질 비용이 기준이다. 자기 집에 살지 않고 월세를 주면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데 그것을 포기하고 자기 집에 거주하는 것이므로 기회 비용 측면에서 비용으로 본다. 그래서 미국은 월세뿐 아니라 자가 주거비도 물가에 포함해 계산한다. 반면 한국은 월세와 전세는 물가 계산에 포함하지만 자가 주거비는 포함하지 않는다.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물가 상승률이 낮은 두 번째 이유는 공공 요금 인상 억제 정책 때문이다. 2021년 이후 전 세계 물가가 급등한 원인 중 하나는 에너지 가격 폭등이다. 그런데 한국은 물가 상승을 막고 서민들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전기, 가스 요금을 올리지 않았다. 이걸 좋게만 볼 것은 아니다. 덕분에 한국전력은 30조원의 적자를 냈고 주가 폭락, 회사채 대란 등이 발생했다. 결국 이 적자는 세금으로 충당할 수밖에 없다. 어쨌든 올라야 할 공공 요금을 올리지 않았고 그로 인해 물가 상승은 낮았다. 만약 다른 나라처럼 원가 상승분에 맞춰 공공 요금을 올렸다면 한국의 물가 상승률은 훨씬 더 높았을 것이다.
세 번째로는 물가 상승률 계산에 사용되는 전세 가격의 문제다. 통상 우리가 전세 시세를 파악할 때는 한국부동산원이나 KB국민은행 자료를 사용한다. 반면 통계청은 물가에 전세를 반영할 때 자체적으로 생산한 지표를 활용하는데, 이 지표가 한국부동산원 자료 등에 비해 변동폭이 작다. 전세 가격 상승이 물가에 덜 반영되는 구조다.
이런 요인들은 실제 물가에 어느 정도나 영향을 미칠까. 서울대 서재용·장용성 연구팀이 이 세 가지 요인을 보정해 2021년 12월 우리나라 물가 상승률을 다시 계산했더니 6.65%가 나왔다(경제학 연구 70집 2호). 공식 물가 상승률(3.7%)보다 무려 3%포인트 가까이 높다. 같은 해 유로존(5%)보다도 훨씬 높고, 미국(7%)과는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우리 국민들이 늘 체감 물가가 숫자보다 많이 올랐다고 느끼는 데는 이런 통계상의 문제도 작용한다. 외면적인 수치만 보고 한국의 물가 사정이 외국보다 낫다고 안심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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