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 때문에 몰살? 그것만은 아냐"…러 총체적 난맥상

유영규 기자 2023. 1. 5.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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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전날인 지난달 31일(이하 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전선에서 100여 명 가까운 병사가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에 몰살한 사건은 러시아군의 총체적 난맥상을 보여줍니다.

양측의 발표를 종합하면 우크라이나군은 도네츠크주 마키이우카의 신병 임시숙소를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하이마스)으로 공격했고, 러시아군 병사 최소 89명이 사망했습니다.

우크라이나군의 피해 추산치는 이보다 커서 약 400명이 숨지고, 300여 명이 다쳤다고 주장했으나 현재로선 양측 발표 모두 진위를 가리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이번 사건은 작년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으로 전쟁이 시작된 이래 단일 공격으로는 최다 인명피해를 낸 사례로 알려졌습니다.

국내적 비판이 거세지는 가운데 러시아 군당국은 사상한 병사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모양새입니다.

러시아 국방부는 3일 세르게이 세브류코프 중장 명의의 성명을 통해 "장병들이 휴대전화 금지 수칙을 어기고 상대방의 무기 사거리 안에서 전원을 켜고 대량으로 사용한 것이 주원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병사들의 휴대전화가 발신하는 신호를 이용해 우크라이나군이 이들의 위치를 포착, 정밀 타격을 가할 수 있었다고 밝힌 것입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군은 휴대전화 사용이 러시아군 숙소의 위치가 드러난 주된 이유는 아니었다고 반박했습니다.

미국 CNN 방송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동부군 세르히 체레바티 대변인은 3일 "물론 지리정보가 있는 휴대전화 사용은 실수다. 하지만, (병사들만의 잘못이란 러시아측) 설명은 명백히 터무니없다"고 비판했습니다.

체레바티 대변인은 "그것(휴대전화 사용)은 주된 이유가 아니다. 주된 이유는 그들(러시아군)이 이 병사들을 은밀히 배치할 수 없었다는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이용했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영국 싱크탱크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 소속 러시아·유라시아 전문가 에밀리 페리스 연구원은 AP 통신과 한 인터뷰에서 일선 병사와 장교 탓이라는 러시아군의 발표는 최상층 지도부의 책임으로부터 관심을 돌리는데 '도움이 되는 이야기'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병사들의 휴대전화 신호 때문에 우크라이나군이 정밀타격을 할 수 있었는지는 "진위를 밝히기가 매우 어렵다"면서 휴대전화 신호가 적의 공격을 부를 수 있다는 사실이 이미 잘 알려졌기 때문에 러시아군은 작전 중인 병사의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해 왔다고 말했습니다.

체레바티 대변인은 "현재 그들(러시아 지도부)은 책임을 떠넘길 대상을 찾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서로에게 책임을 돌리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일각에선 러시아군이 탄약 등 폭발물을 병사 숙소 가까이 보관하는 '전문가답지 못한' 행태로 인명피해를 더욱 키웠을 것이란 분석도 나옵니다.

영국 국방부는 4일 트위터 계정에 공개한 산하 정보기관 국방정보국(DI) 일일 보고서에서 "피해 규모에 비춰볼 때 병사 숙소 근처에 보관됐던 탄약이 유폭돼 2차 폭발을 일으켰을 실질적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면서 "러시아군은 이번 전쟁 한참 이전부터 탄약을 위험하게 보관한 기록이 있다"면서 특히 이번에 피격된 러시아군 임시숙소는 이번 전쟁 최격전지로 꼽히는 동부전선에서 12㎞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일부 러시아어 매체는 사망자들이 러시아 남서부 사마라 지역에서 동원된 예비군이라고 보도했습니다.

미국 군사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는 3일 보고서에서 이번 사건으로 러시아군이 작년 9월 동원령으로 모집한 병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또다시 드러났다고 지적했습니다.

페리스 연구원은 러시아군이 신병을 충분히 훈련하기보다는 당장 병력을 늘려 상대를 수적으로 압도하는데 더 관심이 있는 듯 보인다면서 "불행히도 병사들의 생명은 소모품이라는 게 러시아 정부의 시각"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유영규 기자sbsnewmedi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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