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전쟁이 벗겨준 ‘전범국 멍에’… 독일·일본, 군비증강 수백조원 퍼붓는다[Global Focus]

손우성 기자 2023. 1. 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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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35 전투기
12식지대함유도탄

■ Global Focus

‘전범국가’ 독일과 일본이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기지개를 켜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뒤 독일과 일본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군비 확장과는 거리를 둬왔다. 국제사회도 독일과 일본의 군사력 강화 움직임엔 예민하게 반응했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2차 세계대전 이후 80년간 암묵적으로 지켜온 질서를 한순간에 흔들었다. 러시아라는 ‘공공의 적’이 생기자 서방은 경제 강국인 독일과 일본에 우크라이나 지원을 요청하기 시작했고, 좋은 명분이 생긴 양국은 앞다퉈 군사력 확장에 힘을 쏟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바탕으로 전범국의 오명을 씻고 보통국가로의 전환을 꾀하고 있는 셈이다.

- ‘군비확장’ 속도내는 독일

“자유·민주 수호에 더 큰 투자”

135조원대 특별방위기금 조성

자금마련 채권발행 위해 개헌

‘치누크헬기’ 구매 1순위 검토

‘F-35전투기’ 35대 도입 추진

프랑스와 미래전투기 공동 개발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사흘째였던 지난해 2월 27일 독일 연방의회. 연단에 오른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위협에 대응하려면 어떤 능력이 필요한가”라고 되물으며 긴 연설을 시작했다. 그는 “우리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국가 안보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며 1000억 유로(약 135조6650억 원) 특별방위기금 조성 계획을 발표했다.

숄츠 총리의 발언이 끝나자 의회에선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외신들은 일제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군비 증강에 몸을 사리던 독일이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태세 전환에 나섰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숄츠 총리는 5일부터 국가안보전략 초안에 대한 협의를 시작한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국제사회 질서 변화와 독일의 역할론 등이 담길 전망이다. 외신들은 숄츠 총리가 앞서 주장한 ‘시대전환(Zeitenwende)’의 윤곽이 처음으로 공개된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GDP 대비 2% 국방비 지출… 우크라 사태가 벗겨준 전범국 주홍글씨 = 독일 의회는 숄츠 총리 연설 4개월 뒤인 지난해 6월 1000억 유로 특별방위기금 조성안을 찬성 567표, 반대 96표, 기권 20표로 통과시켰다. 명분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의 약속이었다. 나토는 회원국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2%를 국방비로 지출하자고 제안했는데, 유럽 최대 경제 강국인 독일은 2012년부터 나토 압박에 시달렸다.

하지만 16년 장기 집권에 성공한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는 전범국이라는 주홍글씨를 항상 의식했다. 2021년 독일의 국방비 지출액은 470억 유로(약 63조9500억 원)로 GDP 대비 1.53%였고, 메르켈 전 총리는 재임 시절 2024년까지 점진적으로 2% 수준에 도달하겠다는 이른바 ‘속도 조절론’을 펼쳤다. 메르켈 전 총리 뒤를 이은 숄츠 총리는 우크라이나 사태를 방위비 증액의 최적기로 판단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독일 의회는 자금 마련을 위해 추가 채권 발행이 쉽도록 개헌까지 단행했다. 기존엔 ‘채무 제동’ 규정을 둬 부채 조달 규모가 GDP 대비 0.35%를 넘을 수 없도록 했는데 이를 면제하기로 한 것이다.

◇늘어난 군비로 공격적인 무기 수집…지난해 무기 수출액도 역대 2위 = 특별방위기금으로 곳간을 채운 독일은 곧바로 공격적인 무기 수집 계획을 세웠다. 독일 도이체벨레(DW)는 지난해 6월 ‘독일군의 새로운 쇼핑 목록’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독일 정부가 CH-47F 치누크 헬기 구매를 1순위로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DW는 “제작된 지 50년 된 CH-53 헬기는 수리하려고 해도 부품이 없어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미국 록히드마틴 F-35 전투기도 구매 목록에 올랐다. 크리스티네 람브레히트 독일 국방장관은 “F-35는 나토 동맹국과 함께 작전을 수행하기에 적합한 전투기”라고 설명했다. DW는 구체적으로 독일 정부가 F-35 전투기 35대를 구매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 외에도 이스라엘 무장 드론, U-12 잠수함 등도 거론된다. 장기적으론 프랑스와 함께 진행 중인 ‘미래 전투기 공동개발 프로젝트(SCAF)’를 통해 유럽 고유 전투기를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DW는 “무기 구매 계획이 우크라이나 지원과 직접 관련이 있는 건 아니다”라고 부연했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겪으며 무기 수출도 호재를 맞았다. dpa통신에 따르면 독일 경제부는 2022년 무기 수출 규모가 최소 83억5000만 유로(약 11조3052억 원)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 중 약 25% 정도인 22억4000만 유로(약 3조332억 원) 규모의 무기가 우크라이나 지원에 쓰였다.

- ‘반격능력’ 갖추는 일본

올 방위비 64조원 책정 ‘최대’

5년 뒤엔 GDP 2%까지 증액

전쟁가능 보통국가 전환 가속

‘토마호크’순항미사일 들이고

음속 5배 유도탄 개발도 연구

올 방위성 무기계약액 14조원

일본의 방위력 강화를 위한 증세 논란이 심화하던 지난해 12월 27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BS-TBS 프로그램에 출연해 “방위비 증액 재원 마련을 위한 증세 개시 전에 중의원(하원)을 해산하고 총선거를 단행하겠다”고 밝혔다. 증세 반대 여론으로 지지율이 최저치(마이니치(每日)신문 기준 25%)를 찍었는데도, 조기 선거 카드까지 던지면서 방위력 증강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한 것. 그만큼 일본 정부가 방위력 강화에 ‘올인’하고 있는 것으로, 지난해 12월 반격 능력(적 기지 공격 능력) 보유를 명기한 국가안전보장전략 등 3대 안보 문서 개정도 끝마쳤다. 오는 13일에는 기시다 총리가 미국을 방문, 조 바이든 대통령의 협조도 요청할 계획이다.

일본은 미·중 간 패권 경쟁 격화와 대만 분쟁 가능성, 우크라이나 전쟁, 북한의 미사일 도발 등에 따른 동북아 정세 변화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태평양전쟁 전범국인 일본이 혼란한 국제 정세를 틈타 ‘전쟁이 가능한 보통국가’로의 전환을 꾀하면서 일제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한국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자리 잡힌 동아시아 역학 구도 역시 크게 흔들릴 전망이다.

◇역대 최대 방위비, 5년 뒤 GDP 2%까지 증액…‘평화헌법’은 껍데기만 남는다 = 일본 정부는 반격 능력을 추진하는 내용이 담긴 ‘국가안전보장전략’ 등 3대 안보 문서 개정안을 지난해 12월 16일 각의(국무회의)에서 최종 채택했다. 재무장과 군사 대국화의 길에 공식적인 첫발을 뗀 것으로, 평화헌법의 이념 아래 지금까지 내걸었던 전수방위(專守防衛·공격을 받을 때만 최소한의 자위력 행사 가능) 이념을 껍데기만 남기고 내다 버린다는 비판이 심화하고 있다.

특히 ‘반격 능력’의 범위가 가장 큰 논란거리로, 이번 개정으로 일본뿐 아니라 ‘일본과 밀접한 관계의 타국’에 대한 무력 공격이 발생했을 때도 적국을 공격할 수 있도록 했다. 사실상 유사시 선제공격이 가능하다는 맥락으로 해석될 수 있는 셈이다. 또 일본 정부는 2023년도 방위비 역시 역대 최대 규모인 6조8000억 엔(약 64조7800억 원)으로 책정했다. 기시다 총리는 5년 뒤에는 방위비를 국내총생산(GDP)의 2% 이상으로 늘린다는 방침도 밝혔다.

◇美에서 무기 14조 원어치 구매…13일 미·일 정상회담도 개최 = 일본은 반격 능력 보유 선언과 함께 무기 시장에서도 ‘큰손’으로 떠오르고 있다. 2023회계연도 기준으로 일본 방위성의 미 대외군사판매(FMS)를 통한 무기 계약액은 총 1조4768억 엔(약 14조 원)으로 사상 최대 규모다. 이는 2022회계연도 FMS 계약액(3797억 엔)에 비해 4배나 많다. 일본은 미 해군의 중거리 순항 미사일인 토마호크 구입에도 2100억 엔을 배정했다. 자체 개발도 늘릴 예정이다. 육상자위대의 12식지대함유도탄(SSM) 개량형 개발에 330억 엔, 음속의 5배 이상 속도로 변칙 궤도로 비행해 요격이 어려운 극초음속 유도탄 연구비로 585억 엔을 각각 책정했다.

또 일본은 미·일 가이드라인 개정도 추진한다. 기시다 총리는 취임 뒤 처음으로 13일 미국 워싱턴을 방문해 백악관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는데, 이때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 개정도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지(時事)통신은 “미·일 정상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유사시 일본 자위대와 미군의 역할 분담을 규정한 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 방향을 논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 독일은 ‘온건’ 일본은 ‘손절’… 중·러 대응 온도차

독, 러 가스 의존 가격상한 반대

경기침체 우려 중국 대상 ‘세일즈’

일, 미와 동맹 강화하며 등 돌려

우크라에 살상무기 지원도 추진

제2차 세계대전 전범 국가인 독일과 일본은 혼란한 국제 정세 속에서 똑같이 ‘무장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중국·러시아에 대한 대응에서만은 차별점을 보이고 있다.

유럽의 앞마당인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을 목격하고 있는 독일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 규탄에 나서고 있지만, 영국·프랑스 등에 비해선 다소 미온적이다. 전후 처음으로 우크라이나에 무기까지 지원했지만, 러시아 가스에 에너지 공급을 의존하고 있는 만큼 유럽연합(EU)의 제재에는 소극적이거나 제동을 걸고 있는 것. 독일은 지난해 중순부터 EU가 천연가스 가격상한제 도입을 추진하자 직간접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혀왔고, 결국 EU는 유럽 가스 가격지표인 네덜란드 TTF 선물시장 기준 메가와트시(MWh)당 180유로(약 24만4000원)로 상한선을 정할 수밖에 없었다.

독일은 중국에 대해서도 다소 온건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지난해 11월 뜬금없이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갖기도 했다. 폭스바겐, 지멘스, 도이체방크 CEO 등 재계 인사들까지 총동원해 ‘세일 외교’를 펼친 것으로, 숄츠 총리는 “중국은 독일에 있어서 여전히 중요한 경제무역 파트너”라고 치켜세웠다.

반면 일본은 미국과의 ‘밀월 동맹’을 과시하면서 중국·러시아와는 거의 ‘손절’ 수준이다. 국제 무대에서 러시아에 대한 규탄에 앞장서고 있으며, 우크라이나에도 이르면 1월 자위대법 개정을 통해 살상무기까지 지원할 준비도 하고 있다.

특히 중국에 대해선 매우 강경한 입장으로,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에 대비한 준비도 착착 진행하고 있다. 먼저 일본은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을 우려, 육상자위대 예하 15개 사단과 여단을 일본 서남부 난세이(南西) 제도로 전개할 수 있는 부대로 개편할 예정이다. 또 일본은 2016년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 때부터 중국을 적국으로 가정하고 ‘미·일 공동 작전계획’ 구축을 추진하는 등 중국과의 충돌에 대비한 군사 협력을 은밀하게 진행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손우성·김선영 기자 applepi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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