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장자』 완역 김원중 “시비와 아집의 시대 경종 울리는 비범한 혁명서일 수도” [김용출의 문학삼매경]
“...나는 차라리 더러운 시궁창에서 노닐며 즐길지언정, 나라를 가진 제후들에게 얽매이지는 않을 것이오. 죽을 때까지 벼슬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즐겁게 살고 싶소.” 『사기』의 「노자한비열전」 편을 번역하던 중, 장자가 재상으로 맞아들이고 싶다는 초나라 위왕의 제안을 제사 때 쓰이는 소 이야기를 거론하면서 거절하는 대목이 눈에 확 띄었다. 장자란 사람, 참 대단한 배짱이구나.
김 교수는 2020년 가을부터 『장자』 번역을 시작했다. 이듬해 연구년을 맞으면서 수업 부담도 줄었고, 팬데믹의 영향으로 해외에도 나갈 수 없어 번역에 온전히 몰두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장자』는 여느 동양 고전과는 달랐다.
“무엇보다 비유와 풍자, 구어체 표현이 많았습니다. 문장이 까다로웠죠. 『논어』나 『맹자』, 『한비자』 등과는 결이 전혀 달랐어요. 근본적으로 장자가 무한히 자유로운 영혼이었습니다. 거침이 없고, 낭만적이었으며, 생계도 걱정하지 않고 주변인처럼 살았지요. 장자의 사유를 따라가는 게 심리적으로 부담이었습니다. 제 스스로 기계처럼 살아가는 유형이기에, 스타일상 괴리감이 있었던 거죠.”
동양고전의 대가로 꼽히는 김원중 교수가 최근 도가의 고전 『장자』(휴머니스트)를 번역해 돌아왔다. 내편 7편과 외편 15편, 잡편 11편으로 구성된 『장자』는 도와 무위를 강조하는 『노자 도덕경』의 사상을 계승하면서도 도가적 사유를 확장하고 다양한 개념을 발전시킨 도가의 대표 고전이다. 특히, 물아일체와 만물의 조화를 담은 호접몽 이야기는 유명하다.
“옛날에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되었는데,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였으니 스스로 기뻐하며 뜻에 맞았다! [스스로] 장주임을 알지 못했다. 얼마 있다가 깨어보니 갑자기 장주의 모습이었다. 알지 못하겠으니, 장주의 꿈에 [장주가] 나비가 된 것인가, 나비의 꿈에 [나비가] 장주가 된 것인가? 장주와 나비는 반드시 구분이 있으니, 이것을 만물의 조화라고 말한다.”(「제2편 제물론」 중에서)
김 교수는 연구와 강의를 게을리 하지 않으면서도, 동양 고전을 우리 시대의 보편적인 언어로 정확하고 섬세히 번역하는 작업에 매진해 왔다. 『사기 열전』을 비롯해 『사기』 전체를 완역한 것은 물론, 『논어』, 『맹자』, 『한비자』, 『손자병법』, 『정관정용』, 『삼국유사』, 『정사 삼국지』 등 20여권의 동양 고전을 번역했다. 『삼국유사』가 50만부 이상 팔리는 등 그가 번역한 고전들은 독자들의 사랑 속에 대부분 스테디셀러에 올라있다.
“직역을 하되, 가독성에도 신경을 썼다. 주석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주석이 하나도 없는 번역판도 있지만, 이번 번역은 주석이 1400여 개나 된다. 아울러 주석 등에서 다른 번역본의 해석도 충실하게 설명, 종합적이면서도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려 노력했다. 전문가와 일반 독자 모두를 만족시키기 위해 우리말 번역에 유의하면서도 가능한 한 원전의 의미를 살리려 했다.”
―『장자』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고, 현대인들은 왜 『장자』를 읽어야 하는가.
“『장자』는 크게 내편과 외편, 잡편으로 구성돼 있다. 내편은 아주 논리정연하고 『장자』의 사유를 그대로 볼 수 있는 편인 반면, 외편과 잡편은 제자나 후학이 쓴 것이어서 문체의 결이 완전히 다르다. 외편은 특히 유가를 비판하거나 비유, 풍자가 많다. 『장자』의 기본 사유는 모든 존재와 사유는 상대적이며, 인간은 감히 사유를 판단하거나 진위를 간별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유가를 비롯해 물과 아를 구분하거나 늘 시비를 가리려는 인간 행태를 경계하며, 사물과 자아 사이의 구분이 사라지는 경지를 추구한다. 예를 들면, 호접몽 이야기처럼, 인간인 장주가 곧 나비일 수도 있고, 나비가 곧 장주일 수도 있다. 최근 우리 사회와 구성원들이 아집에 사로잡히거나 이념 및 진영에 갇혀 탈진실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는데, 『장자』는 나를 내세우는 아집을 비판한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울러 『장자』에는 장애인이나 어부를 비롯해 비주류적 존재와 교류하면서 공감하는 장면도 적지 않다. 넓은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비주류와 소통 공감하면서 분별이나 차별을 없애자는 주장을 경청할 만하다.”
―혹시 『장자』에 대해 잘못 알려졌거나 오해 받는 부문이 있다면.
“『장자』의 사상이 현실도피적인 그것이 아닌가 하는 게 가장 큰 오해 같다. 예를 들면, 『격몽요결』의 독서 파트 등에선 『노자 도덕경』이나 『장자』가 빠져 있는데, 아마 노장 사상이 사회가 지향하는 삶의 목적성과 유리된다는 생각이 퍼져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장자』야말로 삶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숨을 쉴 수 있는 여지를 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물질적 욕망이나 성공에 대한 욕망, 시비에서 벗어나 인위와 작위가 아닌 담담한 처신과 달관의 태도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자본의 탐욕이나 자기만 정의라고 하는 아집의 시대와 맞서게 하는 비범한 혁명서일 수도 있다.”
―『장자』의 구절 가운데 가장 소개하고 싶은 대목은.
“호접몽 이야기는 널리 알려졌으니 빼고, ‘쓸모없음의 쓸모’를 강조한 무용지용(無用之用)을 소개하고 싶다. 나무가 재목이 아니기 때문에 비로소 천수를 누려 신인이 된다는 이야기인데, 『장자』는 권력과 명예를 탐하는 유가의 속물근성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우리들에게 너무 쓸모 있는 존재가 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장자』가 아집에 사로잡혀 만물의 조화와 물아일체의 경지를 모르고 분별과 시비에 빠지는 인간 행태를 경계하면서 무용지용의 큰 지혜를 설파한 대목은 아래와 같다. “계수나무는 먹을 수 있어서 『사람들이』 베어가고, 옻나무는 쓸모가 있어서 『사람들이』 잘라간다. 사람들은 모두 쓸모 있음의 쓰임을 알고, 아무도 쓸모없음의 쓰임을 알지 못한다.”(「제4편 인간세」 중에서)
“자, 할아버지를 따라서 외우도록 하거라. 하늘 천, 따 지, 검을 현, 누를 황.” 부모와 떨어져 속리산 자락인 충북 보은 탄부면에서 살고 있던 소년 김원중은 할아버지의 입을 따라 중얼거렸다. “하늘 천, 따 지, 검을 현, 누를 황....”
소년은 이렇게 5, 6세부터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손자 사랑이 남달랐던 한학자 조부로부터 『천자문』과 『사자소학』, 『명심보감』 등을 차례로 배웠다. 기본 예의범절 역시 배웠다. 동양 고전과 인연의 시작이었다.
대학에서 동양 고전을 본격적으로 공부하던 성균관대 대학원 박사과정 3학기 차 대학원생 김원중은 1993년 까치출판사의 ‘까치동양학’ 시리즈 일환으로 『당시감상대관』을 펴냈다.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널리 읽히면서도 작품성이 뛰어나다고 평가되는 당시(唐詩) 180여 수를 선정해 각 작품에 관한 상세한 주석과 체계적 분석을 시도한 것으로, 무려 700페이지가 넘는 벽돌책이었다. ‘동양고전 대가’ 김원중의 원점이었다.
“『당시감상대관』은 전문 번역서라기보다는 당시 180수를 대상으로 한 평석서였습니다. 해설과 분석이 많았죠. 저의 번역 출발인데, 지금 봐도 그런대로 괜찮은 듯 합니다.”
1963년 속리산 자락인 보은에서 태어난 김원중은 1993년 『당시감상대관』을 출간한 이래 많은 동양고전을 번역했다. 그가 번역 출간한 동양 고전은 『사기열전』을 비롯해 『사기본기』, 『사기세가』, 『사기 표·서』 등 사마천의 『사기』 전체와, 『삼국유사』를 비롯해 『논어』, 『맹자』, 『노자』, 『한비자』 , 『정관정요』, 『정사 삼국지』, 『당시』 ,『송시』, 『명심보감』, 『채근담』 등 20여권. 아울러 『사기란 무엇인가』, 『중국 문화사』 등 많은 저서와 40여 편의 논문도 발표했다.
―1999년 『사기 열전』을 시작으로 2011년까지 개인으론 처음으로 『사기』 전체를 번역했는데.
“저는 널리 알려진 핵심 고전을 번역한다. 그게 쉬울 것 같은가. 아니다. 더 어렵다. 왜냐하면, 아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주요 고전을 번역한다는 건, 보람도 크지만 굉장한 스트레스다. 한번은 출판사에서 『논어』를 내자고 했을 때, 처음엔 못 내겠다고 말했다. 대가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떻게 『논어』를 번역했는데, 운 좋게 40쇄를 찍었다. 독자들이 제 책을 많이 봐줘서 정말 고맙다. 독자가 없는 책은 존재할 수 없다.”
―고전을 번역하는 데 원칙이나 방법이 있다면.
“번역하다가 한 50번 정도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하면, 그때야 책이 나오더라. 『사기』의 경우 한 200번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웃음) 저는 기본적으로 직역을 원칙으로 성실하게 번역하되, 늘 가독성을 유지하려고 한다. 아울러 학자들이 읽어봐도 전문적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으면서 중학교 2학년생이 읽어봐도 이해할 수 있는, 전문가와 일반 독자를 동시에 고려해 전문성과 대중성을 함께 가져가려고 노력한다. 각주도 충실하게 달려고 한다. 그런데 묘하게도, 사람들이 책을 읽고 나서 김원중 번역인 줄 알더라.(웃음)”
1995년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문심조룡』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건양대 중문과 교수를 거쳐 9년 전부터 단국대 한문교육과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만 중앙연구원과 중국 문철연구소 방문학자, 대통령 직속 인문정신문화특별위원, 한국학진흥사업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중국인문학회 부회장도 맡고 있다.
―교수와 학자, 번역가로서의 비전을 소개해 달라.
“지금 제일 중요한 것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직분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다. 최근 세 과목 이하로 강의한 적 없을 정도로 수업도 열심히 하려 한다. 정치 사회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울러 학자로서 논문도 많이 쓰려고 노력한다. 작년과 재작년에도 논문을 꽤 많이 썼다. 지금까지 한 40여 편 발표한 것 같다. 너무 번역자로만 알려져 조금은 부담스럽다. 소명의식을 갖고 꾸준히 해나갈 생각도 있지만, 힘들어서 장담하진 못하겠다. 해야 할 작업은 있지만, 당분간 좀 재충전하면서 기존 판본의 개정 등을 통해 완성도를 높이는 작업도 구상 중이다.”
1990년대 이래 새벽 같이 일어나서 연구와 번역을 하고 있다는 김원중의 모습은 어느 새 소 해제의 달인 ‘포정’을 닮아 가고 있었으니. 그러니까 오전 4, 5시쯤 일어나서 논문을 쓰거나 번역을 하고, 이후 학교에서 강의를 하거나 연구를 하다가 밤 9시쯤 퇴근, 10시쯤 잠을 잔다. 체력 관리를 위해, 일주일에 서너 번 정도 탁구나 테니스를 친다. 심지어 약속을 잡으면 스트레스로 글을 제대로 쓰지 못하기에, 논문이든 번역이든 일단 시작하면 끝마칠 때까지 가급적 약속을 잡지 않고.... 그리하여 마치 포정처럼 동양 고전을 육박하고 있었다. “[포정의] 손이 닿는 곳, 어깨가 기대는 곳, 발이 밟는 곳, 무릎이 구부려지는 곳마다 서걱서걱 소리가 나고, 칼을 움직이면 쏵 쏵 소리가 나며 음률에 맞지 않는 것이 없었다.”(「제3편 양생주」 중에서)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허정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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