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같은 이승현의 늪, 출장시간 딜레마
스포츠에서 출장 시간 논란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종목중 하나는 야구, 정확하게 말하면 투수쪽이다. 아무리 훈련받은 선수라해도 사람의 내구력에는 한계가 있는지라 지나치게 자주 혹사를 당한다면 이른바 탈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량적으로 우월한 경우 좋지않은 몸으로 나서주는 것만해도 팀에 도움이 되겠으나 장기적으로보면 과부하 혹은 부상으로 인해 더 긴시간 활약하지 못할 상황이 생긴다.
해당 팀을 바라보는 팬과 지도자는 온도차는 다르다. 팬은 그저 팀이 좋을 뿐이다. 때문에 장기적인 시각에서 유망주의 성장이나 주요 선수들의 활약을 바란다. 유망주는 최대한 기회를 많이 받아 성장해야하고, 주요 선수는 크게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관리를 병행하며 기량을 오래 유지하는게 최상이다.
지도자는 다를 수 있다. 당장 내 코가 석자다. 계약기간이 있더라도 성적 여부에 따라 시즌중 경질당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지라 팬들처럼 아무런 욕심없이 팀의 미래도 같이 보는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유망주에게 경험을 주고, 주요 선수의 몸 상태가 좋아야 장기적으로 이익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렇게하기가 쉽지않다.
상대적으로 출장시간 논란이 많이 일어나지 않는 KBL에서도 혹사로 인한 우려의 시선을 받는 선수들이 있다. 전주 KCC 이지스 소속 파워포워드 이승현(30‧197cm)도 그 중 한명이다. 최근 KCC는 초반 부진을 딛고 상승모드를 타고있는 상태다. 어찌보면 좋아해야 할 일이지만 팬들 사이에서는 특정 선수들의 혹사, 특히 이승현에게 걸릴 수 있는 과부화 여부를 놓고 말이 많이 나오는 분위기다.
올시즌 이승현은 28경기에서 11.14득점, 2.64어시스트, 6.86리바운드를 기록중이다. 기록만 놓고보면 압도적인 성적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겠지만 실상은 다르다. 전 소속팀에서도 그랬듯이 새로운 팀 KCC에서도 대체불가급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평균 출장시간이 33분 19초에 달하는 모습이 이를 입증한다.
물론 과도한 출장시간은 이승현에게만 해당되지는 않는다. 올시즌 함께 둥지를 옮긴 허웅도 평균 출장 시간이 무려 20분 53초에 이른다. 라건아 또한 함께 골밑에서 활약할 외국인선수의 부재로 인해 비교적 많은 출장시간(28분 20초)을 가져가고 있는 모습이다. 현대 농구트랜드가 그렇듯 KCC역시 공간을 넓게 쓰는 농구, 움직임을 많이 가져가는 농구를 구사하는지라 출장시간이 가지는 영향력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그중에서도 이승현은 가장 많은 시간을 뛰고 있다. 그의 별명은 ‘두목 호랑이’다. 고려대학교 재학시절부터 가져오고있는 닉네임으로 불같은 투지와 지치지않는 근성으로 팀원 전체에게 기운을 불어넣어주는 스타일에서 나왔다. 보통 두목하면 부하들을 돌격시키고 자신은 뒤에서 지켜보는 경우도 많지만 이승현은 다르다.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선두에서 맹활약을 펼치는지라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차이가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공동 5위 맞대결로 관심을 모았던 3일 캐롯전에서도 이승현은 40분 풀타임을 소화하며 14득점, 14리바운드, 3어시스트, 1블록슛으로 맹활약했다. 경기 후 가진 승장 인터뷰에서 전창진 감독은 이승현에 대한 미안함을 표현했다. "나는 아직 감독으로서 용감하지 못하고 모자라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자신을 책망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여기에 대한 팬들의 반응도 다양하다. ‘적어도 주전들의 과부하에 대해 감독이 인식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는 의견부터 ‘언제적부터 나온 이야기인데 너무 지켜지지 않고 있다. 면피성 발언으로 보인다’며 곱지않은 시선도 쏟아지는 모습이다. 감독은 리더다. 반성하는 모습도 필요하지만 문제가 있다면 최대한 해결하거나 고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수반되어야 한다.
이승현은 지도자들 사이에서 가장 함께하고 싶은 선수 중 한명으로 불린다. 그도 그럴 것이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하는 살림꾼이면서도 팀내 분위기나 팀 플레이를 먼저 생각하는 마인드까지 갖추고있는 모범생 중의 모범생이기 때문이다. 이승현이 버티어줌으로해서 외국인선수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고 국내선수들의 플레이도 살아나기 일쑤다. ‘기록지로 표현되지않는 선수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이승현은 공격을 떠나 수비와 스크린 플레이 등 궂은 일만으로 경기를 지배할 수 있는 선수다. 신장은 빅맨치고 작은 편이지만 탄탄한 웨이트에서 뿜어져나오는 힘을 바탕으로 몸싸움이나 버티는 수비에서 강점을 드러낸다. 이는 특히 외국인선수와의 매치업시 높은 활용도로 작용하는데 국내 선수가 그런 역할을 잠시나마 해줄 수 있다는 것은 감독의 전략 활용폭을 크게 넓혀주는 효과로 작용한다. 때문에 팬들 사이에서는 용병까지 맡느라 고생이 많다는 의미에서 '용수'라고 불리기도 한다.
여기에 더해 이승현은 굉장히 부지런하다. 자신의 주 영역인 골밑 인근은 물론 외곽에서 3점슛을 던지려는 선수를 쫓아가 블록슛을 시도하고 공이 보인다싶으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몸을 날리는 등 허슬플레이도 서슴치않는다. 동료들 입장에서 미안함을 느끼게 할 정도다. 때문에 이승현의 유무에 따라 경기력 자체가 달라질 수밖에 없고 출장시간 조절에서도 감독을 망설이게 한다. 이른바 ‘이승현의 늪’인 것이다. 하지만 시즌은 길다. 이승현이 좋은 선수임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지만 더 나은 성적을 위해서라도 적절한 관리는 반드시 필요해보인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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