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왜 약물에 의존하게 되는가
시너를 흡입하던 중학교 동창이 말했다. “사람은 배신하지만 시너는 배신하지 않으니까.” 마쓰모토 도시히코 정신과 전문의는 환자를 진료할 때 종종 지금은 죽고 없는 그 동창을 떠올렸다. 일본의 약물의존증 분야 권위자인 그는 전교생의 절반이 1회 이상 시너(환각 물질)를 흡입하는 분위기의 학교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 때는 별로 공부를 하지 않아도 높은 점수를 받던 친구가 중학생이 되더니 폭력 서클 멤버가 되었다. 반복된 시너 흡입으로 결국 소년원에 갔고 졸업식 날이 돼서야 만날 수 있었다. 어머니와 둘이 살지만 거의 집에 들어오지 않아 사실상 혼자 살았던 친구는 왜 시너를 끊지 못하느냐는 질문에 저렇게 답했다.
임상 과정에서 만난 환자들도 비슷한 말을 했다 “사람은 배신해도 약은 배신하지 않는다.” ‘마음속에 뚫린 구멍을 타인과 연결되어 메우지 못하고 약이라는 ‘물건’으로 메우려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는 20여 년 전 의지와 상관없이 의존증 전문병원에 발령받으며 이 분야에 발을 들였다. 중노년 남성 환자가 많은 알코올의존증에 비해 약물의존증의 경우 대부분 10대 중반에 남용을 시작했다. 그는 환자의 어린 나이와 그로 인한 위태로움에 끌렸다. 인생 초기부터 기분을 전환해주는 물질을 원하는 배경에는 가혹한 성장 과정이 자리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25년간 필로폰 등의 (불법) 각성제를 비롯해 수면제와 항불안제(처방약) 등 각종 약물에 의존하는 환자를 만나왔다. 균일하지는 않지만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를 병적인 상태로 몰아간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가족을 부양하며 과한 노동을 해내기 위해 불법 약물을 사용하기도 했다.
마쓰모토 도시히코 전문의는 약물의존증이 범죄가 아니라 병이며, 환자에게 처벌이 아니라 치료와 연결을 지원해야 한다고 꾸준히 목소리를 내왔다. 마약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각종 매체가 그를 찾는다. TV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했다가 범죄를 옹호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일본에서도 약물의존증을 범죄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전체 국민 중 불법 약물을 경험한 숫자가 2~3% 수준이라 미국과 비교하면 마약청정국이 맞지만, 그런 상황이야말로 편견과 오해를 낳는 토양이다. 주로 유명 연예인의 약물 투약 기사로 약물의존 이슈가 다뤄지는 한국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현재 일본 국립정신·신경의료연구센터 정신보건연구소에서 약물의존과 관련된 진료와 연구를 병행하고 있는 그가 최근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고통〉을 출간했다. 서면으로 저자를 만났다.
사람들이 주로 어떻게 처음 약물에 손을 대나?
약물에 처음 손대는 계기를 조사해보면, 이미 약물을 사용하고 있는 사람에게 권유받는 경우가 많다. 권유하는 사람은 대부분 태어나서 지금까지 만난 사람 중 가장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내 존재 가치를 인정해주는 사람이다. ‘나도 이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절로 일으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약물에 손대는 사람이 그만큼 타인에게 인정받지 못해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당연히 그런 사람은 공동체를 신뢰하지 않으며 법률을 비롯해 공동체가 준수하는 규칙의 가치도 일반적인 사람보다 중시하지 않는다. 약물에 손댄 사람이 전부 의존증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사람의 고립이 심각할수록, 현재 놓인 환경이 가혹할수록, 커다란 심리적 고통에 괴로워할수록 의존증에 빠질 위험이 높다.
알코올의존과 달리 약물의존은 대체로 10대에 시작되는데.
약물의존이 ‘제자리의 부재(가정에도 학교에도 자신이 마땅히 있어야 하는 제자리가 없다는 의미)’에서 비롯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사회의 ‘바깥’에서 제자리를 찾기 때문에 불법적인 약물을 매개로 ‘제자리가 없는 사람끼리’ 연결되려 하는 것이다. 그에 비해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약물인 알코올의 경우에는 의존증의 출발점이 ‘제자리의 부재’와 정반대다. 중노년이 되어 직장과 가정에서 커지는 책임에 부담을 느낀 사람들이 ‘과잉된 역할’에서 일시적으로 도망치려는 노력이 알코올의존증의 출발점이다. 적어도 일본에서는 이런 차이가 두 의존증이 빈발하는 연령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약물의존증이 다른 정신과 질환에 비해 치료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이 있다면?
어떤 병이든 정신질환은 기본적으로 ‘재발과 관해(증상이 감소하거나 사라지는 것)’를 반복하는 만성질환이라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우울증은 적절한 치료를 통해 비교적 쉽게 소강상태로 접어들 수 있지만 스트레스 때문에 재발하는 일이 드물지 않다. 그런 점을 고려하면 정신질환은 고혈압이나 당뇨병 같은 내과 질환과 경과가 비슷하다. 그렇지만 불법 약물의존증은 병의 재발(다시 불법 약물에 손대는 것)이 곧 범죄행위를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약물의존증 환자들이 병이 악화되었다고 솔직히 고백하고 타인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체포될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 사회에서 약물의존증에 대한 인식은 어떤가?
여전히 범죄라고 보는 시선이 우세하다. 약물 범죄는 특히 재범률이 높기 때문에 한 번이라도 약물에 손댔다가는 의존증이 되어 낫지 못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약물 범죄의 높은 재범률은 형벌이 약물의존증 회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다. 그럼에도 그런 사실을 외면하고 더욱더 엄벌화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때려도 못 알아듣는 녀석은 더욱 세게 때려야 한다’고 무턱대고 믿을 뿐 애초 ‘때리는 것에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닐까’ 냉정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적은 것이다.
약물을 나쁘게 사용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약물 이외 다른 어려움이 있다는 의료인의 시각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유엔에서 나온 보고서에 따르면 과거 1년 동안 헤로인과 코카인 등 불법 약물을 사용한 적이 있는 사람 중 의존증 상태에 빠진 사람은 11% 정도다. 이 데이터를 언급한 이유는 강력한 의존성을 지닌 약물을 사용해도 의존증까지 가는 사람은 일부라는 사실을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인생이 잘 풀릴 때에 사람은 의존증에 걸리지 않는다. 불법 약물을 사용해도 스스로 제어해낸다. 하지만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비교적 의존성이 적은 약물조차 사용을 제어하지 못한다. 약물을 끊기만 하고 ‘인생에 있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사람은 손쉽게 다시 약물에 손을 댄다. 약물을 다시 사용하지 않아도 도박, 게임, 강박적인 섹스, 과식, 자해 행위에 빠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래의 인생에 희망이 없다면 사람은 약물을 그만둘 마음을 아예 먹지 않는다. 약물에 손대지 않으면 약물의존증이 되지 않는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약물을 그만둔 것만으로는 약물의존증에서 회복할 수 없다. 그래서 의료인은 약물만이 아닌 환자의 인생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책에 약물의존증 환자에 대한 편견을 깨는 내용이 나온다. 병에 대한 이해가 적은 독자에게 좀 더 설명한다면?
인류는 기원전 4000년부터 알코올과 아편 등 강력한 약물과 함께해왔다. 19세기 말까지 유럽 사람들은 의약품으로 아편과 알코올의 혼합물인 아편팅크를 사용했다. 그런데도 의존증은 거의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산업혁명과 세계화, 그리고 무엇보다 ‘사회적 격차’가 확대되면서 의존증이 급격하게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또한 전쟁이 일어날 때마다 각국의 알코올, 담배, 각종 의존성 약물의 사용량이 급증했다. 현재 마약 제조·밀매 조직은 제국주의의 침략을 받아 불합리한 지배를 받았던 과거의 식민지 지역에서 번성하고 있다. 인종 혹은 성적 지향으로 소수자라 할 수 있는, 박해받는 사람들 사이에서 약물 문제가 심각하다.
그걸 아는 게 왜 중요한가?
앞서 말한 대로 인류에게는 어려움과 가혹한 상태를 견디기 위해 약물을 필요로 한 역사가 있었다. 그러니 약물의존증은 약물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라고 여기는 인식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 그리고 약물 규제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눈에 띄는 현상이 있다. 미국에서 특히 두드러지는데, 사실 미국의 약물 규제에는 약물뿐 아니라 ‘흑인’ ‘멕시코인’ ‘중국인’ 등을 백인 사회에서 배제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약물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혐오감은 약물이 범죄라는 사실에서 비롯한 것이지만, 그 범죄화의 배경에는 ‘익숙하지 않은 문화와 인종’을 향한 편견 및 차별 의식이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각성제는 왜 나쁜가? 책에 등장한 환자의 말처럼 알코올의존증에 비해 남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는데.
물론 각성제가 건강에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의료적으로 유용하게 쓰이는 국면도 있다. 이를테면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의 치료에는 각성제가 필요하다. 일본에는 ‘각성제가 (조직폭력배 같은) 반사회적 세력의 자금원이 되니까 나쁘다’는 인식이 있다. 하지만 각성제가 반사회적 세력의 자금원이 되는 것은 그 약물이 규제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즉, 이런 논의는 끊임없이 제자리를 맴돌 뿐이다. 일단 어떤 약물이 규제되어 밀매가 시작되면, 그걸 단속하고 밀매인을 적발하는 공적 조직이 필요해진다. 그리고 그 조직의 인원과 예산을 유지하려면 눈에 띄게 약물의 해악을 선전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그러니 약물 사용의 불법화는 밀매인은 물론 경찰 당국에도 ‘이로운’ 측면이 있는 셈이다.
일본에서는 2000년 이후 벤조계 의존증 환자가 늘었다고 했다. 항우울제와 함께 수면제 등 벤조계 약물을 처방하면서다. 정신과 의사는 ‘백의를 걸친 딜러’라는 표현도 썼는데.
의사가 고통을 끌어안고 있는 환자에게 치료약으로 의존성 강한 약물을 처방하고 그 때문에 의존증 환자가 생겨난다. 이런 현상은 의사가 자신의 역할을 한다고 하지만 사실 약물 밀매인이 백의를 입고 의사인 척하는 것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그렇게 오해를 받는다고 해도 할 말 없는 상황이다. 이런 뜻을 도발적인 표현으로 호소하려 했다.
최근 일본 사회 약물의존 양상은 어떤가?
벤조계라고 불리는 처방약과 더불어 시중 약국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시판약’의 의존증이 임상에서 큰 문제가 되고 있다. 또 대마 때문에 체포되는 청년층이 급증하고 있는데 그 때문에 건강에 문제가 생겨서 병원을 찾는 사람은 딱히 늘어나지 않았다.
약물의존과 관련해 한국의 상황 중 눈여겨보는 점이 있다면?
경찰 당국이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약물남용 방지 계몽을 하기 위해 특히 ‘본보기’로 삼기 좋은 연예인이나 유명 인사 등을 노리고 체포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처럼 성공했던 사람들이 ‘영광스러운 자리에서 몰락하는 장면’이 일종의 엔터테인먼트로서 사람들의 처벌 감정을 충족시키고, 왜곡된 쾌감을 경험하게 만든다. 이러한 ‘사회의 연출’에 속아서는 안 된다.
약물남용 방지 교육을 할 때 한번 손대면 인생이 파멸될 거라는 걸 강조해달라는 요청이 있다고 했다. 교육 방식에 대해 조언한다면?
당연하지만 약물이 건강에 미치는 피해를 정확히 전달해야 한다. 그와 동시에 내 의지로는 그만둘 수 없을 때, 어디에 SOS 신호를 보내면 될까, 어떡해야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를 가르칠 필요도 있다. 약물을 사용한 사람에게 ‘인간 실격’이라는 주홍글씨를 새겨 사회에서 배척할 것이 아니라 무언가 어려운 문제로 괴로워하는 사람이라 여기며 지원의 대상으로 삼는 풍조를 조성해야 한다.
임지영 기자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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