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간 못 바꾼 소선거구제… 尹 대통령 발언으로 다시 소환 [이슈+]

구현모 2023. 1. 5.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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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총리직 미끼로 바꾸려 했지만 한나라당 거절
1개 선거구서 여려명 뽑는 중대선거구제… 지역주의 타파 대안
현역 의원들, 지역구 사라질 걱정에 반대… 35년간 군불만
尹 대통령 변화 제안… 김진표 국회의장 화답에 논의 급물살

‘선거구제 개편’에 대한 논의가 신년부터 정치권을 달구고 있다. 시작은 윤석열 대통령이 한 언론사와 가진 인터뷰다. 윤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승자독식 제도인 현행 소선거구제하에서는 진영 간 양극화가 커진다면서 ‘중대선거구제’를 대안으로 언급했다. 이어 김진표 국회의장이 지난 2일 선거구제 개편을 포함한 선거법 개정을 3월 말까지 마무리 짓겠다고 나서며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사실 선거구재 개편은 정치권의 해묵은 화두다. 1988년부터 시작되어 온 소선거구제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는 35년간 꾸준히 이어져 왔다. ‘망국적 지역구도 타파’를 정치적 숙원으로 여긴 노무현 전 대통령도 집권 당시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개편하자는 제안을 했다. 정의당을 비롯한 소수정당에서도 현행 선거제도는 거대 양당의 지역구 나눠 먹기라고 비판하며 선거구제 개편을 지지했다. 

그러나 선거구제 개편은 정치세력 간 이해관계에 따라 추구하는 방식이 다른 데다가, 중대선거구제의 경우 선거구가 줄어드는 문제를 우려한 지역구 의원들이 반대하면서 번번이 실패했다. 

◆지역구도 타파 외친 盧 “중대선거구제 받으면 대연정 수용”

소선거구제는 1개의 선거구에서 표를 가장 많이 얻은 한 사람만 선출하는 제도다. 중대선거구제는 소선거구제보다 넓은 범위의 1개의 선거구에서 2~3인의 대표를 선출하는 제도를 의미한다. 현행 소선거구제는 1988년 13대 총선을 앞두고 도입됐다. 이는 당시 확고한 지역 기반을 가진 노태우(TK), 김영삼(PK), 김대중(호남), 김종필(충청) 등 여야 지도자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소선거구제는 지역 대표성을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도입된 것이지만 지역주의가 공고화되는 문제를 피할 수 없었다. 영남 지역에서는 보수정당에 호남 지역에서는 진보 정당에 몰표를 던지는 현상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후보자들의 자질이나 도덕성보다는 정당만 보고 투표하는 ‘묻지 마 투표’ 양태도 심각했다.

이에 참여정부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임기 중 선거구제 개편을 시도했다. 소선거구제하에서는 영호남을 특정 정당이 독식하며 지역주의가 공고화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지난 2003년 4월 2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시정연설을 하는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노 전 대통령은 2003년 4월2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내년부터 특정 정당이 특정 지역에서 2/3 이상의 의석을 독차지할 수 없도록 여야 합의로 선거법을 개정해주셨으면 한다”며 “이러한 저의 제안이 내년 17대 총선에서 현실화되면 저는 과반수 의석을 차지한 정당 또는 정치연합에 내각 구성권한을 이양하겠다”고 말했다. 야당이 선거구제 개편을 수용하면 과반정당에게 내각을 넘겨주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이었지만 야당뿐만 아니라 여당 내에서도 부정적인 기류가 강했다.

노 전 대통령은 2005년에 ‘대연정’ 카드까지 꺼내며 선거구제 개편을 제안하기도 했다. 당시 제1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이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바꾸는 선거구제 개편을 동의해주면 국무총리와 장관 임명권을 야당에게 넘기겠다는 파격 카드였지만 한나라당은 임기가 2년밖에 남지 않았던 노 전 대통령의 제안을 받지 않았다.

◆소수정당 “거대 양당이 독식 막고 다당제 구현해야”

정의당을 비롯한 소수정당에서도 현행 소선거구제는 양당체제를 심화시킨다며 선거구제 개편을 주장해왔다. 프랑스 정치학자 모리스 뒤베르제는 소선거구제에선 유권자의 사표 방지 심리가 작동해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에게로 표심이 쏠린다며 양당체제가 강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한다.

지난 20대 국회에서 정의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사활을 걸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의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제도다. 총 의석수는 정당득표율로 정해지기 때문에 지역구 후보들은 낙선돼도 전국단위에서 정당 후보들에 대한 득표율이 높으면 비례대표로 이를 채워주는 방식이기 때문에 소수정당이 국회에 진출하거나 입지를 강화할 가능성이 커진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 뉴시스
지난 20대 국회에서는 물리적 충돌을 비롯한 극렬한 갈등 끝에 결국 ‘비례대표 47석 중 30석에만 연동형 캡’을 적용하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통과시켰다. 하지만 그나마도 거대 양당이 비례대표 후보만 내는 ‘위성정당’이라는 편법 정당을 만들어 비례대표를 대거 당선시키며, 제도의 본래 취지를 퇴색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다만 정의당은 소선거구제 개편에는 동의하지만 대안으로 떠오른 중대선거구제 등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특정 선거구제를 염두에 두고 개편하는 것이 아니라 다당제 전환을 목표로 둬야 한다는 것이다.

20대 국회에서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지난 3일 열린 의원총회 모두발언에서 “국민적 개혁의 열망을 ‘영남 민주당’과 ‘호남 국민의힘’을 살리는 협소한 목표에 가두지 말아야 한다”며 “유권자 한 표 한 표의 효능감을 높이기 위해서 정당 지지율과 의석수의 일치를 중요한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가운데)와 정개특위위원인 정희용(왼쪽), 장동혁 의원(오른쪽)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원내대표-정개특위위원 선거구제 개편 관련 비공개 긴급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선거구제 개편 위해서는 현역 의원 기득권 내려놓아야

여야 모두 겉으로는 선거구제 개편의 필요성에 동의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속내는 각각 다르다. 특히 수도권 121석 중 100석을 보유한 민주당과 영남권 65석 중 58석을 가진 국민의힘은 상당수의 의석을 내줘야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득실계산에 바쁘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전날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호남 같은 곳은 3~4인 선거구제를 해도 국민의힘이 안 되고 정의당이 될 가능성이 높지만 대구·경북은 민주당 지지율이 30%, 부산은 40% 이상 나오기 때문에 영남 민주당 당협위원장들은 선거구제 개편 논의에 쌍수를 들고 환영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중대선거구제로 개편 시 지역구가 통합되면서 지역구가 사라지는 곳이 나오기 때문에 현역 의원들의 반발은 앞으로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종인 국민의힘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전날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선거구제 개편에 대해 “거의 불가능하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김 전 위원장은 “내년에 당장 총선인데 지금 국회에 중대선거구제를 한다고 해서 과연 실현되겠느냐”며 “지금 현역 의원들이 선거구가 줄어드는 것에 결사반대를 하기 때문에 성공하기는 굉장히 힘들다. 초선이랑 재선 의원들은 자기 선거구가 없어지니까 불안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구현모 기자 li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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