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가 '재벌집 아들들' 전면 등판…왕관의 무게 견딜까

한전진 2023. 1. 5.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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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속 승진 통해 '오너 2·3세' 역할 확대
신사업 맡으며 본격적인 '경영 시험대' 올라
왼쪽부터 신유열 롯데케미칼 기초소재사업 상무, 이선호 CJ제일제당 식품성장추진실장, 김동선 한화솔루션 갤러리아부문 전략본부장(전무), 홍정혁 BGF 신사업개발실장(사장), 담서원 오리온 경영관리담당 상무 / 사진=각사제공

주요 유통사들이 오너 2·3세를 경영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후계자의 역량을 키워 향후 원활한 승계를 이루겠다는 구상이다. 기업들은 이들에게 신사업 등 중책을 맡기며 경영 능력 시험에 나섰다. 관건은 능력에 대한 '증명'이다. 오너 2·3세들은 대부분 해외 유학파다. 글로벌 감각과 신사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물론 자질 논란도 따른다. 이들이 입지를 굳혀나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재벌집 아들들의 '등판'

5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롯데그룹은 2023년도 정기 임원 인사에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장남 신유열 롯데케미칼 일본지사 상무보를 상무로 한 단계 승진시켰다. 신 상무는 지난 2020년 일본 롯데에 입사하며 이름을 알렸다. 지난해 5월 롯데케미칼 일본지사에서 기초소재 영업과 신사업 담당 임원으로 발탁됐다. 이후 7개월 만의 승진이다.

롯데케미칼 'Every Step for Green' 전시를 찾은 신동빈 회장이 지난 19일 100% 재활용이 가능한 자체개발 HDPE 소재로 제작한 '가능성(Possibility)'호를 살펴보고 있다. / 사진=롯데지주

CJ그룹도 지난 10월 인사에서 이선호 경영리더(실장)를 CJ제일제당 식품 성장추진실 수장으로 올렸다. 그는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장남으로 지난 2013년 CJ에 입사 후 2016년부터 CJ제일제당에서 근무했다. 이후 2021년 연말 경영리더에 올라 식품전략추진실 전략기획1담당을 맡아 미주 지역을 총괄했다. 이 실장은 앞으로 글로벌 식품 전략 전체를 관장하게 된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삼남 김동선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상무도 같은 시기 전무로 승진했다. 김 전무는 2016년 한화건설 신성장전략팀장을 맡아서 일하다가 2017년 퇴직했다. 이후 2020년 한화에너지 글로벌전략 담당으로 입사하며 복귀했다. 이후 2021년 5월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상무로 승진했다. 사실상 김 전무가 한화의 유통 사업 전반을 맡는 구조로 재편되고 있다. 

오리온그룹 담서원 경영지원팀 수석부장도 최근 상무로 승진했다. 그는 오리온 담철곤 회장의 장남이다. 2021년 7월 오리온 입사 이후 1년 5개월 만의 초고속 승진이다. 이외에 BGF그룹은 홍석조 회장의 차남인 홍정혁 BGF에코머티리얼즈 대표를 지난 11월 사장으로 승진시켰다. 앞서 홍 회장의 장남인 홍정국 BGF 대표이사 사장은 지난 2020년 동생보다 먼저 사장 자리에 올랐다

신사업이 '데뷔' 무대

눈에 띄는 것은 오너 2·3세들이 대거 신사업에 배치됐다는 점이다. 이들의 데뷔 무대인 셈이다. 신 상무는 롯데케미칼의 신사업 발굴을 담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수소와 배터리 소재 등 기초소재 사업이 대표적이다. 롯데그룹은 "신 상무는 그룹의 신성장 동력인 수소, 전기 소재 분야 글로벌 협력 강화에 기여한 점을 인정받아 승진하게 됐다"며 "기존 역할이 변동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선호 실장은 미국프로농구(NBA) 구단 LA 레이커스의 글로벌 마케팅 계약 체결을 주도하기도 했다. / 사진=CJ

이 실장은 해외 식품사업 전략 전반을 관장한다. 미주를 넘어 유럽, 아태지역을 포괄하는 글로벌 컨트롤 타워 역할을 수행한다. CJ측은 "이외에도 사업 성장을 위한 전략기획, 신사업 투자, 식품성 식품 등 미래 성장동력 발굴과 사내벤처와 스타트업 협업 등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며 "산하에 이노베이션, 뉴프론티어 담당 조직도 신설해 신사업 발굴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했다. 

김동선 전무도 한화표 '유통 사업'을 키워야 하는 중책을 맡았다. 호텔은 물론 백화점 사업까지 전담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화솔루션 갤러리아 부문 신사업전략실장을 겸하면서 미국 3대 버거 '파이브 가이즈'를 유치해 주목을 받았다. 내년도 상반기에 국내 1호점을 개점한다는 계획이다. 이는 그의 첫 데뷔작으로 평가된다. 한화가의 막내인 김 전무는 경영 성과가 누구보다 절실하다. 

홍정혁 사장은 기존 BGF에코바이오 대표와 BGF 신사업담당을 겸직했다. BGF그룹은 홍 사장 승진과 관련 "신성장동력인 소재 사업 분야를 육성하고 책임경영을 강화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BGF그룹은 신성장 동력 마련을 위한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주류시장 확대에 대응하기 위한 주류 TFT, 사회적 역할을 강화하기 위한 전담 조직인 ESG팀도 새로 만들었다.

기대·우려 교차…'왕관'의 무게 견딜까

신사업과 글로벌 시장 확대는 이제 업계의 필수요건이다. 극심한 경기침체로 업황이 날로 불투명해지면서다. 주력 분야인 만큼 해당 분야에서의 2·3세들의 성과가 중요하다. 그래야만 원활한 승계를 이룰 수 있다. 이는 여러 경영 후계자들이 밟는 기초 코스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SPC그룹 3세인 허희수 부사장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각자 신사업에서 성과를 내며 입지를 굳혔다. 

물론 앞선 오너 2·3세들은 저마다 리스크를 갖고 있다. 신유열 상무는 국적 문제가 있다. 현재 그는 일본인이다. 원활한 경영 활동과 향후 승계를 위해서는 일본 국적 포기가 필수다. 과거 신동빈 회장도 이중 국적에서 일본 국적을 포기했다. 업계는 신유열 전무가 병역이 면제되는 만 38세 이후에 한국 국적을 취득할 것으로 본다.

이 실장과 김 전무는 지워내야 할 과거가 있다. 이 실장은 지난 2019년, 김전무는 2017년 각각 마약과 주취폭행 등 불미스러운 일을 겪으면서 아직 이들에 대한 국민적 시선이  곱지 않다. 앞으로 '능력'과 '성과'로 극복해 내야 하는 셈이다.

업계에서는 오너 2·3세들의 등판을 두고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나타낸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기업들이 오너 2·3세들에게 중책을 맡기며 본격적인 경영 능력 시험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며 "이들이 경험한 글로벌 감각, 실무 능력에 대한 기대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경제적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만큼, 아직 검증되지 않은 이들의 능력은 리스크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전진 (noretreat@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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