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선거구제 개혁’ 논의 본격화…개정 놓고 여야 ‘동상이몽’

김병관 2023. 1. 5.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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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법 개정 놓고 ‘동상이몽’
속내 복잡한 국민의힘
윤 대통령 제안에 겉으로는 보조 맞춰
영남·강원 등 텃밭선 의석 뺏길라 우려
수도권선 전체적으로 찬성 의견 많아
이슈 선점당한 민주당
이재명 “꼭 중대선거구제일 필요 없어”
중대선거구제 호남 반대, 영남선 반겨
준연동형 비레대표제 손질 여야 공감

윤석열 대통령이 새해 화두로 띄운 ‘중대선거구제 개혁’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다음주 초 소위를 열고 내년 총선에 적용할 선거제 심사에 착수한다. 지난 총선에서 ‘위성정당’ 논란을 부른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개선 방안과 함께 중대선거구제 도입 여부가 비중 있게 다뤄질 전망이다. 

◆도입 추진하는 국민의힘, 텃밭에선 당혹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이 직접 꺼낸 의제인 만큼 표면적으로는 중대선거구제 도입에 보조를 맞추고 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4일 정개특위 소속 여당 의원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것으로 당내 의견 수렴에 나섰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왼쪽),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 연합뉴스
주 원내대표는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일반적으로 중대선거구제가 득표에 따른 의석을 보장하고 양당 정치의 폐단보다는 다당제를 지향하기 때문에 가급적 중대선거구제로 옮겨 갈 수 있는 방향으로 노력해보자는 얘기가 있었다”고 밝혔다. 주 원내대표는 전문가들의 검토 등을 거친 후 정책 의총을 열어 소속 의원들의 의견을 모으겠다고 했다.

그러나 속내는 복잡하다. 중대선거구제 도입 시 텃밭 지역구인 영남·강원권에서 더불어민주당에 의석을 뺏길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강원이 지역구인 정개특위 여당 간사 이양수 의원은 “이해관계가 첨예해 내년 총선에 도입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남권의 한 의원도 통화에서 “당장 돌아오는 총선에 적용한다면 (협상 전망이) 부정적일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이 영남에서 차지할 의석만큼 국민의힘이 호남 의석을 확보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는 것도 고민되는 지점이다.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도 이날 중대선거구제와 관련한 취재진 질문에 “윤 대통령이 소신을 말씀하신 것”이라면서 “정당 간 이해관계가 있어서 누가 하란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 답하며 발을 뺐다. 

다만 수도권 선거에선 승산을 볼 수 있다는 계산이다. 수도권의 한 의원은 “서울 49개 의석 중 8석밖에 없는 상황인데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면 유리해질 것”이라고 했다.
與 정개특위 회의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가운데)와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인 정희용 의원(왼쪽)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선거구제 개편 관련 비공개 긴급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호응 안 하는 민주당, 비례제 확대 거론 

민주당은 선거제 개혁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면서도 중대선거구제에는 호응하지 않고 있다. 이재명 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과거에) 제3의 선택이 가능한 정치 시스템이 바람직하다는 말씀을 드렸고 그 방식이 중대선거구제여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비례대표를 강화하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이 선점한 이슈에 휩쓸려선 안 된다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선거제 개혁 방안으로 비례대표제 확대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호남 지역의 한 의원은 통화에서 “중대선거구제로 바꾸는 것만으로 정치 혁신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이 저뿐만 아니라 의원들 사이에 있다”며 “연동형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더 논의되고 추진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다만 민주당이 2당 지위를 구축한 부산 등 영남권에선 중대선거구제를 반기고 있다. 영남권의 한 의원은 “중대선거구제를 도시에 도입하고 농촌 지역은 소선거구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학계에선 중대선거구제가 이론상으로는 사표를 줄이고 다당제를 촉진하지만, 실제로는 정치 양극화를 심화할 수 있어 도입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국선거학회장인 성공회대 김형철 교수는 “중대선거구제는 거대정당들에 유리한 제도”라며 “복수공천이 가능하기 때문에 2∼4인 선거구에서도 거대정당이 의석을 나눠 가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비슷한 제도를 도입한 나라가 “쿠웨이트, 핏케언 제도, 바누아투 3개국”이라며 “이들 국가의 민주주의 수준을 봤을 때 우리나라에 적합한지 (고민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가 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를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與野, 준연동형 비례제 손질엔 공감대 

여야는 위성정당으로 취지가 퇴색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내년 총선 전에 손질하겠다는 입장이다. 민주당 소속 남인순 정개특위원장은 이날 MBC라디오에서 “여야 원내대표가 합의한 저희 소위의 의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개선”이라고 밝혔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당 주도로 지난 총선에 도입된 선거제다. 비례대표 47석 중 30석을 각 정당에 전국 정당 득표율의 50%씩 우선 배분하는 제도다. 군소정당에 정당 득표율에 준하는 의석을 보장해 양당 독점 구조를 깨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민주당과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이 각각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 미래한국당을 창당하는 꼼수를 부리면서 되레 양당제가 강화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정개특위는 지역구 후보를 공천한 정당은 비례대표 후보 추천도 의무화해 위성정당을 방지하는 방안, 비례의석을 늘려 위성정당의 필요성을 없애는 방안 등을 논의 중이다. 여당 간사인 이양수 의원도 이날 “민주당이나 우리 당이나 연동형 비례제를 손봐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병관·박지원·배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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