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후 생명선이 길어졌어요" '긍정 삐약이'신유빈의 '깡충'토끼해[신년인터뷰]
"(손금)생명선이 이~만큼 길어졌어요."
2022년 세밑, 신년 인터뷰를 위해 인천 서구 검단동 대한항공 탁구체육관에서 만난 신유빈(19·대한항공)이 오른손 수술 자국을 들여다보며 생긋 웃었다. '검은 토끼' 인형을 건넸더니 이내 강서브를 날리며 '꾸러기' 미소를 지어보였다. '2004년생' 신유빈에게 2022년은 탁구인생, 최대 시련이었다. 2023년 계묘년 새해 '긍정의 아이콘' 유쾌한 탁구신동이 돌아왔다. 상처를 날려보낸 그녀의 미소와 함께 한국 탁구의 희망이 돌아왔다.
▶"3번의 부상, 2번의 수술… 이젠 다 극복했어요"
눈부신 재능으로 탁구 꽃길만 걸어온 신유빈은 '성장통'을 제대로 겪었다. "별로 살아보진 않았지만 인생에서 제일 힘들었어요"라며 마음을 털어놨다. 2021년말 휴스턴세계탁구선수권에서 다친 손목이 1년 넘게 그녀를 괴롭혔다. 항저우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선발전도 기권하고 재활에 전념했지만 탁구를 할라치면 부상이 재발했다. 2번의 수술대보다 무서웠던 건 가장 좋아하는 탁구를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었다. "이 정도로 아플 줄 몰랐어요. 난생 처음 수술도 하고… (뼈가)또 부러지면 어쩌지, 탁구를 못하게 될까봐… 매일 울었어요."
손바닥의 상흔만큼 마음의 상처가 깊었다. "엄청 우울했어요. 하루에 3번씩 훈련하다 웨이트트레이닝 말곤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니 힘들었어요. '다들 맘 편하게 하라'고 했지만 '어떻게 편해?' 생각했죠. 탁구 보기도 싫고, '탁구'라는 단어조차 듣기 싫었어요. '그냥 시간을 보내자' 생각했어요."
다행히 어린 만큼 회복이 빨랐다. 탁구를 다시 하게 되면서 상처는 빠르게 아물었다. "뼈 세 번 부러지고, 두 번 수술하고, 다치기 전까진 몰랐는데 이젠 아픈 선수들 마음을 너무 잘 알겠더라고요"라고 했다. "매일 울면서 정말 힘들었지만 이젠 극복했어요. 선수 하면서 누구나 언제든 다치고 아플 수 있잖아요? 다시 다친다 해도 돌아올 자신, 이겨낼 자신 있어요"라며 웃었다.
▶"가장 힘든 순간, 선물처럼 찾아온 우승"
신유빈은 두 번째 수술 직후인 지난해 11월 슬로베니아 노바고리차 월드테이블테니스(WTT) 컨텐더 대회에서 단식, 혼합복식 '2관왕'에 올랐다. 세계랭킹이 34위에서 19위로 수직상승했다. '세계 20위 이내 자동선발' 규정에 따라 2023년 여자탁구 국가대표에 선발됐다. 부상으로 선발전을 기권해야 했던 1년 전과는 '극과 극' 상황. 항저우아시안게임이 코로나로 1년 연기되면서 새해 아시안게임 출전 기회도 다시 잡게 됐다. 신유빈은 "운이 좋다고 생각해요. 주변에선 '온 우주가 널 돕는다'고…"라며 웃었다. "작년엔 아시안게임 나갈 확률이 0%였지만, 지금은 0.1%는 되잖아요?"라고 반문했다. "만약 결승에서 졌으면 세계 21위였대요. 한끗차로 20위 내에… 정말 운이 좋았죠. 신기했어요. '랭킹'으로 태극마크를 달다니 믿어지지 않아요."
최악의 한해, 위기를 기회로 바꾼 건 신유빈의 담대한 멘탈이었다. 운명의 결승전, 세계 14위 양샤오신(모나코)을 상대로 3게임을 먼저 따낸 후 3게임을 내주며 위기에 몰렸지만 끝내 마지막 게임을 따내며 첫 우승을 완성했다. "훈련 복귀 후 4~5일 연습하고 나간 대회였거든요. 긴장이 많이 됐지만 '연습도 못했는데 얼마나 잘하겠다고 긴장해?'라고 생각했죠. 경기를 하다보니 몸이 풀렸어요. 양샤오신과의 결승에서 3-0으로 앞서다 3-3이 됐을 때도 아쉽지 않았어요. '내가 딱 이만큼 하고 온 거다. 더 욕심내면 도둑이다' 했죠." 마음을 비운 그녀의 '불꽃' 드라이브가 작렬했다. "힘들었던 시간에 대한 보상, 선물같고 기적같은 우승이었어요." 탁구소녀의 '눈물바람' 한해는 우승 동화로 막을 내렸다.
▶"중국선수들과 대등한 경기하는 게 목표"
지난 2년간 신유빈을 지켜본 김경아 대한항공 코치는 "사람들은 유빈이를 '천재'라고 생각한다. 오해도 많다. 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유빈이만큼 노력하는 선수가 없다"고 했다. 현역 시절 '독종'으로 유명했던 김 코치는 "노력 없이 저런 탁구를 치는 건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신유빈은 영리하지만, 훈련 때만큼은 '될 때까지 죽어라 하는' 우직한 스타일이다. 반복되는 부상도 어쩌면 이 때문이다. 휴스턴세계선수권, 신유빈은 뼈에 금이 간 채 끝까지 뛰었다. "다음엔 그렇게 아프면 안 뛰어야죠" 한다. 아직 멈춰야할 타이밍을 모른다. "훈련을 많이 하다보면 몸이 아파요. 기계가 아니니까. 근데 어느 정도까지 해야 하는 건지 그게 제일 어려워요." 스스로를 끝도 없이 몰아붙이는 이유는 단 하나다. "더 잘하고 싶으니까요. 중국 언니들만큼 잘하고 싶으니까요."
그녀의 목표도 단 하나다. "중국, 일본을 상대로 5대5, 6대4의 대등한 경기를 하는 것". 다양한 전형의 선수를 만날 수 있는 일본 T리그에 도전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녀는 최근 T리그에서 일본 에이스 히라노 미우를 꺾어 화제가 됐다.
'왼손 에이스' 임종훈(KGC인삼공사)과의 혼합복식도 급상승세다. "(임)종훈오빠가 톱랭커잖아요. 오빠가 다해주니까, 전 파이팅만 열심히 하고, 공만 열심히 주우면 돼요. '버스 탄' 느낌이죠"라며 웃었다. 모든 걸 파트너 공으로 돌렸지만 신유빈이 혼합복식에 강한 이유는 남자 서브를 안정적으로 받아내고, 남자 드라이브를 맞드라이브로 받아칠 수 있는 기술력 때문이다. 일본 미즈타니 준-이토 미마조가 도쿄올림픽 금메달을 가져갔듯, 혼합복식은 비중국권 국가들의 전략종목이다. 신유빈 역시 "당장 메달을 말할 순 없겠지만, 메달 확률을 1%씩 올려나가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새해, 신유빈표 '행복탁구'가 다시 시작된다
신유빈은 대한탁구협회가 만든 2023년 달력의 '1월 모델'이다. 새해를 맞는 기분을 묻자 "행복하다"고 했다. "라켓만 들 수 있어도 감사하고 행복하죠.. 좋은 성적을 내서 행복한 게 아니라 탁구를 칠 수 있어 행복해요."
다시 태극마크를 단 그녀의 시선은 올해 항저우아시안게임, 내년 파리올림픽을 향해 있다. "혼합복식도 잘하고 싶고, 단식도 한자릿수 랭킹으로 올라서고 싶어요"라며 눈을 반짝였다. 탁구 빼고 새해 '버킷리스트'는 단 하나. "탁구친구 (유)다현, (이)정연이랑 제주도 여행 가는 것"이라고 했다. 팬들을 향한 새해인사도 잊지 않았다. "새해엔 웃는 일이 진짜 많았으면 좋겠어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시인의 싯구처럼 그늘을 지나며 신유빈은 훌쩍 자랐다. 속상하면 울고, 기쁘면 웃던 소녀는 눈빛도, 말투도 깊어졌다. "살면서 힘든 일은 계속 있는 거니까 잘 이겨내는 공부를 해야죠. 계속 배워나가야죠." '단단해졌다'는 말에 "좀 컸나요?"라며 샐쭉 웃는다. 어른인 듯 아이같은 열아홉 살. '다시 신유빈'의 시대다.
신유빈은 4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리는 새해 첫 대회, 아시아탁구연맹(ATTU) 세계탁구선수권 아시아 대륙예선(6~12일), 월드테이블테니스(WTT) 도하 컨텐더(15~21일) 참가를 위해 출국했다.
인천=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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