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까지 예약 꽉 찼다"…아르헨 원정출산 줄 선 러 부모들, 왜?

송지유 기자 2023. 1. 5. 0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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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인들 사이에서 아르헨티나 원정 출산 붐이 일고 있다.

러시아인들은 전쟁 전에도 미국 플로리다 등으로 원정출산을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전쟁 이후 미국 비자를 발급받기가 어려워지면서 미국에서 멀지 않은 남미 국가 중 아르헨티나가 인기를 끌고 있다는 분석이다.

러시아 정부가 예비군 동원령 등 강제 징집에 나서면서 원정출산 후 아르헨티나에 정착하는 러시아인들도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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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입국자 상당수, 출산 앞둔 러시아 女…무비자 입국·의료수준 양호한 아르헨 각광…"자녀에게 러시아 국적 물려주기 싫어"…아이 아르헨서 태어나면 부모도 2년내 국적취득 가능
아이를 낳으려고 아르헨티나로 몰려가는 러시아인들이 늘고 있다. 사진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거리를 걷고 있는 한 가족. /ⓒAFP=뉴스1

러시아인들 사이에서 아르헨티나 원정 출산 붐이 일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국·유럽 등 주요국이 러시아인에 대한 비자 발급을 제한하는 등 각종 제재에 나서자 자녀에게 만큼은 러시아 국적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3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은 주아르헨티나 러시아 대사관을 인용해 지난해 아르헨티나에 입국한 러시아인이 2000~2500명이었으며 이 중 상당수가 출산을 앞둔 여성이었다고 전했다. 러시아 대사관 측은 "올해는 원정출산 목적으로 아르헨티나를 찾는 러시아인이 1만명을 넘어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러시아 임산부를 위해 교통·서류·숙박·병원 등을 알선하는 원정출산 중개업계의 한 관계자는 오는 5월까지 예약이 꽉 차 있다고 귀띔했다. 그는 "매일 12명 이상의 러시아 임산부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한다"며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인들의 원정출산이 급증하자 아르헨티나 병원들은 러시아어 광고까지 내걸었다"고 말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텔레그램에 개설된 아르헨티나 원정출산 관련 한 단체 대화방에도 러시아인 3000여명이 가입했다. 러시아 임산부 대다수가 아르헨티나에서도 의료시설이 잘 갖춰진 부에노스아이레스 일대 병원을 선호한다. 이들은 이 대화방에서 실력이 좋은 산부인과 의사 등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는 등 활발히 대화한다.

아르헨티나 여권이 있으면 유럽연합, 영국 등 171개국을 무비자로 갈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후 세계 주요국들이 러시아인에 대한 비자 발급에 제한을 두자 새로 태어날 자녀에게 아르헨티나 여권을 선물하고 싶어하는 부모들이 늘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

아르헨티나 원정출산 비용은 만만치 않다. 항공료만 수백만원에 달하고, 통역·서류 등 작업 대행업체에 최대 8000파운드(약 1200만원) 수수료를 지불해야 한다. 의료 서비스가 좋은 병원의 경우 출산 비용으로 최대 4000달러(약 500만원)를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숙박·식사 등을 더하면 원정출산 경비는 더 늘어난다.

아르헨티나로 원정출산 수요가 몰리는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에도 무비자로 입국이 가능해서다. 러시아인들은 전쟁 전에도 미국 플로리다 등으로 원정출산을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전쟁 이후 미국 비자를 발급받기가 어려워지면서 미국에서 멀지 않은 남미 국가 중 아르헨티나가 인기를 끌고 있다는 분석이다.

아르헨티나는 출생지주의에 따라 자국 영토에서 태어나면 즉시 국적을 부여한다. 아르헨티나 여권이 있으면 유럽연합(EU) 국가, 영국 등을 포함해 171개국을 무비자로 갈 수 있다. 미국 장기 비자를 받기도 수월한 편이다. 아이가 아르헨티나 국적을 받으면 부모도 2년 이내에 아르헨티나 국적을 취득할 수 있다.

지난해 9월 25일(현지시간) 러시아의 부분 동원령을 피해 주민들이 블라디카프카스에서 차량을 타고, 가방을 끌고 조지아 국경의 세관 검문소를 향하고 있다. / ⓒ AFP=뉴스1

남미 국가 가운데 아르헨티나의 민간·공공 의료 서비스 질이 비교적 높은 것도 한 요인이다. 러시아인을 대상으로 원정출산을 알선하는 한 관계자는 "모든 사람들이 러시아의 현재 상황에서 대안을 찾고 있다"며 "특히 앞으로 태어날 아이에게 아르헨티나 여권으로 자유를 주길 원하는 부모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러시아 정부가 예비군 동원령 등 강제 징집에 나서면서 원정출산 후 아르헨티나에 정착하는 러시아인들도 늘고 있다. 최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자녀를 출산한 한 러시아 여성은 "군 동원령과 서방의 경제 제재로 러시아에서 사는 것이 어려워 졌다"며 "남편이 소프트웨어 개발자인데 러시아로 돌아가지 않고 이곳에서 시민권을 신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송지유 기자 cli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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