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새통 아트페어, 찬바람 경매…'1조원대 미술시장'의 온도차

오현주 2023. 1. 5.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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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첫 한국 미술시장 1조원 돌파
미술품 유통액 1조377억원 기록 37.2%↑
아트페어·화랑 1년새 59.8% 초고속 성장
100개 육박 아트페어에 87.5만명 다녀가
경매시장은 "글로벌 경기침체에 직격탄"
2335억으로 마감하며 1년새 30.9% 털썩
지난해 9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 열린 ‘프리즈 서울’ 전경. 독일작가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정오의 엑스레이’(2020)가 걸린 갤러리 타데우스로팍 부스 주변에 관람객들이 북적이고 있다. 아트페어의 인기 등에 힘입어 지난해 한국 미술시장이 1조원을 돌파한 것으로 추산됐다. 작은 그림은 ‘2018∼2022년 국내 미술시장 규모 추이’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다이어그램=문승용 기자).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1조’는 그저 꿈이었다. 한국 미술시장에선 현실적이지 못한 숫자란 얘기다. 1조는커녕 5000억도 입 밖에 낼 수도 없던 때가 불과 2년 전이니까. 2021년 1월, 2020년의 미술시장을 되돌아보던 그땐 참으로 허탈했더랬다. 화랑·경매·아트페어 등을 다 동원해 팔 수 있는 미술품은 모조리 팔아낸 매출액이 3848억원 남짓. 5000억원을 목표로 조심조심 끌어올리던 미술시장이 다시 고꾸라진 형국이었다. 그 이전까지 13년간(2008∼2020) 한국 미술시장은 5000억원의 벽을 넘지 못했던 터. 2017년의 4942억원이 2007년(6045억원) 이래 최고치였던 거다.

그런데 불현듯 ‘1조’가 눈앞의 숫자가 됐다. 지난해 한국 미술시장이 사상 처음 1조원을 넘긴 거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가 4일 발표한 ‘2022 미술시장 규모 추산 결과’는 지난해 한국 미술시장에서 거래한 미술품 유통액을 1조 377억원으로 찍었다. 2021년 7563억원에 비해 37.2% 늘어난 수치다.

조짐은 있었다. 지난해가 아닌 2021년, 초반부터 드라마틱한 반전의 신호가 뜨면서다. 그해 1월 타계한 작가 김창열(1929∼2021)의 ‘물방울’에서 점화한 컬렉터의 관심이 점차 확산됐던 건데. 뭉칫돈은 일단 경매시장으로 몰렸다. 2021년 상반기 국내 경매시장의 거래액이 1483억원. 2020년 한 해 전부를 집계한 1153억원보다도 많았다. 결국 2021년 연말결산에선 “한국 미술품 경매역사를 통틀어 최고액”인 3294억원의 성적을 써냈다. 때를 엿보던 작품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고 그에 화답하듯 무섭게 팔려나갔다고 할까.

전체 미술시장에서 경매가 차지하는 비중은 30% 안팎이다. 이외에 화랑과 아트페어 등에서 거둔 성과가 합쳐져 미술시장의 규모가 나온다. 그러니 그때 처음으로, 모든 매출액을 합산하면 ‘1조원대를 넘볼 수 있는 게 아닌가’ 했던 거다.

아트페어, 미술시장 대세 되나

지난해 ‘1조원대 미술시장’을 만든 동력은 아트페어와 화랑이다. 바닥을 친 미술시장에 열풍을 몰고 왔던 경매는 되레 판매액이 감소했다. 화랑의 매출액은 크게 늘어 5022억원으로 추산(2021년 3142억원 대비 59.8% 성장)했다. 하지만 강세는 아트페어에 찍혔다. 화랑·경매에 비해 처졌던 아트페어가 3020억원을 기록하며 2021년에 집계한 1889억원에 비해 59.8%가 늘어났으니까.

지난해 5월 ‘아트부산 2022’의 전경. 미국 그레이갤러리가 내놓은 데이비드 호크니의 ‘전시풍경’(2018) 주변에 관람객들이 북적이고 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무엇보다 “단군 이래 최대 미술장터”로 지난해 9월에 열린 ‘키아프서울’과 ‘프리즈서울’의 영향력이 견인한 성장세라 할 만하다. 한 해 내내 일반 대중에까지 아트페어에 대한 기대감을 키운 것이 적중했다. “난생 처음 아트페어라는 데 와봤다”는 초보컬렉터가 현장에 차고 넘쳤으니까. ‘그림 반 사람 반’이던 3월 ‘2022 화랑미술제’에 5만 3000여명이 찾아 177억원어치 미술품을 사들였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5월 ‘아트부산 2022’에선 10만 2000명이 방문해 746억원어치를 사갔다. 다만 매출규모로만 볼 때 9월 ‘키아프 서울’의 성적은 기대에 못 미쳤다. 7만여명이 다녀갔으나 2021년 기록인 650억원을 다소 웃도는 데 그쳤다.

메이저급만 북새통이었던 것도 아니다. 젊은 세대를 겨냥한 신생아트페어가 우후죽순으로 생기며 ‘아트페어 전성시대’를 만들었는데. 지난해 전국에서 열린 크고 작은 아트페어는 100개에 육박(2021년 70여개, 2019년 40여개)한다. 다녀간 방문객은 87만 5000여명. 2021년 77만 4000명에 비해 13.1% 늘어났다.

호황인가 거품인가…“헷갈리는 미술시장”

‘뜻밖의 지점’은 경매시장에서 생겼다. 지난해 6월을 기점으로 “완연한 하락세로 돌아섰다”는 지표가 하나씩 나오더니 결국 2335억원으로 마감을 한 거다. 2021년 쓴 대기록 3384억원에 비해 30.9%가 떨어진 셈이다. 이 현상을 두고 미술계 전문가들은 “올해 하반기 글로벌 경기침체의 직격탄을 맞은 셈”이란 분석을 내놨다. 중대형 컬렉터가 주도하던 경매시장이 가장 먼저 휘청일 수밖에 없단 얘기다.

지난해 3분기 ‘낙찰가 상위 10위권 작품’에서 1위와 2위를 기록한 쿠사마 야요이의 붉은 ‘호박’(2004·왼쪽)과 초록 ‘호박’(2004). 각각 22억원과 19억 5000만원에 낙찰됐다. 지난해 한국 미술시장이 1조원을 돌파한 것으로 추산됐으나 경매시장은 2021년 기록한 3384억원에 비해 30.9%가 떨어진 2335억원으로 뒷걸음질 쳤다(사진=서울옥션).

“미술시장이 헷갈린다”는 얘기는 바로 경매시장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그간 경매는 미술시장을 가늠하는 바로미터로 여겨왔던 터. 작품가가 고스란히 드러나고 판매결과가 즉각 공개되니까. 여기에 수치로는 잘 잡히지 않는 분위기도 한몫했다. 2021년 미술시장을 견인하다시피 한 MZ세대가 지난해 “우수수 빠져나갔다”는 진단이다. “MZ 컬렉터 대부분이 의존한 가상자산시장이 폭락장세를 이어갔고, 이 여파가 미술시장에 타격을 줬다”는 거다.

한국 미술시장이 기어이 거래총액 1조원을 돌파했지만, 시장별로 체감하는 온도차는 적잖다. 한쪽에선 ‘여전한 호황’, 다른 한쪽에선 ‘본격적 하향세’란 얘기가 동시에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다. 미술계 한 관계자는 “거품이 빠지는 조정기 국면에서 나온 ‘1조원’이라면 의미가 더 크지 않겠느냐”며 “1조원이란 프레임이 미술시장에 안정성·건전성 강화란 과제를 다시 던졌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오현주 (euanoh@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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