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윤 대통령은 ‘약자복지’ 말할 자격 없다
복지시민단체 성원으로서 내가 다짐한 새해의 핵심 과제는 ‘약자복지’이다. 굳이 대통령이 주창하는 의제를 다시 꺼내는 건, 정부의 약자복지가 말로만 그치기 때문이다. 보수 정부가 두툼한 복지, 맞춤형 복지 등 최소한 그들이 강조하는 복지는 챙길 줄 알았는데 그 기대가 정부 첫해부터 깨졌기 때문이다.
사실 정부가 제시한 국정과제에서 “필요한 국민께 더 두껍게 지원하겠습니다”는 나름 의미 있는 선언이다. 지난 10년 보편복지 담론이 부상하면서 복지가 확대되었지만 약자를 위한 복지는 여전히 빈약하다. 이 기간에 전체 복지예산은 평균 8.6% 늘었지만 취약계층 복지의 준거인 기준중위소득 인상은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또한 고용보험, 국민연금 등 사회보험에서는 불안정 취업자 상당수가 사각지대에 있고, 지난 몇년 부동산 폭등으로 세입자의 허리는 더 휘었으며, 노인세대는 10명 중 4명이 궁핍하게 살고 있다. 총량에서 복지가 늘었다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가난한 사람의 복지는 지체되는 ‘복지의 불균등 발전’이다. 이제라도 약자복지를 두껍게 하겠다는 윤 정부의 선언을 주목했던 이유이다.
하지만 정작 정부의 약자복지는 실망을 넘어 분노마저 자아낸다. 어떻게 이러한 복지정책으로 약자복지를 말할 수 있는가. 첫째, 정부는 약자복지의 상징 정책으로 역대 최고의 기준 중위소득 인상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높은 물가에서 실질 구매력도 유지하지 못하는 인상이다. 우리나라에서 기준 중위소득은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비롯하여 다양한 선별복지 급여의 기준선이다. 현재 복지부, 교육부 등 13개 부처, 76개 사업이 기준중위소득에 영향을 받으니 약자복지를 가름하는 척도이다. 정부는 올해 기준중위소득이 2016년 도입 이래 최고 인상률이라고 홍보하지만, 이는 기존에 기준중위소득을 과소산정해왔던 제도 결함을 메우기 위해 2021년에 마련한 조정산식에 따라 정부 출범 이전에 이미 설정된 인상률이다. 만약 정부가 진정 약자복지 의지를 지녔다면, 이 인상률에 머물지 말고 근래 고물가를 반영하여 추가 인상을 추진해야 했으나 그대로 갔다. 그 결과 기준중위소득 인상률이 예전보다 높다지만 고물가 상황에서 올해 가난한 사람의 복지급여 실질액은 오히려 낮아질 수 있다. 이런데도 기준중위소득 인상률을 약자복지의 대표 상품으로 내세우니 부끄러움조차 모르는 듯하다.
둘째, 약자복지 정부라면서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대폭 축소했다. 정부가 올해 예산안에서 작년보다 5조7000억원을 삭감한 예산안을 편성했고 국회에서 겨우 7000억원이 되살아났으니 결국 5조원이 줄어들었다. 어려운 처지에 몰린 세입자들에게 이 5조원은 삶의 보금자리가 사라짐을 의미한다. 대통령은 지난달 국정과제점검회의에서 “공공임대주택을 많이 지어서 공급하다 보면 중앙 정부나 지방 정부가 상당한 재정부담을 안게 되기 때문에 납세자에게 굉장히 큰 부담”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가 그렇게 많은 공공임대주택을 짓고 있는가? 당장 민간 전·월세가 힘겨운 사람들이 공공임대주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음을 모르는가? 정말 이러한 인식 수준이라면 대통령은 약자복지를 말할 자격이 없다.
셋째, 정부는 노인들이 간절히 원하는 정책인 공공형 노인일자리 사업을 대폭 축소하려 했다. 한국 사회에서 노인은 대표적 약자세대이다. 2020년 18~65세 연령대의 빈곤율이 10.6%인 데 반해 66세 이상은 40.4%로 4배나 높다. 노인들에게 노인일자리는 월 27만원 소득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이웃을 만나고 자신의 역할을 갖는 자리이다. 작년 전체 노인일자리 수요충족률이 41.8%에 그칠 만큼 노인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런데도 정부는 무려 노인일자리 6만개를 줄이는 내년 예산안을 편성했다. 고령 노인의 생활과 노인일자리 효과에 대한 몰이해가 낳은 삭감이다. 놀랍게도, 이에 대한 비판이 일자 정부는 선뜻 원상회복을 약속했다. 그 짧은 기간에 무슨 변화가 있었던 걸까, 올해 고용 전망이 어두워지자 고용률 계산에 포함되는 노인일자리 수치가 필요해진 건 아닐까. 이러면 언제든 노인일자리는 다시 축소될 수 있다. 윤석열 정부에게 노인은 이처럼 가벼운 정책 대상이다.
정부의 약자복지에 화가 나는 만큼 새해 각오도 강해진다. 오늘의 약자복지 현실은 한편에선 선악 이분법의 보편·선별 논의가 낳은 그늘이기도 하기에 모두가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힘은 작아도 시민사회 몫을 다할 작정이다. 또한 약자복지가 소중한 만큼 이 단어가 훼손되지 않기를 바란다. 새해에 완전히 새로워지지 않을 거면, 대통령은 더 이상 약자복지를 말하지 마시라.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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