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공화 강경파 반란표… 100년만에 하원의장 재선거

워싱턴/김진명 특파원 2023. 1. 5.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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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본회의 3차례 투표에도 못 뽑아
3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 DC 연방의회 의사당에서 유력한 하원의장 후보인 케빈 매카시(왼쪽)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가 손으로 입을 가린 채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118대 의회 개회일인 이날 진행된 하원의장 선거에서 다수당인 공화당 내 초강경 우파 모임을 중심으로 반대표가 나오면서 3차례 이어진 투표에도 의장을 선출하지 못했다. /로이터 뉴스1

미국 하원이 3일(현지 시각) 제118대 의회 첫 본회의에서 세 차례 투표에도 하원의장을 선출하지 못하는 초유의 상황이 발생했다. 미 하원이 1차 투표에서 의장을 선출하지 못한 것은 1923년 이후 100년 만이다. 하원 다수당인 공화당 강경파 일부가 반대표를 던져 의장 후보인 케빈 매카시(58) 원내대표가 곤혹스러운 처지에 몰린 가운데, 2024년 차기 대선을 앞둔 의회 내 권력 투쟁의 신호탄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미 하원은 4일 정오(한국 시각 5일 오전 2시)쯤 의장 선거를 다시 치르기로 했다. 하지만 의장을 선출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하원의장이 없으면 다른 일정을 공식적으로 개시할 수 없어 지난해 11월 중간선거를 통해 당선된 초선 의원들의 취임 선서도 미뤄졌다. 뉴욕타임스는 “하원이 첫날부터 마비됐다”고 전했다.

대통령·부통령에 이어 미 권력 서열 3위인 하원의장이 되려면 하원의원 총 435명 중 과반(218명)의 지지가 필요하다. 그래서 다수당 원내대표가 의장에 선출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통례대로라면 2018년부터 공화당 하원을 이끌어 온 매카시 원내대표가 의장으로 선출돼야 한다. 하지만 공화당 내 초강경 우파 모임인 ‘프리덤 코커스’를 중심으로 소속 의원 19명이 반기를 들면서 하원의장 선거가 혼전으로 빠져들었다. 공화당은 지난해 중간선거에서 222석을 차지해 다수당이 됐지만, 반란표가 5표만 나와도 과반을 만들지 못한다.

미국 하원의장 선거 1일차 결과

이날 정오쯤 시작된 1차 투표의 최다 득표자는 소수당인 민주당의 하킴 제프리스 원내대표였다. 민주당 하원의원들은 변호사 출신의 제프리스를 ‘미 의회 역사상 최초의 흑인 원내대표’로 공식 선출했고, 의장 선거에서도 212명 전원이 이탈 표 없이 단결했다. 하지만 다수당 공화당의 매카시 원내대표는 203표를 얻는 데 그쳤다. 나머지 19표는 다른 공화당 후보 5명에게 분산됐다. 지난해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 선거 때도 매카시에게 도전했던 앤디 빅스(65) 의원이 10표를 가져갔고, 프리덤 코커스에 속한 짐 조던(59) 의원이 6표를 받았다.

곧이어 2차 투표가 진행됐지만 제프리스와 매카시의 득표 수는 변하지 않았다. 다만 1차 투표 때 반기를 들었던 공화당 의원 19명이 프리덤 코커스 소속 조던 의원에게 몰표를 줬다. 3차 투표에선 매카시의 득표 수가 203표에서 202표로 1표 줄었다. 프리덤 코커스 소속이지만 1·2차 투표에서 매카시를 지지했던 바이론 도널드 의원이 “분명한 것은 매카시가 (의장에 선출될 만큼) 표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라며 조던에게 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케빈 매카시가 공화당 내 공개 반란(open revolt)에 직면했다”며 “첫날부터 매카시가 의장이 되기 위해 필요한 218표를 모으지 못한 것은 다수당으로서 통치하려던 공화당 목표를 약화시켰다”고 보도했다. 매카시를 반대하는 의원들이 구체적인 이유나 통일된 요구 사항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던과 빅스 등 프리덤 코커스 의원들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열렬한 충성파이기 때문에 ‘친(親)트럼프 세력의 난’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달 중순 “케빈(매카시)은 매우 열심히 일해왔고, 기회를 줄 만하다”며 지지 의사를 밝혔다. 이 때문에 공화당의 뿌리 깊은 당내 갈등에 원인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이날 “매카시가 스트라이크 세 개를 받았지만, 아직 아웃은 아니다”라며 공화당 내 다수파에서도 반대표를 던진 19명을 “탈레반 19″라고 부르며 비판하는 여론이 있다고 전했다.

프리덤 코커스는 공화당 내 강경 보수 세력 ‘티파티’ 출신을 주축으로 2015년 만들어졌다. 오바마 행정부의 이민 정책을 막기 위해 연방정부 업무정지(셧다운) 위기까지 불사할 만큼 강경히 투쟁했고 이민·낙태·성소수자 문제 등에서 극단적 입장을 고수해 왔다. 예산·법안 처리를 놓고 민주당과 어느 정도 타협을 해야 하는 당 지도부는 프리덤 코커스의 주된 공격 대상 중 하나였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 하원 공화당을 이끈 존 베이너 전 하원의장은 2015년 프리덤 코커스의 압박을 받아 의장직을 사임했다. 당시에도 하원 공화당 원내대표를 맡았던 매카시가 유력한 하원의장 후보였지만, 프리덤 코커스의 반대 분위기에 의장선거 출마를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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