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체급보다 낮은 단계서 활동… 인도·태평양서 더 역할해야”

워싱턴/이민석 특파원 2023. 1. 5.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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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학 인터뷰] [2] 할 브랜즈 美존스홉킨스대 석좌교수
/미 그랜드밸리주립대 강연 캡처

“한국은 국제 정치 무대에선 자신의 ‘체급(weight)’보다 낮은 단계에서 활동한다는 인식이 있다.”

할 브랜즈 미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학 석좌교수는 본지 신년 인터뷰에서 “한국의 놀라운 경제적 성과와 그 활기를 고려할 때 특히 그렇다”며 “한국의 주요 안보 관심사가 항상 북한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세계 11위 경제 규모의 한국이 북핵 문제에만 몰입, 다른 중요한 국제 이슈에 제 목소리를 못 내고 있다는 진단이다. 한국이 인도·태평양 지역 안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첨단 기술·군사 협력 등 분야에서 다른 선진국들과 보조를 맞추고 더 적극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최근 들어 미국의 가장 큰 안보 도전은 인도·태평양 지역으로부터 나오고 있다”며 “이는 한국 등 동맹국들에 대한 미국의 기대가 이전보다 더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이어 “(중국 위협에 대처하는 건)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역할이 커지는 것은 국제 질서를 지키기 위해 더 큰 책임을 부담한다는 의미에서 굉장히 중요하다”고 했다. 인터뷰는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3일까지 전화와 서면으로 진행됐다.

-한국은 경제 규모에 비해 국제 무대에서 영향력이 비교적 낮다는 이야기를 워싱턴 DC 정가에서 듣고 있다.

“ 중국의 대만 침공이 현실화된다고 보자. 이는 미·중이나 대만 해협에만 해당하는 일이 아니다. 동아시아 지역 전체를 포괄하는 역사적인 군사적 충돌이 될 것이다.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 관심은 향후 인도·태평양 지역에 점점 더 집중될 것이다. 이곳에서 일본이나 호주가 (한국보다는) 미국과 적극적인 관계를 맺고 있지만, 미 정부는 한국에도 같은 기대를 갖고 있다.”

-한국은 중국과의 경제 교역 비중이 높기 때문에 미·중 간 적절히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중국과 경제적 관계를 끊으라는 것이 아니다. 중국과 어떤 종류의 기술적, 경제적 관계를 맺고 있는지 좀 더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끔 모두가 잊고 있는 것이 있는데, 한국 등 동맹국들은 미국이 제공하는 안보 공약 및 지원의 토대 위에서 중국과 경제적으로 교류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미국의 안보 지원이 사라진다면 중국은 한국과 독단적인 관계를 시작할 것이다. 한국은 미국이 기존 안보 환경을 유지할 수 있도록 미국의 요청 사항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미국의 정치적 극단주의가 한국 등 동맹국에 대한 외교 정책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나.

“인도·태평양에서 미국의 방위 공약에 대해선 걱정하지 않는다. 워싱턴 정가엔 미국이 주요한 적인 중국에 맞서 당분간 태평양에 집중해야 한다는 초당적 합의가 있다. 지금 미국의 모든 정치적 파벌들을 하나로 묶는 것은 ‘반중 연대’다.”

-어떻게 한국이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나.

“중국이 대만을 침공한다면 미국의 동맹국과 파트너들의 역할은 절대적으로 중요할 것이다. 아시아 지역 내 미국의 항공·정보 자산 같은 것들은 한국에 주로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한국의 역할은 초기부터 상당히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중국에 대한 전투 작전을 위해 한국 영토에 있는 시설의 사용 허가를 놓고 한·미 정부 간 꽤 치열한 논의가 있을 것이라고 본다. 유사시 미국은 이 지역 동맹국들에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도와달라고 특별한 압력을 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미국이 대만을 지키기 위한 전쟁에서 진다면, 특히 인근 동맹국들이 도와주지 않아 미국이 진 것처럼 보인다면 동맹국으로선 매우 불편한 입장이 될 것이다. 동맹국에 대한 미국의 적대감은 트럼프 때보다 더할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북한 문제는 후순위인 것 같다.

“북한 문제는 두 가지 이유로 바이든 행정부에서 뒷전(back burner)으로 밀려났다. 중·러 문제 등으로 여력도 없지만, 미국 정부가 북한 문제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은 지난 30년간 이어져 왔다. 바이든 행정부도 지난 행정부가 말해온 것처럼 북한의 비핵화를 추구한다고 말해왔지만, 행정부 내에서 그것이 실현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북한이 7차 핵실험을 감행해도 상황은 그대로일까.

“(북한이 핵실험을 하면)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이룰 방법이 있는지 토론을 다시 이어나갈 것이다. 문제는 북한이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포기하도록 할 방법이 현재까지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북한 핵실험이 미국의 입장을 바꿀지 모르겠다.”

-북한이 러시아에 탄약을 보내고, 이란이 드론을 보내는 등 이들이 거대한 ‘반(反)서방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미국으로선 큰 악재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더 버틸 수 있는 힘을 이들 국가로부터 받을 것이다. 동시에 러시아는 향후 이란 등에 정교한 군사 능력을 제공해 미국·이스라엘 등이 이란 핵 프로그램에 대해 압박하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중·러가 급속 밀착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중국이 러시아를 직접 지원할 가능성도 있나.

“중국의 가장 큰 관심은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러시아가 패배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중국으로선 다음 러시아 정권이 푸틴이 해왔던 만큼 중국과의 ‘전략적 파트너십’에 전념할 것인지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러시아로서는 중국에 ‘우리를 돕지 않으면 더 나쁜 상황에 빠질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중국은 러시아를 지원하기 위해 (서방 제재라는) 더 큰 비용을 감수하거나, 주사위만 굴리면서 푸틴이 살아남길 바라는 것 중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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