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비보잉’의 정치학

이진우 2023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자 2023. 1. 5.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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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한상엽

최근 댄스 경연 프로그램이 많아지면서 이른바 ‘스트리트 댄스’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나는 꽤 오래전부터 스트리트 댄스, 그중에서도 비보잉(bboying)이란 춤의 열렬한 팬이다. 나를 비롯해 많은 비보잉 팬은 11월을 기다린다.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비보이 열여섯 명을 초청해 개최하는 세계 최대 규모 일대일 배틀 대회, Red Bull BC ONE(이하 비씨원)이 개최되기 때문이다.

대회마다 수많은 명승부와 인상적 춤사위가 넘쳐나는 비씨원이지만 그중에서도 2017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개최한 비씨원은 아주 특별한 순간으로 기억된다. 비씨원 역사상 최초로 일본의 비걸(bgirl) 아유미(Ayumi)가 초청받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16강전에서 한국의 비보이 킬(Kill)과 맞붙었고 결과는 킬의 승리였다. 많은 사람이 비씨원 역사상 최초로 벌어진 이 성(性) 대결에서 결국 비걸이 패했다는 점을 주목했다. 그런데 관점을 조금 바꿔보면 좀 더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바로 파워 무버인 킬이 스타일 무버인 아유미를 이겼다는 것. 우리가 비보잉 하면 흔히 떠올리는 현란한 기술과 신체 능력을 과시하는 춤을 ‘파워 무브’라 부르고, 기본기를 중심으로 음악적 표현에 집중하는 춤을 ‘스타일 무브’라 부른다. 문제는 전통적으로 음악적 표현, 즉 스타일 무브를 중시하는 종주국 미국을 중심으로 파워 무브는 춤이 아니라 서커스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퍼져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파워 무버들은 일대일 배틀 판정 때 불이익을 받는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곤 했다. 기본기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보수적인 미국 비보잉 문화에 대해, 근본주의적이라며 비판하는 목소리도 들려왔다. 주류 비보잉이라는 측면에서, 아유미와 킬의 대결은 두 소수자의 대결이라는 측면이 있었던 것이다.

고작 비보잉에서 정치학을 말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하지만 이 대결 안에는 정치학이 하나 더 숨어 있다. 바로 한일전이라는 것. 한일전이 왜 정치학적이냐는 의문이 든다면, 그 의문마저 정치학적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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