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착각 지향의 한국인
여행은 본심의 영역이다. 사람들은 여행에서 본심을 드러낸다. 일상은 행복의 조건을 만들어내는 일이라 꾸역꾸역 참아내지만 여행은 보는 것, 먹는 것, 하는 것 모두 행복의 쟁취이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익숙한 사람들도 여행에서 달라지곤 한다. 한국인의 여행법에는 한국인의 본심이 담긴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여행지는 ‘한국 사람은 안 온다’는 여행지다. 한국인들이 좋아할 만한 곳이지만 한국인은 모르는 곳, 그런 곳이다. 내가 한국인이지만 여행지에서 한국인을 마주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행지를 유혹할 때 상투적으로 쓰는 표현이 ‘한국인들은 아직 모르는 곳’이다. 한국인들은 회를 평가할 때와 소고기를 평가할 때 관점이 다르다. 이웃 일본인은 소고기를 평가할 때 마블링 위주로, 회를 평가할 때도 감칠맛 위주로, 일관성이 있다. 하지만 한국인은 소고기를 평가할 때는 일본인과 마찬가지로 마블링 위주로 보지만 회를 평가할 때는 식감을 중시한다. 그래서 일본인은 붉은살 생선과 선어를 좋아하지만 한국인은 흰살 생선과 활어를 좋아한다.
술을 마실 때도 한국인은 일관성이 없다. 한국인들은 일본인들은 거의 사지 못하는 고급 사케를 산다. 이런 사케는 도정률(쌀을 깎아낸 정도)이 높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보디감은 미끈하고 맛은 달큰해진다. 한국의 아재들이 가장 선호하지 않는 방향으로 변하는데, 더 비싼 비용을 지불한다.
한국인들은 본질을 싫어한다. 본질을 벗어났을 때 칭찬한다. ‘젓갈이 맛있다’는 표현을, “이 젓갈은 짜지 않아서 좋다”라고 한다. 찹쌀떡 등 단 음식이 맛있을 때도 “이 찹쌀떡은 달지 않아서 좋다”고 한다. 입으로는 원재료의 맛을 잘 살린 것을 좋아한다면서 사실은 본질에서 벗어난 것을 좋아한다. 회는 초장맛으로, 고기는 소스맛으로 먹는 것처럼.
한국의 여행업에는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하는 것들이 많다. 펜션과 콘도가 그렇다. 콘도 회원권이 몇억원이나 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대가족이 핵가족이 되고 다시 1인 가족 시대가 되면서 펜션과 콘도는 선호 숙소에서 멀어졌다. 여행에서 음식을 해먹는 것보다 맛집 탐방을 선호하면서 펜션과 콘도의 키친 시설은 계륵이 되었다. 오래된 숙소에는 전통이 아니라 오래전 트렌드가 있을 뿐이다.
한국인들은 외국 여행을 할 때 현지 음식에 관심을 보이지만 먹고 난 뒤에는 한식당을 찾는다. 그런데 외국에서 한식당에 갔을 때보다 그 도시의 베트남 쌀국수집과 터키 케밥집을 이용할 때의 만족도가 더 크다. 입맛의 지평을 넓히는 일보다 ‘먹어본 맛’을 찾는 것을 더 좋아한다.
한국인들은 육지 사람보다 곱절 이상 바쁘게 사는 섬사람들을 멀찌감치 보면서 말한다. “이 섬에 오니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이 든다”고. 하지만 섬의 ‘불편한 사치’를 감당할 준비는 되어 있지 않다. 여행을 와서도 집에 있는 것과 같은 편안함을 원한다. 어쩌면 집 이상으로.
한국인들은 관광보다 여행이 더 가치 있는 일이라 말한다. 그런데 여행 계획을 세워보라고 하면 관광 일정표를 짠다.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하지만 그것이 배의 존재 이유는 아니다. 한국인의 만족은 착각 속에 있는 것일까? 여행감독으로서 풀어야 할 큰 숙제다.
고재열 여행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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