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플라자] 예산 삭감으로 학생 난방비가 부족하다고?
지난 12월 서울시 일대에는 ‘서울시 교육청 예산 5688억원 삭감, 학생 냉·난방비조차 부족’이라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렸다. 서울시 교육청이 요구한 예산 중 일부를 시의회에서 삭감하자 민주당에서 문제를 제기한 것이었다. 교육청은 정상적 학교 운영에 지장이 생긴다고 우려를 표했고, 일부 언론은 이를 그대로 받아 2023년도 학교 냉·난방에 차질이 걱정된다는 기사를 내기도 했다.
조금만 따져보면 알 수 있는 일이지만, 냉·난방비가 부족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2023년도 서울시 교육청 전체 예산은 2022년도보다 2조3000억원 늘었다. 2022년도 대비 예산을 삭감한 것이 아니라, 서울시 교육청이 증액해달라고 요구한 2023년도 예산 요구 중 일부를 시의회가 인정하지 않은 것일 뿐이다. 냉·난방비가 부족할 것이라는 근거로 제시한 학교 기본 운영비 역시 교육청의 증액 요구가 반영되지 않았을 뿐, 작년 수준의 예산은 편성되어 있다. 애당초 기본운영비 예산은 개별 학교가 자율적으로 쓸 수 있는 예산이기에, 설령 기본 운영비 예산이 삭감되었다 하더라도 냉·난방비가 부족해진다는 것은 아전인수 해석에 불과하다. 예산을 삭감한 시의회는 불필요한 공사 및 비품 교체 예산을 줄였다고 할 것이다. 그렇기에 학교 냉·난방비가 부족하다며 시의회의 교육청 예산 심의를 문제 삼는 것은 거짓된 정보로 국민을 선동하는 것에 가깝다.
그러나 서울시 교육청 예산 삭감 논쟁에서 더 안타까운 부분은 이러한 논쟁이 불거지더라도, 합리적인 예산이 얼마인지 판단할 정확한 자료가 국민에게 제공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냉·난방비 예산이 실제 부족한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전년도 관련 예산 중 남는 돈, 즉 불용액이 있었는지 등은 알 수 있어야 한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부족하다. 서울시 일선 학교에서 보유하고 있는 냉·난방 시설의 현황, 적정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전기·가스 소비량, 현재 학생들의 냉·난방 만족도, 공공요금 상승에 따른 비용 증가액 등에 대한 대략적인 추계치를 알아야 냉·난방비를 산정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사업에 대한 예산 편성액이 ‘과하다’ 혹은 ‘부족하다’에 대해서 논란이 발생하더라도 이런 판단의 기초 자료는 국민에게 제공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언론조차도 합리적 예산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알지 못하는 상태로, 당파적 입장을 취해 그저 반복적으로 말할 뿐이다. 건설적이고 발전적인 토론은 없어진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보다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한 싸움 자체에 열중할 뿐이게 된다.
우리나라의 예산 편성은 생각 이상으로 주먹구구식이다. 앞서 언급한 기본 운영 경비만 하더라도 총액이 결정되면, 큰 틀에서 총액을 학교 수로 나눠 가지는 식으로 기본 운영 경비를 배분받는다. 비품이 충분한 학교가 있다고 해도 그런 부분은 고려되지 않는다. 여기에 돈을 남기는 게 잘못으로 여겨지는 예산 집행 방식이 관행화되어 있기에 재정 낭비가 초래된다. 예산은 합리적 근거 없이 편성되고, 일단 편성된 예산은 안 쓰면 아까우니 어떻게든 다 지출을 하고, 그렇게 돈을 다 쓴 후에는 지출한 액수를 기준으로 다시 예산을 편성해달라고 하니 돈이 낭비되지 않을 수 없다. 공무원 재직 당시, 일선 교사로부터 비품 예산이 너무 많아서 멀쩡한 책걸상이나 빔프로젝터를 다시 사고 기존 가구는 중고로 팔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세금의 사용처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은 세금을 내는 국민이 가져야 할 당연한 권리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권리를 형식적으로만 누려왔다. 총액 예산의 증감은 알 수 있어도 세부 예산 편성의 기준과 근거는 알 수가 없다. 내가 아는 한 기자는 “정치인들을 통하지 않으면 상세 예산 데이터를 확인할 길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언론도 정보를 알 수 없다는 것은 예산 편성이 투명하지 않고, 잘못 집행되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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