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칼럼] 신정과 설날 사이의 단상

류승훈 부산시립박물관 전시운영팀장 2023. 1. 5.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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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한 역사 가진 설날…일제에 의해 구정 격하
국민 힘으로 전통 지켜 세배 등 풍속 이어가야
류승훈 부산시립박물관 전시운영팀장

며칠 전 2023년 신정을 보냈다. 신정이 되자 계묘년 토끼띠 이야기와 새해 운세로 시끌벅적했다. 띠의 근간이 되는 12지지(地支)는 음력이나 입춘을 기준으로 하므로 신정부터 토끼띠 이야기를 하는 건 맞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엄연히 2023년 새해가 밝았는데 설날까지 기다려 토끼띠 이야기를 하자니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란 생각도 든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신정부터 설날까지 새해인지 지난해인지 구분이 안 되는 어정쩡한 시간을 보낸다. 달력은 양력을 따르면서도 명절은 음력을 고수하는, 현대적 생활과 문화적 전통의 혼재를 실감하는 시간이다.

그러나 이중과세(二重過歲)를 떠올려보면 이 정도의 혼재는 약과다. 나는 20대까지도 신정(新正)과 구정(舊正)에 설을 두 번 쇠는 이중과세의 시절을 지냈다. 정부는 이중과세를 낭비 풍속의 하나로 지목하고 국민 의식을 바꾸려고 노력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우리집에서도 정부의 이중과세 방지 정책을 따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설을 똑같이 두 번이나 쇨 수는 없는 법이다. 두 번의 설을 합리적으로 보내기 위해서 큰 집과 작은 집으로 나눠서 지냈다. 요컨대 작은집이었던 우리집에서는 신정을 쇠고, 큰 집에서는 구정을 쇠었다.

수천 년 이어져 왔던 민족 설날 구정의 풍속은 약화되지 않았다. 큰 집에서는 고조부와 증조부의 차례를 지내서인지 우리집에서 쇠는 신정보다 훨씬 많은 친지가 모였다. 당시 구정은 공휴일이 아니었음에도 큰 집에는 발 디딜 틈 없이 손님들이 모였고, 명절 분위기도 더 왁자지껄했다.

우리 민족에게 신정이란 새로운 설이 생겼을 때는 1896년이었다. 서양의 역법인 태양력을 받아들이면서 양력 1월 1일이 또 하나의 설이 된 것이다. 새로운 설이 탄생했지만 대한제국은 백성들에게 신정을 강요하거나 구정을 억압하지는 않았다. 예전대로 설이라면 당연히 음력 1월 1일이었고, 차례를 지내고 떡국을 먹는 풍속도 설날에 볼 수 있었다. 아무리 국가라 해도 오랫동안 이어져 온 설을 순식간에 바꿀 수 없었다. 수천 년 동안 우리 문화에 깊이 뿌리를 내린 나무가 어떻게 한순간의 바람에 쉽게 흔들릴 수 있겠는가.

고대 사회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달을 통해서 시간의 변화를 파악했다. 달은 그 자체로 시간이고 세월이었다. 늦은 밤을 밝고 환하게 비춰주는 달은 하루가 갈 때마다 차고 일그러졌으며, 그 모습은 시간을 알려주는 시금석이 되었다. 이렇게 정리된 역법이 태음력이다. 새로운 해가 시작되는 정월 초하룻날 설은 세시풍속의 기점이었기에 백성들은 각별하게 받아들였다. 이날에는 깨끗한 마음으로 조상신을 모시고, 어른들에게 첫인사를 올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설의 전통은 우리 문화의 신성한 토대이자 웅대한 거목이 되었다.

일제강점기가 되자 일본은 우리나라 전통에 대해서 적지 않은 핍박을 가했다. 우리 민족의 설에 구정이란 딱지를 붙이고, 일본처럼 신정을 쇨 것을 강요했다. 하지만 일제의 무모한 압력 속에서도 백성들은 계속해서 구정을 설로 보냈다. 국가가 힘으로 밀어붙이는 신정과 그럼에도 식민지 백성들이 옛 전통을 지키고자 하는 문화의 충돌 속에서 이중과세가 생겨났다. 일제는 ‘이중과세는 낭비’라고 비판하면서 전통 설 문화를 폐기시키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해방 이후 우리 정부도 일제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여전히 신정과 구정 사이에서 이중과세라는 비판의 화살을 국민에게 쏘아댔다. 1980년대 초반까지도 정부는 신정을 쇨 것을 요구하고, 국민은 전통에 따라 구정을 쇠는 설의 이중 현상이 지루하게 지속되었다.

정부가 강력한 음력설 전통에 백기를 들었을 때는 태양력을 제정한 지 90여 년이 지난 1985년이었다. 정부는 음력설을 공휴일인 ‘민속의 날’로 지정하고, 이중과세 방지정책을 전격 수정하게 되었다. 그런데 설을 ‘민속의 날’로 지정했지만 국민의 마음을 끌지 못했다. 따지고 보면 설 뿐만 아니라 추석 대보름 단오 등 모든 전통적 세시풍속일이 민속의 날이 아니겠는가. 결국 3년 만에 민속의 날은 폐지되었으며, 1989년에는 구정이 당당히 설날로서 옛 지위가 복권되었다. 이때부터 신정을 쇠던 우리집도 설날에 차례를 지내게 되었다. 이중과세라는 말도 언제 그랬냐 싶게 없어졌음은 물론이다.


2023년의 설에도 나는 민족 대이동의 흐름에 합류할 예정이다. KTX 열차가 운행되기 전까지 나는 자가용을 몰고 주차장이 된 고속도로를 거북이처럼 다녔다. 극심한 교통 혼잡 속에서 우리는 왜 이 힘든 민족 대이동에 늘 뛰어드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혹여 우리도 세찬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회귀 본능의 연어와 같은 것일까. 이미 이중과세의 기억도 희미해졌건만 해마다 신정과 설날 사이 불쑥 찾아오는 이 단상을 지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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