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지엘라… 이발사 아들의 모발 사랑
버스는 가고 없다.
버스정류소만 덩그러니 흔적기관처럼 남아 있다. 오지 않을 소식을 기다린다. 그 민망한 표정을 작가는 온통 인조 터럭으로 덮어버렸다. 왔다 가는 것, 있다가도 없는 것, 떠나가는 것에 목매지 말라고. 가발(假髮)처럼 따스한 위로의 온기가 모든 자연이 머리칼을 떨군 탈모(脫毛)의 계절을 버티게 한다. 세계적 패션 디자이너 출신의 설치미술가 마틴 마르지엘라(66)가 털북숭이 ‘버스 정류소’<사진>를 제작한 이유일 것이다.
마르지엘라의 첫 국내 개인전이 서울 잠실 롯데뮤지엄에서 3월 26일까지 열린다. 신체를 소재로 시각화한 50여 점의 출품작 중 유독 인간의 털과 관련된 작품이 많다. 이발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도 추정된다. 인공 피부로 감싼 실리콘 두상 5개에 자연 모발을 하나씩 이식해 뒤덮은 ‘바니타스’(Vanitas·헛됨) 연작도 그 예다. 유년부터 노년까지의 인간 생애를, 진했다가 흐려지는 머리카락 색깔로 표현한 것이다. 사람의 두피 사진을 확대 인쇄해 가마 방향을 화살표로 표시한 작품 ‘지도 제작법’(Cartography)에서도 제각기 삶의 유전을 두피에서 발견하려는 작가의 집착을 발견할 수 있다.
전시는 얼굴 전체를 뒤덮는 가발을 쓴 한 여자가 미친 듯이 웃어젖히는 영상(‘라이트 테스트’)으로 마무리된다. 의복이라는 모직(毛織)의 해체주의를 통해 독보적 명성을 획득했던 마르지엘라는 이제 인간의 몸 자체를 향하고 있다. 2008년 돌연 패션계 은퇴 후, 단 한 번도 자신의 실물을 드러내지 않은 은둔의 작가 마르지엘라. 혹시 모발에 심취할 수밖에 없었던 남모를 사연이 있는 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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