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휘의 시네필] '젠틀맨' 강렬한 장르영화…차세대 감독의 발견

조재휘 영화평론가 2023. 1. 5.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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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원의 ‘젠틀맨’(2022)은 실로 오랜만에 만나는 웰 메이드 장르 영화이다. ‘아티스트 - 다시 태어나다’(2017)로 데뷔한 뒤 두 번째 작품이다. 전형적일 수 있는 이야기를 다른 방식으로 전달하려 했던 브라이언 싱어의 ‘유주얼 서스펙트’(1995)나 가이 리치의 ‘스내치’(2000)를 참고하면서, 김경원 감독은 리들리 스콧의 ‘블랙 레인’(1989), 한재림의 ‘더 킹’(2017)을 방불케 하는 스타일리스트의 미장센, 정교한 몽타주와 프레이밍을 숏 바이 숏으로 채워 넣었다.

영화 ‘젠틀맨’의 한 장면.


근래 한국 상업영화에서 감독의 통제력이 이처럼 영화 전체를 장악하고 거침없이 밀어붙인다는 감을 받은 경우는 극히 드물다. 영화는 흥신소 사장 지현수(주지훈)가 김화진(최성은) 검사에게 취조받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 도입부는 은연중 영화 전체 리듬과 플롯을 함축한다. 책상 위에 펜대를 두들기는 소리와 취조실로 향하는 발걸음, 사운드와 컷 전환이 맞물려 겹치는 ‘운율의 몽타주’는 경쾌하게 달려 나가는 영화의 흐름과 더불어, 펜대를 굴리는 설계자 현수의 큰 그림에 화진이 문자 그대로 ‘걸어 들어오게’ 될 것임을 암시한다.

네온 조명 가득찬 도시 밤거리를 거닐던 현수는 골목에서 돈을 챙기고는 사라지는데, 법조계 고위층의 부패·환락에 관계된 사건 핵심을 파고들어간 그는 우여곡절로 곤란을 겪긴 하지만, 종국엔 돈을 쓸어가고 유유히 사라질 것임이 미리 누설된다.

현수와 화진의 진실게임을 플래시백으로 풀어내는 영화는 이야기 국면이 바뀔 때마다 현재 시점의 취조실로 돌아온다. 영화의 톤이 무거워질수록 공간 이미지는 어둠에 침윤되지만, 창밖에서 들어오는 조명이 인물의 얼굴을 스치는 순간, 연극의 막이 바뀌는 커튼 효과처럼 수렁에 빠진 상황이 역전되는 막판으로 전환된다. 사건의 중심인물인 권도훈(박성웅)이 붙잡은 동료를 폭행하는 영상을 본 화진의 경악하는 얼굴에는 핏빛 같은 붉은 조명이 잠깐 감돈다. 치밀하게 안배된 시각적 은유와 암시는 감각·심리 효과를 높이고 서사의 빈틈을 채우는 영화적 활력으로 승화될 수 있음을 이해하는, 이와 같은 연출의 재간은 여간해선 찾기 힘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나는 ‘젠틀맨’이 장르영화의 존재 의의에 대한 치열한 고민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현수의 증언이 거짓이라는 거짓말 탐지기 소견서 문구처럼, 영화는 스스로 일종의 판타지임을 선언한다. 그러나 (영화의 모티브가 됐을) 별장 성접대 사건 같은 일이 벌어져도 가해자는 유유히 빠져나가는 현실 앞에 우리가 한 번쯤 고통받는 피해자 편에서 싸우고 이기는 권선징악 판타지를 갖는 게 윤리적으로 비난받을 일은 아닐 것이다. 아니, 그것이야말로 장르영화이기에 가질 수 있는 환상의 특권이자 위안이며, 다시금 현실의 절망을 환기하고 사유할 기회를 얻는 일일 것이다.

‘젠틀맨’은 상업영화를 지향하지만 신진 감독 김경원이 보여준 완숙한 기량과 작가의 면모는 훗날 그가 산업 내에서 어느 정도의 재량과 자유를 얻었을 때 과연 어떤 성취를 보여줄지 기대하게 한다. 우리는 지금 한국영화의 미래를 짊어질 차세대 ‘대중적 작가’의 등장을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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