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작불에 구워 먹던 추억의 쥐포[김창일의 갯마을 탐구]〈89〉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2023. 1. 5.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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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이 작아서 피하고 싶고, 뿔이 달려서 골칫거리였던 물고기.

쥐치는 입이 낚싯바늘보다 작아 미끼를 톡톡 쪼듯이 뜯어 먹는 성가신 물고기다.

1970년대 말부터 삼천포에서 대량으로 쥐포를 만들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말쥐치가 인기를 얻었다.

지금은 수입한 쥐포가 시장을 점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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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입이 작아서 피하고 싶고, 뿔이 달려서 골칫거리였던 물고기. 경남 남해 창선도에서 유년 시절을 보낼 때 갯바위 낚시는 재밌는 놀이였다. 어떤 날은 낚싯바늘을 툭툭 치는 느낌이 불길할 때가 있다. 미끼만 쏙쏙 뽑아 먹고 챔질을 해도 좀처럼 낚이지 않는다. 쥐치는 입이 낚싯바늘보다 작아 미끼를 톡톡 쪼듯이 뜯어 먹는 성가신 물고기다. 이럴 땐 자리를 옮기는 게 상책이다.

진해에서 유배 생활을 한 김려도 쥐치의 특성을 잘 알고 있었다. “낚시 미끼를 잘 물지만 입이 작아서 삼키지 못하고 옆에서 갉아먹는 것이 마치 쥐와 같다. 쥐치를 잡기는 매우 어렵다. 그래서 쥐치를 잡으려는 사람들은 낚싯바늘을 녹두알 크기로 7, 8개 정도 만든다. 그리고 짧고 뾰족한 낚싯바늘에 보리밥 한 알씩을 끼우고, 긴 대나무 낚싯대 대신에 손낚시를 한다.” 김려가 저술한 우해이어보(1814년)에 적힌 내용이다. 서유구가 지은 난호어목지(1820년경)에는 “쥐치는 비려서 먹지 않고, 껍질로 화살대를 문질러 갈아내는 데 사용한다”고 했다.

소형 어선에 잡히는 쥐치도 반갑지 않은 물고기였다. 머리에 달린 뾰족한 가시가 그물에 걸려서 잘 빠지지 않고, 다른 물고기에게 상처를 입혀서 상품성을 떨어뜨린다. 요즘은 쥐치가 귀한 몸이 됐지만 1980년대에는 처치 곤란할 정도로 흔했다. 우리 바다에 서식하는 10여 종의 쥐치류 중에서 쥐치, 말쥐치, 객주리가 주를 이룬다. 표준명 객주리와 제주도에서 객주리라고 부르는 물고기는 다른 쥐치다. 제주도에서 객주리는 말쥐치의 방언이고, 실제 객주리라는 쥐치 어종은 따로 있다. 연근해 어업으로 잡은 말쥐치는 연간 20만 t을 웃돌며 어획 순위 2위였던 멸치를 훌쩍 앞섰다. 1970년대 말부터 삼천포에서 대량으로 쥐포를 만들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말쥐치가 인기를 얻었다. 그 많던 말쥐치는 1990년대 들어서면서 홀연히 사라졌다. 지금도 제주 남쪽 바다에서 잡히지만, 과거 어획량에 비할 바는 아니다.

장날 여객선을 타고 삼천포에 다녀온 할머니는 저렴한 가격의 쥐치를 사서 간장에 조려서 반찬으로 내놨다. 간식거리 변변찮던 시절, 쥐치를 손질할 때 포를 떠달라고 졸라서 건조해 부뚜막 불에 구워 먹곤 했는데 특별한 맛이 나지 않아서 고추장에 찍어 먹었다. 나중에는 조미된 쥐치처럼 달콤짭조름한 맛을 내기 위해 소금, 설탕 녹인 물에 담갔다가 건조하는 실험까지 한 소년 시절의 추억. 친구들과 작당해 삼천포로 나갔다가 공터마다 쥐포 건조하는 광경에 놀랐고, 주변을 맴도는 새카만 파리 떼에 또 한 번 놀란 기억. 1970년대 후반부터 쥐포 가공 중심지가 된 삼천포는 1980년대 활황을 누렸다. 쥐포 가공 공장이 100여 개에 달했으니, 도시 전체가 쥐포 건조장을 방불케 했다.

쥐포의 원료인 말쥐치가 순식간에 자취를 감춤에 따라 삼천포는 활기를 잃어갔다. 지금은 수입한 쥐포가 시장을 점유했다. 일부는 베트남 등지에서 들여온 원재료를 가공해 판매하기도 한다. 예전 맛을 찾는 사람들은 소량 생산되는 국내산 쥐포를 선호하지만, 가격은 훨씬 비싸다. 한파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 같은 날에는 부뚜막 앞에 앉아서 장작불에 구워 먹던 두툼한 쥐포가 그리워진다.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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