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사진의 비밀②] '예측불가' 남북정상회담...盧, 38선 향해 '직진'(영상)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전 대통령 전속 사진 담당 에피소드
돌출 변수에 조마조마...북측 파격 행동은 기대감 표현
2023년 계묘년, 제21대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뒤 해가 바뀌었다. 하지만 무엇이 바뀌었을까. 대한민국 지도자에 대한 감시와 비판이 일상화된 사회에 살고 있지만 실제로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감시는 그리 쉽지 않다.
'구중궁궐' 청와대를 떠나 용산 대통령실로 둥지를 튼 윤석열 정부는 특정 언론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 배제와 지난해 말 동남아 순방 당시 심장병 환아를 격려한 김건희 여사의 사진을 놓고 조명 촬영 논란을 빚은데 이어 계묘년 새해 기자회견을 생략했고, 도어스테핑 중단을 지속하는 등 언론과 불편한 관계를 노출하고 있다.
이에 따라 <더팩트>는 신년 기획으로 지난해 5월 윤석열 정부의 출범과 함께 국민들에게 전면 개방된 청와대의 과거 주인이었던 대통령과 지근거리에서 일상을 함께하며 기록으로 남긴 전속 사진 담당의 인터뷰를 통해 '대통령 사진의 비밀'을 조명한다. 과거 70여 년간 12명의 역대 대통령과 영욕의 세월을 함께 했던 청와대. 대한민국의 역사를 만들어 온 청와대에서 대통령들은 무슨 일로 웃고 울었을까. 또 이들 대통령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어떤 것들이 역사의 뒤안길에 남아 있을까.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전 대통령들의 전속 사진담당을 했던 이들로부터 그동안 밝혀지지 않은 이야기를 총 3회에 걸쳐 연재한다.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진담당은 당시 문화공보부 소속 공무원으로 그들의 소재를 파악하기 어려웠고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진담당은 현재 정부산하기관에서 근무중이라 인터뷰를 고사했다. 대통령 전속 사진담당은 홍보수석실 내에서 근무하며 보통 4~7급의 직급으로 대통령 임기 5년을 함께한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이효균 기자] 2023년 남북관계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정세 속에 출발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북한의 집중적인 탄도미사일 도발로 조성된 긴장국면은 북의 무인기 침공 사태로 더해졌고, 새해 벽두까지 이어지는 분위기다.
북한은 지난달 31일 황해북도 중화군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단거리탄도미사일 3발을 발사했다. 1일 새벽에도 평양 용성지역에서 한 발을 더 쏘아 올렸다.
새해 첫날부터 탄도미사일 도발을 벌이는 건 남북관계에서도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특히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전면에 나서며 호전적이고 공세적 행보를 보이는 게 문제로 꼽힌다.
다만 윤석열 대통령이 북한의 도발 국면 속에서도 정상회담에 원칙적으로 열린 입장을 보이는 점은 눈여겨 볼 대목이다. 윤 대통령은 2일 공개된 신년 언론 인터뷰에서 "보여주기식 정상회담은 국민이 식상할 것"이라면서도 "거부할 이유는 없다"고 밝혔다.
또 윤 대통령은 4일 "북한이 다시 우리 영토를 침범하는 도발을 일으키면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를 검토하라고 국가안보실에 지시했다"고 대통령실이 밝혔다.
어쨌든 간에 한반도의 핵 위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지금까지 '온탕냉탕'을 오간 남북관계를 살펴보면 2번의 북미 정상회담과 3번의 남북정상회담이 있었다. 훈풍이 불 때도 있었으나 지금은 냉기류만 가득한 상황이다.
<더팩트> 기획취재팀은 이런 남북관계의 강대강 대치 국면 속에서 과거 화해무드를 조성했던 역대 남북정상회담 실무 관계자들의 입을 통해 해법의 실마리를 모색해본다.
김대중 전 대통령 전속 사진담당 홍성규 씨, 노무현 전 대통령 전속 사진담당 장철영 씨, 문재인 전 대통령 전속 사진담당 김진석 씨가 남북정상회담 당시 대통령들의 기분과 상황, 분위기, 뒷이야기 등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2000년 6월 13일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 '깜짝 상봉'...예측 못한 실무자 '당황'
전직 대통령의 사담은 기밀이 될 수도 있기에 보안 서약서도 쓴다. 하지만 이들은 비밀로 분류되지 않은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말문을 열었다.
먼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진 담당이었던 홍성규 씨는 1948년 한반도가 분단된 이후 처음으로 2000년 6월 13일 평양에서 열린 역사적 남북정상회담을 떠올렸다.
홍 씨는 "(김대중) 대통령께서도 상당히 긴장한 모습이었어요. 남북의 첫 만남이었으니까요. 그 긴장한 표정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네요"라고 말하며 그날의 대통령의 표정과 느낌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또 동행한 정부 관계자들과 취재진도 대통령 못지않게 떨려했던 그날을 회상했다.
김정일 국무위원장의 순안공항 깜짝 마중으로 당황했던 상황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홍 씨는 "김 위원장이 봉화초대소에서 대통령을 맞이할 거다라는 예상을 해서 저희는 미리 초대소로 갔어요. 그런데 순안공항에 갑자기 김 위원장이 나타나서 김대중 대통령을 직접 맞이했죠. 김정일 위원장이 순안공항에 나올 거라고 예상을 못 했어요"라며 당시 식은 땀을 흘렸던 순간을 떠올렸다.
홍 씨는 당시 김 위원장의 공항 영접에 관해서 북측에서는 사전에 통보도 없었고, 당시 모든 사람들이 당황스러워 했다고 일화를 전했다. 이동 일정 상 어느 한 곳을 지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갑자기 김 위원장이 공항에 가는 바람에 역사적 현장을 지키지 못 했다고 회상했다. 그만큼 김 위원장이 당시 남북정상회담에 거는 기대가 컸다는 것을 반영하는 대목이었다고 평가했다.
2000년 6월 13일부터 15일까지 열린 정상회담은 두 당국의 대표가 처음으로 만난 회담으로, 이때 남북한관계사의 이정표로 남을 '6.15 남북공동선언'을 발표했다.
한반도 평화 조성과 햇볕정책의 결실과도 같은 이 회담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애 전반에 걸친 한국 민주화 운동과 함께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는 것에도 영향을 미쳤다.
◆ 걸어서 군사분계선 넘은 노무현 대통령..."이제 됐나?"
'2007년 남북정상회담'은 2007년 10월 2~4일까지 2박3일 간 평양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의 정상회담이다.
노 대통령은 2007년 10월 2일, 1953년 정전협정 이후 대한민국 국가 원수로는 처음으로 걸어서 군사분계선(MDL)을 넘었다. 이후 차량에 탑승, 평양-개성고속도로를 통해 평양에 도착한 노 대통령은 4·25문화회관으로 이동했으며, 이곳에서 김정일 위원장을 만났다.
남북 정상은 10월 3일 회담을 진행한 뒤 다음날인 10월 4일 6·15 남북공동선언에 기초한 '10·4 남북공동선언'을 채택했다
당시 정상회담에 동행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 전속 사진담당 장철영 씨는 "대통령께서 긴장을 많이 하셨고 임기를 얼마 안 남겨놓고 가는 부담이 있었죠. 다음 정부에 누가 되든지 간에 이어가야 되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었을 거예요. 걱정이 많으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라며 그날을 회상했다.
38선을 넘어갈 때 노 전 대통령의 모습과 현장 분위기도 전했다.
걸어서 38선 넘어갈 때 너무 빨리 걸어오시기에 "대통령님 천천히 걸어주십시오. 이거 꼭 찍어야 합니다"라고 하니 노 전 대통령은 "알았어" "(발을)이렇게?" 하면서 "이제 됐나?" 말하며 걸어갔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 순간의 긴장감은 대통령도 본인도 이루 말하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또 노 전 대통령은 38선 넘고 나서 "남는 거 사진밖에 없으니 내 옆에 붙어서 계속 좀 찍어라"하며 기록을 남겨두라고 말했다고 술회했다. 장 씨는 노 전 대통령을 '기록에 대한 역사'에 대해서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분이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판문점에서 평양을 가기 위해 울퉁불퉁한 고속도로를 달렸던 것은 제일 힘들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북한의 경제난을 쉽게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포장이 돼 있지만 오래된 도로라 돌이 튀었던 거예요. 돌이 날아와서 차가 깨지면 어쩌나 걱정되는 거예요. 실제로 너무 세게 날아오니까. 그렇게 달리다 보니 개성을 지나고 평양에 도착해 안심했죠."
평양에서 노 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 국내 경제인들과 자리가 있었는데 북측에서 밧줄로 막으며 부딪혔던 기억도 생생하다.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거리가 2m정도 됐었거든요. 사진을 찍으려 앞으로 가니 이 사람들이 밧줄을 확 들어올려버린 거예요. 카메라가 뒤로 넘어가서 화를 내버렸어요."
"아프다고!!!"
장 씨의 고함에 노 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은 하던 행동을 멈추며 "스톱"을 외쳤고 일정이 잠깐 중단되는 해프닝이 있었다. 역사적인 순간 두 정상들 앞에서 소리를 지른 '장본인'이 돼 버린 장 씨는 "정말 살 떨리는 순간"이었다며 웃음을 지었다.
"떨렸지만 그 상황이 좋았던 게 북측에 가서 한국말로 대화가 되는 거였어요. 아프다고 하니까 그들이 알아듣는 게 신기했죠. 세종대왕의 위대함이랄까."
◆11년 만에 성사된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그럼, 지금 넘어가시죠?"
이명박, 박근혜 정부 당시에는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지지 못하다가 2018년 문재인 정부 집권 1년도 되지 않아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됐다. 2018년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2018년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는데 이는 2000년과 2007년에 이어 11년 만에 성사되는 3번째 남북정상회담이었다.
특히 '2018 남북정상회담'은 앞서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이 평양에서 열렸던 것과 달리 판문점 남측 '평화의집'에서 열리면서 주목을 받았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을 마친 뒤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을 공동 발표했다. 양 정상은 이 선언을 통해 핵 없는 한반도 실현, 연내 종전 선언,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성 설치, 이산가족 상봉 등을 천명했다.
특히 북한 최고지도자로는 처음으로 군사분계선을 넘어온 김정은 위원장의 남측 방문 답방 차원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가을 평양을 방문해 정상회담을 열기로 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 전속 사진담당 김진석 씨는 2018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이렇게 기억을 하고 있다.
"이날 문 대통령이 남쪽 끝자락에 먼저 와서 2~3분 정도 대기를 하셨거든요. 이때 북측 판문각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걸어 내려오는 장면이 보였어요. 서로 악수를 할 것이다라는 계산 하에 앵글을 유지한 채로 대통령의 표정을 보게 되는데요, 처음에 표정은 매우 긴장하셨던 것 같았어요. 보통 그런 표정을 잘 안 지으시는데 입술이 쫙쫙 갈라진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매우 긴장한 얼굴이었죠. 멀리서 김 위원장이 가까워질수록 긴장된 얼굴이 환한 얼굴로 바뀌는 것을 보게 됐죠. 그 짧은 순간에 수많은 생각을 하시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김 씨는 천천히 당시를 기억하며 김 위원장의 순발력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남북정상회담의 백미는 두 정상이 만나서 악수를 하고 김 위원장이 바로 남쪽으로 내려와 나란히 서서 걸어가는 남북이 사전에 합의된 모습이었다.
문 전 대통령께서 "여기까지 이 가까운 거리인데 넘어오는데 참 오래 걸렸습니다"라고 얘기를 하며 "이제 다시 넘어가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느냐"의 말을 던지니 그때 바로 김 위원장이 "그럼 지금 넘어가시죠"라고 해서 문 전 대통령이 북으로 넘어갔던 부분에 참모들도 상당히 놀랐다고 한다.
또, 문 전 대통령이 냉면을 좋아한다는 소리에 북측이 평양냉면 기계를 판문각에 가져와서 설치했는데 기계에 문제가 생겨 결국 본음식이 아닌 늦은 후식으로 냉면을 먹을 수밖에 없었던 기억도 꺼내 들었다.
김 씨는 북측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이 좋아하는 평양냉면의 기계를 공수해서 직접 만들 정도로 성의를 보였다는 것에 의의를 뒀다.
문 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주량에 대한 질문엔 "문 대통령이 술을 그렇게 많이 드시지 않는 편이고 여사님도 마찬가지죠. 김 위원장과 부인 리설주 씨도 마찬가지로 술을 많이 드시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마이클 멀린 전 미국 합참의장은 지난해 10월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집중 발사하고 7차 핵실험 가능성이 거론되는 지금이 북-미 대결이 극에 달했던 2017년 말보다 북핵 사용 위험이 더 커진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2023년에도 남한에 탄도미사일 발사를 비롯한 공세적 국면을 이어가겠다는 김정은 국무위원장. 남북한은 새해 벽두부터 극한 대결과 군사 충돌 위기에 빠져 있으면서도 적절한 시점에 출구를 찾아야 하는 국면에 처해있다.
대통령의 이름이 역사에 남는 것은 결국 정책이다.
새해 미사일 발사가 북의 의도적 도발로 분석되지만 이런 상황을 되짚어보며 우리가 앞으로 나가야 할 부분을 찾아가야 할 듯하다. 북이 핵 공격 위협으로 도발을 하더라도 정상들 간의 만남을 통해 소통을 하고 역경을 헤쳐나가는 것도 그리 나쁜 방식은 아닐 것으로 보인다.
사실 '남북정상회담'을 통한 한반도 평화 정착은 보수·진보를 떠나 어느 대통령도 거부하기 힘든 '역사적 책임과 소명'이기 때문이다.
<기획취재팀=이효균·배정한·윤웅 기자 /영상취재·편집=김정환 기자>
▶3편에서 계속→ [대통령 사진의 비밀③] 전직 청와대 사진담당들이 말하는 '김건희 사진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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