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정의 음악 정류장] [62] 또 다른 시작
새해를 맞이할 때면 생각나는 가수가 있다. 바로 1996년 1월 1일에 19세의 어린 나이로 스스로 생을 마감한 가수 서지원이다. 어린 왕자를 연상시킬 정도로 순수한 이미지의 앳된 외모 덕분에 그는 많은 인기를 얻었다. 미성(美聲)이면서도 안정적이고 힘 있는 목소리로 주목을 받은 그였으나 2집 발매를 앞둔 상황에서 흥행에 대한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우리 곁을 떠났다.
1집 음반에서 ‘또 다른 시작’이 인기를 얻은 데 이어 유작 음반이 된 2집 음반에서는 ‘내 눈물 모아’가 특히 큰 인기를 얻었다. 2집 음반 발매를 앞두고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아름다운 앨범을 만들고 싶었어요. 외모 때문에 인기를 얻는 가수가 아니라 노래 때문에 사랑받는 가수가 되고 싶어요. 최선을 다했으니 이제 팬들의 심판을 기다려야죠”라며 담담하게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나이에 비해 침착하고도 어른스러웠던 그는 애써 활달한 척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당시 주변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배려심이 깊고 여린 마음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그 성격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예나 지금이나 착하고 여리고 소심한 사람들은 살기 어려운 세상이다. 그가 느꼈을 책임감, 부담감, 외로움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5일 후인 1월 6일에 가수 김광석이 극단적인 선택으로 유명을 달리하면서 또 한 번 충격을 주었다. 사망하기 1년 전 콘서트에서 그는 ‘일어나’라는 노래를 작사, 작곡한 동기를 다음처럼 말했다. “한동안 뭔가 모르게 마음이 무겁고 답답했을 때예요. 뭐, 정말 ‘그만 살까?’ 이런 생각도 하고 그럴 때, 어차피 그래도 살아가는 거 좀 재밋거리 찾고 살아봐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 하면서 만든 노랩니다”라고.
서지원의 ‘또 다른 시작’에서는 헤어졌다 다시 만난 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며 “누구에게도 준 적 없는 내 모든 꿈을 너에게 맡길게”라고 해서 제목처럼 또 다른 시작을 예고했다. 김광석은 ‘일어나’에서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번 해보는 거야”라며 새 출발의 의지를 힘주어 노래했다.
웅크렸던 토끼가 뒷발로 발돋움하여 도약한다는 해인 계묘년(癸卯年)이 어느덧 시작되었다. 올 6월부터 만 나이로 통일된다 하니 괜스레 젊어진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 마음으로 참고 견디고 버텨보기로 한다. 인생이란 것은 지도에 없는 길을 가는 여행이라 길이 없는 곳에서 길이 시작되곤 한다. 어떤 길이 우리를 기다릴지 알 수 없다. 그 길이 꽃길이라 장담할 수도 없다. 그래도 가보기로 한다. 그 길에서 너를 만나 즐겁게 동행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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