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타워] 늦장 대처가 키운 전세 피해

송은아 2023. 1. 4.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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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몇년 전, 첫 전셋집을 얻을 때 살 떨리던 기억이 생생하다.

결국 최근 대형 전세사기가 잇달아 터지자 그 피해를 국민이 고스란히 짊어지게 됐다.

전세 사고도, 전세 제도의 맹점도 하루이틀 된 문제가 아니다.

당국의 게으름, 국회의 뒷북 행보는 전세사기 피해를 키운 한 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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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왕' 등에 세입자 고통… 정부·국회 ‘맹점’ 개선해야

십몇년 전, 첫 전셋집을 얻을 때 살 떨리던 기억이 생생하다. 모르는 이에게 거액을 맡기려니 걱정이 스멀댔다. 제1과제는 전세금 지키기였다. 아무리 애써도 불가항력적인 사고 가능성이 상존했다. 다가구 주택의 경우 경매에 넘어갔을 때 나보다 앞선 전월세 보증금이 얼마일지 알아서 가늠해야 했다.

근저당은 당일, 확정일자는 다음날 효력이 생기는 점은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 계약서 특약에 ‘확정일자 효력 발생 전까지 등기부에 추가 변동 없을 것’이라고 꾹꾹 눌러썼다. 안심되지 않았다.
송은아 사회2부 차장
자취생이 모인 네이버 카페에서 누군가 ‘국세 체납액이 전세금보다 우선한다’고 했다. 세금 밀린 집주인이 얼마나 되겠나 싶으면서도 마음 한쪽이 불안했다. 체납 정보를 물어본들, 상대하기 버거운 공인중개사와 까칠한 임대인들은 “하이고, 별걱정을 다 한다”며 넘어갈 게 뻔했다.

하루 차이에 전 재산을 날릴 수 있는 위험을 왜 놔둘까, 고액체납자를 어떻게 거르라는 걸까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20대 사회초년생이 하소연할 곳은 없었다. 정부가 답할 것 같지 않았다. 당시 부동산 정책은 뉴타운, 신도시에 집중됐고, 자취생들의 고민은 정부가 논할 거리도 아닌 듯했다.

이후 정권이 네 번쯤 바뀌었다. 전세 안전망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일부 권고 조항이 생겼지만 실효성은 작았다. 서민 전세시장은 ‘각자도생’의 영역으로 방치됐다. 결국 최근 대형 전세사기가 잇달아 터지자 그 피해를 국민이 고스란히 짊어지게 됐다.

경찰청은 지난달 전국적으로 수사하는 전세사기 피해 규모가 약 8000채라고 발표했다. 거북한 별칭이지만, 인천 ‘건축왕’이 저지른 사기 규모가 2709채, ‘빌라왕’ 김모씨가 1139채, ‘빌라의 신’ 권모씨가 3493채에 달한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전세보증보험 사고액은 2018년 792억원에서 2021년 5790억원으로 폭증했다.

전세 사고도, 전세 제도의 맹점도 하루이틀 된 문제가 아니다. 정부와 국회는 이제야 부랴부랴 움직이고 있다. 지난달 말 국세보다 임차보증금을 우선 보호하는 내용으로 국세기본법이 개정됐다. 집주인이 세금 납부 증명서를 의무적으로 보여주도록 하는 개정안은 이달 정부 입법으로 국회에 올라간다. 국토교통부는 적정 전세 시세를 알려주는 ‘안심 전세 애플리케이션’을 이달 내놓는다.

이 외에도 21대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세입자 보호법은 10여건에 달한다. 세입자의 전입신고 즉시 대항력이 생기도록 한 법안, 계약 기간에 집주인이 바뀌면 세입자도 알 수 있도록 한 개정안, 계약 때 공인중개사가 집주인의 체납액 정보를 의무적으로 알려주도록 한 법안 등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보면 볼수록 ‘이제야’ 혹은 ‘이게 아직까지?’ 싶은 내용들이다. 그간 법·제도가 얼마나 전세금 보호에 무관심했는지 보여준다. 집 계급도로 보면 ‘차상위’쯤에 해당하는 빌라·연립 시장은 늘 정부의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렸다. 당국의 게으름, 국회의 뒷북 행보는 전세사기 피해를 키운 한 축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전세시장의 정보 비대칭성이 개선돼야 한다. 확정일자의 효력 발생 시점을 앞당기고, 집주인의 임대보증보험 가입 여부와 납세 정보를 세입자가 계약 단계에서 ‘심리적 부담’ 없이 알 수 있어야 한다. 최대 1억원인 공인중개사의 보증보험 가입액을 올려 책임과 권한을 강화할 필요도 있다. 그래야 무너진 시장 신뢰가 조금이라도 회복된다.

송은아 사회2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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