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칼럼함께하는세상] ‘저치’에서 ‘저이’가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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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할머니는 1948년 경기도에서 태어났다.
김 할머니는 10여년 전 딸 간호와 손자 양육을 위해 한국에 왔고 구로동에 살고 있다.
한국 할머니 두 명, 귀화한 할머니 한 명, 중국 할머니 세 명 모두 여섯 명이 모였다.
"중국 사람 중에 그런 사람도 있어. 나도 알아. 나한테 한 얘기는 아니잖아." 문 할머니는 '저치'도 있지만 '저이'도 있다는 걸 인정해줬고, 김 할머니는 '저치'들이 '저이'가 될 때까지 기다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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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두 할머니가 만났다. 손자녀 기르느라 고달픈 할머니들의 모임에서다. 한국 할머니 두 명, 귀화한 할머니 한 명, 중국 할머니 세 명 모두 여섯 명이 모였다.
사는 형편이 비슷하고 서로 나이 들어가는 처지라 금방 말을 섞을 줄 알았는데 오산이었다. 수세미를 뜨는 첫 모임부터 내외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김치를 담그는 두 번째 모임에선 국적대로 자리를 잡았고 경계를 나눠서인지 말도 서슴지 않았다. “저치들은 김치 담그는 것도 우리랑 달라.” 아뿔싸!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중국 사람들은 아무거나 먹어, 못 먹는 게 없어.” 문 할머니였다. 이대로 모임을 접어야 하나! “중국은 사람이 워낙 많아서 먹는 게 다양해서 그래요.” 김 할머니가 차분히 대응했다. ‘시끄럽다’, ‘지저분하다’, ‘예의를 모른다’ 문 할머니는 일상이 다 피해를 보고 있다며 투덜댔고 김 할머니는 일일이 대응하지 않았다. 애초 잘못된 만남이었나 보다.
역사는 멀고 생활은 가깝다. 역사의 강을 따라 오늘 구로에서 이렇게 만난 것에 대해 의식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같은 생활권에서 사는 것에 대한 불안과 불만만 있을 뿐이다. 다문화 수용성이나 사회통합은 가치요 이론이지 생활이 엮이는 사람들에게 갈등과 경계로 날이 선다.
긴장감이 팽팽했으나 모임을 이어갔다. 광명동굴도 가고 보라매공원도 가고 그렇게 여섯 달이 지나 말을 텄다. 어지간히 근성 있는 할머니들이다. 나중에야 이름을 부르는가 싶더니 속상한 얘기도 꺼내놨다. 제대로 모임이 되는 데 1년이 걸렸다. 12월 모임에서 문 할머니에게 물었다. 중국 사람 그렇게 싫어했는데 어떻게 계속 모임에 나왔냐고. “중국 사람이야 맘에 안 들지만 저이는 안 그러잖아.” 김 할머니에게도 푸대접받고도 모임에 나온 이유를 물었다. “중국 사람 중에 그런 사람도 있어. 나도 알아. 나한테 한 얘기는 아니잖아.” 문 할머니는 ‘저치’도 있지만 ‘저이’도 있다는 걸 인정해줬고, 김 할머니는 ‘저치’들이 ‘저이’가 될 때까지 기다려줬다. 갈등과 차별을 머리에서 몰아내는 건 십오 분이면 되지만 가슴에서 내 것이 되는 데는 1년이 걸린다. 새해가 밝았다. 다시 부대껴보자. 올 한 해 많은 ‘저이’를 만나보자.
정종운 서울 구로구가족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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