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년 이어온 ‘송아지 장학금’…“후배 등록금 걱정 덜어줍니다”
송아지 기르고 팔아 학비 보태고
3년 뒤엔 장학회비로 한 마리 기증
올해도 초등 졸업생 2명에게 전달
“제 송아지가 생겼다니 너무 신기하고 좋아요. 축사를 운영하는 친척에 맡겨 키우기로 했는데 자주 보러 갈 겁니다.”
4일 오전 전남 완도군 완도읍 화흥초등학교 운동장. 아름드리나무에 묶인 제법 덩치가 있는 송아지를 보며 조다연양(13)이 말했다. 조양은 “송아지를 장학금으로 주는 학교는 전국에 우리 학교밖에 없다고 들었다. 만화작가가 되는 게 꿈인데 ‘정말 만화 같은 일’”이라고 했다.
박보아양(13)도 송아지를 받았다. 박양은 “그동안 매년 언니, 오빠들이 송아지를 받는 것을 보고 부러웠다”면서 “간호사 꿈을 위해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6일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조양과 박양은 이날 ‘상황봉장학회’로부터 송아지를 장학금으로 받았다. 졸업생 3명 중 ‘3년 재학’ 기준을 채우지 못한 1명은 장학회 규칙에 따라 제외됐다.
장학회는 1977년부터 송아지를 장학금으로 주고 있다. 화흥초 동문과 졸업생들은 학교 뒷산이면서 완도에서 가장 높은 ‘상황봉’(현재는 상왕봉)에서 이름을 딴 장학회를 만들었다. 살림이 넉넉하지 않았지만 ‘지역인재 육성’에는 한마음이었다. 장학회 설립 취지문에는 “사회의 어떤 변환이 있어도 교육만은 살아야 하듯, 고장의 후배 양성을 위해 장학회를 발기하오니 배움을 등져야 하는 딱한 처지에 있는 후배들을 감안해 전적인 찬동이 있으시길 바란다”고 적혀 있다.
장학회는 기금을 모아 졸업생 3명에게 장학금으로 송아지를 줬다. ‘장학금 약정서’에는 “장학금을 받은 학생은 고교 이상을 수학시켜야 한다”는 조건도 담았다. 소를 장학금으로 지급하면 매년 낳은 송아지를 팔아 중학교와 고등학교 학비까지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는 혜안이 담겼다.
목돈이 드는 대학 등록금도 무럭무럭 자란 소를 팔아 해결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동안 장학금으로 지급된 송아지는 243마리나 된다. 최선주 전 상황봉장학회 회장(70)은 “섬마을 작은 학교지만 송아지 장학금 지급 이후 박사 학위를 받은 동문만 20여명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화흥초의 송아지 장학금이 고갈 없이 47년 동안이나 이어져 온 것은 장학회의 독특한 운영 방식 때문이다. 소를 받은 사람들은 3년 후 7개월 이상 된 송아지 한 마리를 후배들을 위해 장학금으로 다시 내놓아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이날도 3년 전 장학금으로 지급된 송아지 6마리가 학교로 돌아왔다. 소를 직접 키울 수 없는 학생들은 축산농가에 위탁해 사육한다.
한때 400명이 넘었던 화흥초 재학생은 현재 39명에 불과하다. 학생 수가 줄면서 장학회는 수년 전부터 모든 졸업생에게 송아지 한 마리씩을 주고 있는데 때로는 감당이 힘들다. 올해 6학년이 되는 학생은 10명이지만 내년까지 돌아오는 소는 8마리여서 2마리가 부족하다.
최 전 회장은 “내년에는 장학금으로 지급할 송아지가 부족해 동문 등을 대상으로 모금을 통해 해결할 계획”이라면서 “학교가 문을 닫지 않는 이상 송아지 장학금도 지속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글·사진 강현석 기자 k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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