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밥 같은 나의 동네 [책방지기의 서가]
편집자주
'문송하다'는 말도 있지만, 그래도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건 인문학적 교양입니다. '문송'의 세계에서 인문학의 보루로 남은 동네책방 주인들이 독자들에게 한 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어릴 적 살았던 동네에 찾아가 무작정 골목골목을 뒤적인 적이 있다. 내가 다닌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을 뿐, 옛 모습의 흔적을 찾아내긴 쉽지 않았다. 40년 전 기억의 장소를 찾아 나섰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섭섭한 마음이 들다가도 걷다 보면 어릴 적 추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조립식 장난감이 진열장에 즐비했던 문방구, 시멘트 담장의 집들과 우리가 지나는 발소리에 짖어 대던 강아지들, 하굣길에 하드를 사 먹던 구멍가게며, 무엇보다 서로 밀고 밀치며 낄낄거리던 동무들… 내 마음속 '나의 동네'란 그런 곳이었다. 신나고 달콤하고 안전한 곳. 청소년기를 지나며 까맣게 잊고 있던 '나의 동네'와 다시 맞닥뜨리게 된 것은 쉰 살 무렵이다. 그리고 책방을 열기 위해 다시 만난 '나의 동네'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1945년에 등기된 상가 내부를 뜯어내고 수선하는 동안 혹여 그 소리와 먼지가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지는 않을지, 우리가 이곳에 들어와 장사하는 것이 못마땅한 사람은 없을지 걱정이 앞섰다. 책방을 열고 나서도 불쑥불쑥 들어와 '어디서 왔냐?' '뭘 할 거냐?' '책방 차려서 먹고살 수 있겠냐?'는 질문을 수시로 던지는 마을 어른들의 관심도 늘 반갑지만은 않았다. 특히 주차 문제로 언성까지 높아지던 날은 이곳이 '나의 동네'가 될 수 있을까 회의가 들기도 했다.
'고양이 히어로즈의 비빔밥 만들기' 책장을 넘기며, 몇 년 전 그때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어느 날, 고양이 섬마을에서 별난 오디션이 열린다. 즐거운 마을을 함께 만들어갈 '고양이 히어로즈'를 뽑는 이 오디션에 여러 고양이가 참가 신청을 한다. 그런데 오디션 신청 접수처 앞에 기다랗게 줄을 선 고양이 신청자 사이로 쥐 한 마리 '재미'가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고양이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보탠다. "맛있어 보이는 녀석이 무슨···." 쥐를 얕잡아 보는 고양이가 있는가 하면, 그 쥐를 귀여워하는 고양이도 있다. 과연 용감한 쥐 '재미'는 오디션에 참가할 수 있을까? 오디션을 무사히 마치고 고양이 히어로즈에 뽑힐 수 있을까? 아니, 무엇보다 이 고양이들 사이에서 살아남을 수는 있을까?
고양이 사는 곳엔 어디나, 사람 사는 곳도 그렇겠지만, 굴러들어 온 돌이 있는가 하면 박힌 돌이 있다. 오랫동안 한자리에서 별 탈 없이 살았던 박힌 돌들은 새로운 이웃이 반가울 수만은 없다. 낯선 곳에서 새로이 둥지를 틀어야 할 굴러 온 돌은 혹여 박힌 돌들이 눌려 지내지는 않을지 걱정이 앞서고 마음이 뾰족해진다. 하지만 누군가 먼저 마음을 열어 준다면 좋은 이웃이 되기까지 쌓아야 할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적막하던 그림책방에 젊은 가족들이 아기들과 함께 책방을 찾아왔고, 그들이 열심히 우리 책방을 알린 덕에 책방을 찾는 손님들이 늘어났다. 아기들 보기 힘든 읍내 골목에 이전보다 활기가 돌았다. 오래된 동네를 유쾌하게 만드는 데 까르르 넘어가는 아이들 웃음소리만한 게 있을까? 그래서인지 시간이 지나며 다정하게 말 걸어주는 마을 사람들이 늘어났고, 생각날 때마다 고구마, 옥수수를 가져다주는 어르신도 생기고, 번거로운데도 우리 책방에서 책을 주문하는 선생님들, 말 없이 문 앞에 예쁜 화분을 놓고 가는 속 깊은 친구들도 생겼다. 때로 마을 일을 의논하는 이웃도 생기기 시작했다.
'고양이 히어로즈의 비빔밥 만들기'도 딸기책방의 동네 친구 보람 작가의 작품이다. 작가 역시 강화에 발붙인 지 오래되지 않았다. 그래서 더 동네와 이웃에 대한 생각들이 깊었던지 귀엽고 짧은 그림책을 통해 동네에 관한 진실 하나를 알려 준다.
"마을이란 서로 다른 재료가 섞여 맛을 내는 비빔밥 같은 거야."
좋은 이웃이 되고 좋은 이웃을 만나는 새해가 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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