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세 나문희 “젊은 사람들 만나려고 ‘틱톡’도 시작했어요”

박돈규 기자 2023. 1. 4.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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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200만 앞둔 뮤지컬 영화 ‘영웅’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役 나문희 인터뷰
영화 ‘영웅’에서 조마리아를 연기한 배우 나문희는 “아들 안중근을 향한 굳건한 모성애를 연기와 노래로 온전히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CJ ENM

200만 관객을 바라보는 뮤지컬 영화 ‘영웅’에는 눈물의 구간이 있다. 조마리아(나문희) 여사가 사형 판결을 받은 아들 안중근(정성화)에게 수의를 지어 보내며 “일제에 목숨 구걸하지 말고 나라를 위해 그냥 죽으라”고 편지를 쓰는 대목. 이어지는 노래 ‘사랑하는 내 아들, 도마’가 “내 아들, 나의 사랑하는 도마야/ 떠나갈 시간이 왔구나/ 두려운 마음 달랠 길 없지만/ 큰 용기 내다오~”로 흘러갈 때 눈물이 솟지 않는다면 무정한 사람일 것이다.

1961년 MBC 라디오 공채 성우 1기로 데뷔한 나문희(82)를 4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났다. 60여 년간 억척 엄마, 까다로운 할머니, 다방 마담 같은 배역을 거리낌 없이 소화해낸 배우. 1998년 ‘조용한 가족’ 이후 영화에서도 존재감이 짱짱했다. 일흔여섯 살엔 ‘아이 캔 스피크’(2017)에서 위안부 할머니를 연기해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차지했다. 수상 소감 “친정어머니가 믿는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나문희의 부처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도 열심히 해서 다들 그 자리에서 상받으시기 바랍니다!”도 화제가 됐다.

영화 ‘영웅’에서 배우 나문희는 강인한 모정 속에서도 아들 안중근을 걱정하며 사무치는 감정을 밀도 있게 그려냈다. /CJ ENM

–출연을 망설였다고 들었습니다.

“실존 인물이잖아요. 저하고 나이 차이도 있고 누를 끼치면 안 되니까요. 아들을 희생하려면 힘이 필요한데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 두려웠어요.”

–윤제균 감독이 끈질기게 설득했나요.

“설득? 하려면 하고 말려면 말라고 하대요(웃음). ‘국제시장’ ‘해운대’를 잘 만든 감독이 나를 믿는 이유도 있겠거니 하고 들어갔어요. 자기 자식을 그렇게 희생한 조마리아 여사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해요.”

–노래는 따로 배웠나요.

“피아노 반주도 하는 큰딸한테 레슨을 받았어요. 호흡법도 익혔지요. 그래도 현장에선 고생 많았어요. 잘 나온 걸 쓸 욕심인지 윤 감독이 ‘사랑하는 내 아들, 도마’를 자꾸 부르게 하는 거예요. 결국 첫 번째 테이크를 썼더군요. 그래도 괜찮아요. 늙으면 건망증이 심해서 잊어버려요. 지나고 보니 다 좋았어요.”

–영화를 본 가족 반응은.

“큰딸은 날 가르쳤다며 자랑하고 다녀요. 손주는 프로 골퍼인데 ‘할머니 나오는 장면에 다들 눈가를 훔쳤다’고 했어요. 며칠 전 떡국을 끓여줬더니 ‘어, 조마리아가 내오는 떡국이네’ 하고(웃음).”

–안중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유해가 아직 못 돌아온 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우리한테는 그 사람의 정신세계가 주는 게 훨씬 더 커요.”

–배우 정성화와의 모자 호흡은.

“정성화씨가 내 딸들보다 어리지만, 처음부터 그냥 아들처럼 처음부터 다가왔어요. 영화에서 안중근을 떠나보낼 때도 정말 아들 보내는 것 같았고. 나더러 뮤지컬 무대도 뛰라고 하는데 힘들어서 그건 못 할 것 같아요.”

최근 틱톡 크리에이터로 데뷔한 배우 나문희

–새해 소망은.

“건강이죠. 일을 맡았는데 남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되니까요. 제가 집에서는 쩔쩔매요. 남편은 고약하고 난 기운이 부족해서(웃음). 나는 일찌감치 엄마, 할머니 등 작은 역을 많이 했어요. 앞으로는 주인공보다 조그만 역으로 똑 따먹는 걸 하고 싶습니다.”

–연기에 대한 욕심이나 갈망은 여전한가요.

“사는 날까지, 관객이나 시청자 만날 수 있을 때까지 그저 열심히 하려고요. 틱톡도 시작했어요.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호박고구마 나오는 장면이 웃기니까 계속 올라와요. 크게 바라는 건 없고 젊은 사람들 만날 수 있고 이 나이로 굳어지질 않으니 좋아요. 배역은 옷과 비슷해서 걸쳐봐야 알 수 있어요. 대본을 받을 땐 엄두가 안 나도 자꾸 들여다보고 연습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메주가 쑤어져요.”

–배우로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면.

“지금 이 순간. 나 하나를 위해 기자 27명이 왔으니까요. 미안하면서 한편으론 ‘내가 이렇게 존재감이 있구나’ 싶고.”

–안중근에게 편지 쓰는 대목이 압권인데 연기 잘하는 노하우가 있나요.

“어느 장면에서는 딸과의 쓸쓸한 순간을 떠올리는 식으로 감정을 잡아요. 식구들을 이용해 먹는 셈이에요. 과거에는 ‘쟤는 내가 연기를 좀 가르쳐야겠다’ 생각하곤 했는데, 요즘엔 후배들 보고 내가 배워요. 예수정, 김희애, 김혜수가 아주 잘해요.”

–감정 잡을 때 남편도 도움이 되나요?

“그건 댁에 가서 아내에게 물어보세요. 이 나이에 무슨 남편을 생각해. 하하.”

현장이 웃음바다가 됐다. 이렇게 끝나면 곤란하다 싶었는지 배우가 덧붙였다. “남편 생각도 해요, 이따금.”

영화 '영웅'에서 조마리아 여사가 안중근에게 보낼 수의를 짓고 있다. /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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