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더 자극하나…합의 파기 땐 위기 관리 ‘안전핀’ 사라져

박광연 기자 2023. 1. 4.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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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 언급
세종시 대통령기록관에 전시된 평양공동선언문 4일 세종시 대통령기록관에 2018년 9월19일 문재인 당시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서명한 평양공동선언문이 전시되어 있다. 9·19 군사합의는 평양공동선언의 부속합의서다. 연합뉴스
군통수권자로 첫 공식화…‘강 대 강’ 대응에 우려감
“북 도발에 레드라인 그은 것” 대북 억지 효과 평가도

윤석열 대통령이 4일 “북한이 다시 우리 영토를 침범하는 도발을 일으키면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를 검토하라”고 지시한 것은 무인기 도발 등 군사적 위협을 강화하는 북한에 대한 강력한 경고 차원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강 대 강’ 대응은 오히려 북한을 자극해 한반도의 정치·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윤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최근 북한의 도발적 행동 국면에서 꾸준히 거론된 9·19 군사합의 파기 가능성을 군통수권자가 정치적으로 공식화한 것으로 평가된다.

남북관계발전법에 따르면 대통령은 남북관계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하거나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기간을 정해 남북합의서의 효력 전부 또는 일부를 정지시킬 수 있다.

‘9·19 합의 효력 정지’ 가능성을 시사한 것은 지난달 무인기 도발에 이어 올해 대남 전술핵 위협 공세 등 역대급 도발적 행동을 시사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한 사전 경고로 읽힌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기자와 통화하면서 “북한에 9·19 군사합의를 준수하고 영토를 침범하지 말라는 ‘레드라인’을 그은 것”이라며 “북한 입장에서도 9·19 군사합의 효력이 정지되면 불리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대북 억지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 발언이 북한의 도발적 행동을 억제하지 못하고 더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지난달 무인기 도발 이후 “압도적으로 우월한 전쟁 준비” 발언 등으로 재확인된 대북 ‘강 대 강’ 기조의 연장선상이기 때문이다. 핵무력 고도화를 정당화하기 위해 한반도 정세 악화 책임을 한·미에 돌리고 있는 북한이 추가 도발을 감행해 남측의 합의 파기를 유도하려 들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 위원장의 대남 “전술핵 다량 생산” 발언 등으로 고조된 올해 한반도 ‘강 대 강’ 정세가 더욱 심화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김 위원장은 남한을 “의심할 바 없는 우리의 명백한 적”으로 규정하며 전술핵 위협을 극대화하고 있다. 익명의 남북관계 전문가는 통화에서 “북한이 윤 대통령 발언에 자극받아 더 공세적으로 나설 것”으로 예상했다.

9·19 군사합의는 지난해 11월 북한의 북방한계선(NLL) 이남으로의 역대 첫 탄도미사일 발사와 지난달 무인기 도발 등으로 실질적으로 형해화된 상태다.

남한도 자위권 차원의 대응으로 NLL 이북에 미사일을 쏘고 무인기를 보냈다. 그러나 ‘모든 공간에서 일체의 적대행위 전면 중지’를 명시한 9·19 군사합의의 위기관리와 평화유지 기능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통화에서 “합의가 살아 있으면 남북은 이를 신경 쓸 수밖에 없고, 결국 충돌 수위를 조절하고 완화하는 안전핀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남북관계 전문가는 “위기를 고조시키지 않고 관리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라며 “합의를 파기하면 위기를 제어할 수 있는 장치가 없어진다”고 말했다.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북한의 계속되는 도발, 공격에 단호한 대처가 필요하지만 남북 정상들이 강 대 강으로 전쟁 불사 운운하면 진짜 전쟁이 날 수도 있다”며 “외교적 노력, 즉 남·북·미·중 간 대화와 외교 노력으로 한반도 평화를 지켜야 한다”고 적었다.

9·19 군사합의가 남북 국방장관들 간 합의인 만큼 윤 대통령이 먼저 나선 것은 섣불렀다는 평가도 나온다. 우선 국방부 차원에서 합의 효력 정지 가능성을 발표한 뒤 북한의 대응을 보며 경고 주체를 높이는 등 위기관리 여지를 넓혀둬야 했다는 시각이다. 윤 대통령이 최근 국내 정치에서 지지율 상승을 이끈 강경 기조를 외교·안보 영역에 무리하게 적용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박광연 기자 lightyea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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