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착카메라] '난쏘공' 배경된 그 마을, 45년 지난 지금도…
재개발로 삶의 터전을 잃은 가족의 얘기를 다룬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입니다. 1978년 처음 나온 이후 150만부 가까이 팔리면서, 우리 시대의 고전으로 불린 책인데요. 최근 작가 조세희씨가 세상을 떠나면서 다시 주목을 받았죠. 오늘(4일) 밀착카메라는 이 작품의 배경으로 알려진 마을을 찾아갔습니다.
소설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현실을 이희령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기자]
"우리집이, 이웃집들이, 온 동네의 집들이 보이지 않았다. (중략) 벽돌 공장의 굴뚝도 없어지고, 언덕길도 없어졌다."
-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중에서 -
1970년대, 좁고 가파른 골목엔 사람들의 말소리가 가득했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주민들이 정겨운 마음을 나누던 곳이었습니다.
마을에 모여 일상을 공유하던 동네 사람들, 지금은 모두 떠나고 없습니다.
이곳은 소설 '난쏘공'의 배경이 된 곳으로 알려진, 서울 중림동 호박마을입니다.
재개발 사업이 추진되면서, 사람이 사는 집보다 빈집이 더 많은 동네가 됐습니다.
1980년대 한때 쉰 가구 넘게 살았지만 이젠 네 가구만 남았습니다.
1971년부터 호박마을에서 살아온 양희자 씨는 떠난 이웃들을 기억합니다.
[양희자/호박마을 주민 : {이 골목엔 아무도 안 살아요?} 없어, 없어. (옛날엔) 바글바글했지.]
몸이 불편한 이웃 할머니는 언제, 어디로 가게 될지 모릅니다.
[이재금/호박마을 주민 : 죽지 못해 살지. 돈 몇 푼 해서 어디로 보내주겠지.]
양희자 씨도 8년 동안 지낸 집에서 나가달란 통보를 받았습니다.
[양희자/호박마을 주민 : (옛날엔) 방 얻기가 쉬웠는데 지금은 방값이 올랐고 돈도 없고.]
계약 기간이 끝나는 7월까지 버텨보려고 하는데, 세입자라 힘이 없습니다.
[양희자/호박마을 주민 : 내가 항상 불안하다고 하잖아. 살 수가 없어. 너무 힘들어, 살기가.]
날이 저물자, 마을은 더 고요해졌습니다.
두 팔을 다 벌리지 못할 정도로 좁은 골목엔 철거를 앞둔 집들이 있습니다.
출입 금지 표시도 붙어 있는데요.
벽엔 '철거'란 글씨가 써있고, 누군가 두고 간 걸로 보이는 문도 버려져 있습니다.
다니는 사람이 많지 않다 보니, 눈이 치워지지 않아서 길이 얼어버렸습니다.
이 마을로 들어온 지 10년이 넘은 박재순 씨, 임대 아파트에 지원했지만 막막하기만 합니다.
[박재순/호박마을 주민 : 만약 (임대아파트가) 안 된다고 하면, 그것도 어떻게 해봐야 하나. 모아둔 돈이 있으면 진작에 여기 살지도 않았지.]
[이수민/구립중림종합사회복지관 사회복지사 : SH나 LH 전세 임대를 할 때 매물탐색이 굉장히 힘들거든요. (매물을 찾는 데 도움을 주는) 제도가 다시 생기거나 그런 인력이 파견이 된다면 어르신들이 조금 더 나은 집으로 이사 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이미 많은 계획을 내놓았다. (중략) 그것은 우리와는 상관이 없는 것이었을 것이다."
-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중에서 -
재개발에 밀려 삶의 터전을 떠나야 하는 사람들,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도 없습니다.
이 책이 나온 지 45년이 지났지만, 소설 속 '난장이'와 같은 삶들은 지금도 이곳에 남아 있습니다.
(VJ : 황의연 / 영상그래픽 : 김지혜 / 인턴기자 : 강석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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