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 주고 약까지?”…중국인 사재기 우려에 감기약 수요 폭발
품귀 우려에 소비자 불안감…제도상 허점 악용 가능성도
서울 중구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 A씨는 최근 중국인들이 와서 감기약 등을 사재기하느냐는 질문에 “주변에서도 못 들어봤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일부 제품은 공급난이 있긴 했으나, 해마다 겨울이면 수요가 많아져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다.
중국 보따리상들이 한국에서 감기약을 사재기한다는 의혹이 불거진 가운데 약국과 편의점 등에서는 대체로 공급이 원활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히려 논란이 제기되면서 내국인들이 약을 대거 사들이려는 수요가 늘었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4일 매경닷컴이 서울 중구와 영등포구 등 중국인이 많이 찾는 지역을 취재한 결과, 판매에 지장을 겪을 정도로 감기약 공급난을 겪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약국 13곳과 편의점 4곳 중 감기약이 품절된 곳은 약국 1곳에 그쳤다.
약사 A씨는 “발주 들어가면 동네 약국에서 서로 다 안다. 보따리상한테 몇백만원어치 파는 게 소문이 안 날 수가 없다”며 “우리 국민 놔두고 엄한 곳에 팔았다고 하면 그 후폭풍이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유일하게 감기약이 품절된 약국의 직원 B씨는 “타이레놀은 작년부터 입고가 잘 안 됐다”며 “지금도 있다가 없다가 한다. 중국인들이 사재기한 경우는 없었다”고 말했다. 보건당국이 백신 접종 후 발열이나 두통 등 이상반응이 나타나면 아세트아미노펜 제제를 복용하도록 권고하면서 종종 있었던 일이라는 것.
약국 중 타이레놀을 인당 1~2개씩 구매할 수 있도록 제한한 곳은 있었으나, 대부분 공급에 큰 차질이 없는 분위기였다. 대림동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 C씨는 “다들 타이레놀만 찾는다. 재고가 없어 1개씩만 판매하고 있다”며 “같은 성분인 아세트아미노펜 계열의 다른 제품도 효과는 똑같다”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해 말 일부 매체는 한 중국인이 경기 하남시 망월동 소재 약국에 여행용 캐리어를 가져와 감기약 600만원어치를 구매해갔다고 보도했다. 진위 여부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일부 점포에서 감기약 대량 구매 문의가 있었던 정황은 포착됐다.
이에 정부가 약국의 감기약 판매 수량을 제한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일각에선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선제적 예방조치가 도리어 내국인들의 ‘가수요’를 부추길 수 있단 판단에서였다. 또 결과적으로 사회 전반의 감기약 수요가 늘었다는 게 약사들의 이야기다.
약사 D씨는 “코로나19에 걸리면 (감기약 등을) 최소 7일 이상 장기 복용해야 한다”며 “상당수 국민이 코로나19에 한 번씩 걸리다 보니 해당 약의 공급이 아슬아슬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에 중국발 변이 바이러스 유입 가능성 등 우려에 감기약을 사두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감기약 품귀 현상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제도상 허점을 이용해 사재기하는 사례가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관련 법과 정부 방침에 따라 구매 수량이 제한되더라도 현장에선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수 있단 것이다.
예컨대 한 사람이 여러 약국과 편의점을 돌아다니며 많은 양의 감기약을 구매할 경우, 현재로선 이를 실질적으로 단속할 방법이 없다. 또 편의점에서는 한 사람당 1개의 감기약만 구매할 수 있지만, 매경닷컴 취재 결과 이 제한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정황도 확인됐다.
서울 소재 한 편의점의 직원 E씨는 “여러 개를 구매하려면 여러 번에 나눠서 결제하면 된다”며 “서너개를 사고 싶으면 1번에 1개씩 결제를 서너번 걸쳐서 하는 식”이라고 귀띔했다.
한편 정부는 중국인들의 감기약 사재기 논란과 관련, 범정부 차원에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관세청과 공항공사 등 유관기관 간 협업을 통해 감기약 밀수출 등을 막겠다는 것이다.
인천세관은 이날 매경닷컴과 통화에서 중국인들의 감기약 대량 반출 여부에 대해 “아직 특별히 적발된 사례는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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