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익 위협 때문에 ‘표현의 자유’ 포기할 수는 없어요”
“정말 놀랐습니다. 일본에서 진행된 ‘표현의 부자유전’의 의미를 한국에서 인정받은 거잖아요. 저뿐만 아니라 전시회 개최를 위해 온 힘을 다한 회원들에게도 큰 기쁨이자 격려가 될 겁니다.”
<한겨레> 창간 편집위원장을 지낸 언론인 고 성유보(1943~2014) 선생의 정신을 기리는 ‘제8회 성유보 특별상’을 받은 오카모토 유카(59) ‘표현의 부자유전’ 도쿄실행위원회 공동대표는 지난 12월28일 도쿄 자택에서 <한겨레>와 만나 수상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성유보 특별상’ 선정위원회는 “오카모토 대표가 일본 각지에서 ‘표현의 부자유전’ 개최를 주도해 표현의 자유와 인권을 신장하는 데 크게 기여했으며, 오랫동안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재일조선인 차별 등 한·일 양국의 화해 및 평화를 위해 헌신했다”고 수상 이유를 설명했다. 오카모토 대표는 이 상의 첫 외국인 수상자로 시상식은 지난 12월19일 서울 민주언론시민연합 교육관에서 열렸다.
2012년 일본군 ‘위안부’ 사진전 취소
안세홍 작가 손해배상 소송 지원 동참
‘표현의 부자유전’ 도쿄실행위원 맡아
2022년 4개 도시 ‘평화의 소녀상’ 전시
지난해 ‘성유보 특별상’ 첫 외국인 수상
“온힘 다해 전시해낸 회원들 큰 기쁨”
오카모토 대표는 일본 우익의 온갖 방해와 위협에도 ‘표현의 부자유전’ 전시를 이끌어온 핵심 인물이다. 이 전시회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평화의 소녀상’을 비롯해 천황제,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 등 일본 사회가 불편해 하는 주제를 전면에 내세운 탓에 각종 전시 시설에서 철거당하거나 규제를 받았던 작품들을 모은 기획전이다. 일본의 ‘표현의 부자유’를 상징하는 전시물을 모아 ‘표현의 자유’의 중요성을 호소한다는 기획 의도였다.
오카모토 대표가 이 싸움을 시작한 것은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계적인 카메라업체 니콘이 운영하는 도쿄 전시관에서 한국인 사진작가 안세홍씨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전시가 열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우익들의 협박이 시작되자, 니콘 쪽은 일방적으로 전시를 취소했다. 법원의 가처분 결정으로 도쿄 전시가 열렸지만, 니콘 쪽은 홍보도 하지 않고 언론 취재뿐만 아니라 도록 판매도 금지하는 등 제약을 가했다. 안씨는 손해배상 소송에 나섰고, 일본에서 그를 지원하는 모임이 만들어졌다. 프리랜서 편집자로 전시회·영화·책·잡지 등을 기획해 만들던 오카모토 대표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니콘 사건이 있고 2개월 뒤 도쿄도 미술관에서 전시된 작은 크기의 ‘평화의 소녀상’이 나흘 만에 철거됐습니다. 언론 기사도 거의 나오지 않았어요.” 그는 “아무도 모르게 표현의 자유가 계속 침해당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했고, 안씨 재판을 지원하던 동료들과 이런 부조리한 사실을 알리는 전시를 하기로 뜻을 모았다.
2015년 드디어 도쿄에서 ‘표현의 부자유전’이 열렸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의자에 앉아 있는 실물 크기의 ‘평화의 소녀상’이 전시돼 화제가 됐다. 이는 소녀상을 만든 김서경·김운성 부부 작가의 도움으로 가능했다. 서울에서 도쿄까지 이송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고민하던 차에, 두 작가가 자신들이 직접 들고 가겠다고 제안을 한 것이다. “도쿄에서 소녀상을 전시한다고 하니, 많이 놀라더라고요. 그래도 직접 들고 오는 것이 쉽지 않은데, 정말 감동했습니다.”
전시는 대성공이었다. 두 작가의 뜻에 따라 소녀상은 아무런 방해없이 전시됐다. 일본 관람객들은 옆자리에 앉아 소녀상을 바라보거나 손을 만지기도 하고,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보름 동안 약 2700명이 다녀갔다.
뜨거운 관심 만큼, 수난도 커졌다. 가장 대표적인 사건은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시에서 열렸던 일본 최대 국제예술제인 ’아이치 트리엔날레 2019’ 사태다. 그해 8월1일 시작된 이 전시회에 당당히 초대를 받았지만 우익들의 협박에 더해 나고야시장, 관방장관까지 압박에 나서면서 전시가 나흘 만에 중단됐다. 이 사태는 그해 여름 일본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다. 일본 언론들도 나서 정부의 처사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로 인해 막판 엿새를 남기고 전시는 다시 열릴 수 있었다. 전체 75일 중 10일 정도만 관람객을 만나게 된 셈이다. 2021년 6월에도 도쿄 전시가 우익들의 집요한 방해로 무기한 연기됐다.
이 과정에서 큰 성과도 있었다. ‘우익 방해→전시 철회’라는 비슷한 절차를 밟던 오사카 실행위에서 지난해 소송을 통해 중요한 결정을 끌어낸 것이다. 오사카지방법원은 ‘표현이나 집회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것은 명확한 위기를 예측할 수 있을 때에 한해야 한다”며 전시를 추진했던 간사이 실행위의 손을 들어줬다. “오사카 실행위가 전시회를 하려던 공간은 공공시설이었어요. 공공시설이 시민의 것이 되려면, 시민들이 지켜내야 한다는 것을 오사카를 보면서 배웠어요.” 오카모토 대표는 “우익의 위협에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힘들지만 한 계단씩 오르는 느낌”이라고 기뻐했다.
오사카 사례에 힘입어 지난해 4월 도쿄 구니다치의 공공시설에서 7년 만에 ‘평화의 소녀상’ 전시를 한 데 이어 교토·나고야·고베 등 4곳에서 ‘표현의 부자유전’이 열렸다. “우익들이 대거 몰려왔지만 안전 대책을 마련하고 시민들의 지지로 무사히 끝낼 수 있었어요.” 도쿄에서만 자원봉사자 240명, 변호사 60여명이 지원에 나섰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에 맞서 씩씩하게 뛰어다니는 오카모토 대표지만, 2008년 암에 걸려 죽음의 문턱까지 갔을 정도로 위험한 순간이 있었다. 지금도 계속 검사를 받고 있다. “그때 살아난 건 기적이예요. 아프고 난 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이전보다 빨리 결정할 수 있게 됐어요.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그렇게 사는 편이 낫다는 것을 알게 됐으니까요.”
오카모토 대표는 올해도 분주할 것 같다고 말했다. “지역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표현의 부자유전’ 전시를 하고 싶다는 새로운 곳이 있어요. 또 올해로 개설 10년이 되는 일본군 ‘위안부’ 학술 사이트 ‘파이트 포 저스티스’ 운영 모임에서 상임이사를 맡고 있는데, 이 활동을 어떻게 강화할지도 고민입니다” 오카모토 대표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고,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어 즐겁다”며 환하게 웃었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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