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M부스] 9.19 합의 "확전 막는 안전판" vs "안보 발목잡는 족쇄" 정지될까?

이정은 hoho0131@mbc.co.kr 2023. 1. 4.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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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26일 북한의 무인기가 우리 영공을 침범한 이후 열흘째.

윤석열 대통령이 오늘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를 검토하라고 국가안보실에 지시했습니다.

국가안보실, 국방부, 합동참모본부, 국방과학연구소까지 무인기 문제와 관련된 안보 관련 부처들의 대응 전략을 보고받은 뒤 나온 지시 사항입니다.

"북한이 다시 우리 영토를 침범하는 도발을 일으키면" 이라는 단서가 붙긴 했지만, 최근 북한의 도발 빈도를 고려했을 땐 효력 정지가 아주 멀어 보이진 않습니다.

9·19 군사합의는 2018년 9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의 결과물입니다.

지상·해상·공중에서 남북이 일체의 군사적 적대행위를 중지하기로 했고, 실제로 접경 지역에서의 국지적 충돌이 줄었다는 평가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한이 무기 개발에 몰두하면서 보수진영에선 북한의 실질적 적대행위를 막지 못했다는 회의론이 제기됐습니다.

"합의란 상호 신뢰와 준수가 기본인데 한 쪽(북한)이 지키지 않으면 지키는 다른 쪽(남한)만 피해를 본다"는 겁니다. 접경지에서의 우발적 충돌이 줄어들긴 했지만,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개발하고 7차 핵실험을 준비하는 등 실질적인 적대행위는 계속해왔다는 점도 지적됐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시절부터 "상대가 이행할 때 우리가 이행해야 하는 거 아니겠느냐"(2021년 11월 17일) 파기를 거론했고, 취임 후인 지난해에도 북한의 도발이 잇따르자 "9.19 합의에 대해 하나하나 검토하고 있다"(2022년 10월 14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새 정부가 출범한 뒤에도 여당 일각에선 꾸준히 9.19 군사합의 파기 주장이 제기돼왔지만, 통일부도 국방부도 일단은 유보적인 태도를 보여왔습니다. 남북이 합의한 사항이니 북한의 준수를 촉구하면서 상황을 관리하자는 취지였습니다.

그러다 더 적극 9.19 군사합의 문제를 고민하게 된 건 지난해 10월부터 북한이 합의 위반이 노골화되면서부터입니다. 국방부에 따르면 북한이 9.19 합의를 명시적으로 위반한 사례가 모두 17건인데, 지난해 10월 이후 위반한 사례가 15건으로 집중돼 있습니다. 해상 완충구역 안으로 포병 사격을 가하는 식이 반복됐지만 지난 12월 26일, 북한의 무인기가 영공을 침범해 서울까지 비행하면서 정부가 '임계점에 이르렀다.' 판단한 걸로 보입니다.

북한의 도발이 이어져도 우리 군 당국은 9·19 합의정신을 준수하기 위해 대응을 자제하니, 안보 역량을 저하하는 족쇄만 돼버렸다는 평가가 있었는데 무인기 사건이 쐐기를 박은 겁니다.

그러면 왜 파기가 아니라 효력정지일까요?

한 정부 관계자는 "정작 군사합의를 위반한 건 북한인데 한국이 먼저 파기를 선언하면 긴장 고조나 군사적 충돌의 책임이 모두 한국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효력정지'는 대통령에게 법적 권한이 보장된 점도 고려했습니다.

남북관계에관한법률 제23조 ①남북합의서는 남한과 북한사이에 한하여 적용한다. ②대통령은 남북관계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하거나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기간을 정하여 남북합의서의 효력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정지시킬 수 있다.

이미 무인기 도발이 일어난 지 열흘째인 터라 효력정지를 선언하기엔 시기가 적절치 않다는 현실을 고려하고 북한의 추가도발을 억제하는 차원에서 "또 영토를 침범하면 다음엔 효력정지 카드를 꺼낼 거다." 강한 경고장을 빼들었다는 겁니다.

가정적이지만 9.19 군사합의의 효력이 정지되면 어떤 게 달라질까요? 9.19 군사합의 발효 이후 정지된 군사적 조치들이 재개될 길이 열립니다.

군사분계선 상공에서의 정찰 활동,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상대방을 겨냥한 각종 군사연습, 해상에서의 기동훈련과 포사격 등입니다.

하지만 9.19 합의를 지켜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습니다. 남북 간 적대행위를 금지하자고 한 최소한의 장치를 스스로 무력화시키면 북한이 더욱 적대행위를 반복할 여지만 줄 수 있다는 겁니다.

더불어민주당은 "북한이 바라는 게 바로 합의 파기이다. 9.19 합의를 뛰어넘어 남한에 적대행위를 할 여지를 주는 것밖에 안 된다"고 지적했고, 정의당은 "대통령이 나서 연일 강경 발언을 쏟아내며 긴장을 고조시키고, 북한을 자극하는 행위는 매우 부적절하고 무책임하다"고 비판했습니다.

9.19 군사합의는 문재인 정부의 유산입니다. 북미회담이 결렬되고 북한이 다시 핵무장을 강조하고 있는 지금, 윤석열 정부에서 존폐기로에 놓이게 됐습니다. 대통령실 관계자에게 다시 물어봤습니다.

효력정지 검토가 경고의 차원인지, 다음 영토 침범 시 즉각 효력을 정지하도록 준비한다는 차원일지. 다음 북한의 도발 이후 즉각 9.19 합의의 효력이 중지된다면 남북 강 대 강 대치 상황은 더 되돌리기 어려운 수준으로 가는 것이니까요.

대통령실 관계자는 "효력 정지라는 군사적 조치를 취하는 상황이 오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한국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밝힌 만큼 북한이 무모한 도발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라며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습니다.

다만, 북한의 도발이 이어진다면 '비례적 대응이 아니라 압도적 대응을 하겠다'는 건 분명하다며 이 원칙에 따라 무언가 실행하면 즉각 알리겠다고도 했습니다.

봄철에 서해에선 꽃게 조업이 이뤄집니다. 서해는 남한과 북한, 중국 어선들이 모두 모이는 긴장의 바다로 불렸습니다. 2018년 남북이 '서해 평화수역화'를 합의한 뒤 이듬해, 정부는 55년 만에 어민에게 야간조업을 허가한 바 있는데요. 남북 간의 긴장이 고조된다면 서해는 다시 긴장의 바다로 돌아갈지 모릅니다.

이정은 기자(hoho0131@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newszoomin/newsinsight/6442590_2912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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