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이 우리를 구원한다
[편집국에서]
[편집국에서] 이세영 | 전국부장
우리가 아는 이 나라의 이름난 작가 중에는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이 살려는 사람만 있었던 게 아니다. 부끄러움 때문에 하늘을 쳐다보지 않겠다던 작가도 이 나라에 살다 갔다. 반세기 넘게 작가라는 직함을 달고 지냈어도, 그는 제 이름이 표지에 박힌 책은 살면서 딱 세권만 냈다.
그의 책을 처음 본 건 삼십년도 더 지난 일이다. 어둑한 외삼촌 방 책장에서 어쩌다 꺼내 읽은 그 책에는 세상없이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들어 있었다. 문장만 보아서는 성경 구절 같기도 했다. “아버지가 그린 세상에서는 (…) 비도 사랑으로 내리게 하고, 사랑으로 평형을 이루고, 사랑으로 바람을 불러 작은 미나리아재비 꽃줄기에까지 머물게 한다.”
대학생이 돼 알게 된 건 그의 작품에 대한 평가가 우호적이지만은 않다는 사실이었다. 계급과 혁명에 대한 강박이 가슴 뜨거운 이들의 의식을 무겁게 짓누르던 시절이었다. 그의 이야기는 곧잘 리얼리즘 계열에 속해 있던 또 다른 저명 작가의 단편과 비교당했다. 둘의 차이가 “노동계급에 대한 근원적 신뢰인가 감상적 연민인가에 있다”는 평은 점잖은 축에 속했다. 민중문학 하는 쪽의 이름난 비평가는 그의 책이 “노동운동을 감상적 온정주의의 대상으로 만들어 혁명적 전망을 차단한다”고 쏘아붙였다.
평가야 어찌 됐든 멋진 글이 쓰고 싶던 많은 이가 그를 선망했다. 짧고 뼈만 남은 문장으로도 얼마든지 빛나는 글을 빚어낼 수 있다는 걸 그가 증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 시절 내가 밑줄 긋고, 옮겨 적은 문장은 이런 것들이다. “부엌에는 세개의 칼이 있다. 두개는 식칼이다. 하나는 짧고 하나는 길다.” “그는 인간의 숭고함·고통·구원을 말했다. 아버지에게는 숭고함도 없었고, 구원도 있을 리 없었다. 고통만 있었다.”
기자가 되고서도 한동안은 잊을 만하면 그의 책을 찾아 읽었다. 그러면서 알게 된 건 그가 부끄러움 때문에 글을 쓰기 시작했으나, 부끄러움 때문에 더는 글을 쓰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이런 사정을 제목만 보아서는 공상과학 장르물로 오해받기 쉬운 두번째 단편집에서 담담하게 고백했다.
“나도 모르게 작가가 되었으나 나는 글을 쓰지 않기로 했다. 작가라고 꼭 글을 써야 한다는 법은 없다. 나는 없는 법에 감사하며 우리가 사는 도시에 낯선 무엇이 기어들어와 사람들의 본성에 상처를 입히며 자리를 잡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
잊고 지내던 그의 문장들이 나를 다시 찾아온 건 법무장관 부부의 자녀 입시부정 의혹으로 나라 전체가 떠들썩했던 3년 전 여름이다. 바르고 단정해 보이던 그 부부가 딸에게 만들어준 인위적 행운의 비윤리성에 관해 내가 이야기하자, 그를 두둔하는 선배 하나는 인지상정이란 값싼 보편율을 앞세워 괴롭기 짝이 없는 추체험을 내게 요구했다. 네가 그 사람 처지였으면 안 그럴 자신이 있겠냐는 게 그의 변론 요지였다. 한때는 선배 역시 유복했던 제 처지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에 어둡고 낮은 곳으로 제 존재를 옮겨 가려 했었다는 기억이 나를 더 우울하게 했다.
그날 저녁 펼쳐 든 건 마흔을 갓 넘긴 작가가 “우리가 지어온 죄에 대해 말하고 싶다”며 강원도 탄광촌에 머물며 쓴 산문집이었다. 문장 몇개가 송곳이 되어 가슴을 후볐다. “그들은 좋은 말을 수없이 골라 했다. 그러나 그들이 다음에 한 일을 우리는 결코 잊을 수 없다. 그들이 한 많은 말은 간단히 다음 몇마디로 요약할 수 있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드디어, 우리가 죄지을 차례가 되었다!’”
몇번의 선거가 있었고, 정권의 주인 따라 세상도 바뀌었다. 그러나 넘치는 건 팽팽하게 날이 선 칼의 언어뿐, 더듬거리는 부끄러움의 말은 어디서도 들려오지 않는다. 공의를 소리 높여 외치는 이 나라 정의파들은 여전히 제 허물은 부끄러워 않고 남 잘못만 미워하는 탓이다.
작가는 마흔한살에 낸 단편집의 글 하나를 이런 문장들로 매듭지었다. ‘부끄러움’이란 단편이다. “많은 사람들이 난장이의 이야기를 읽고 눈물이 나 혼났다고 말했다. 그들의 목소리는 한결같이 경쾌하게 들렸다. 말할 수 없이 창피하고, 말할 수 없이 슬픈 일이었다. 나는 스스로 하늘을 보지 않기로 했다.”
성탄절 저녁, 스스로 보지 않겠다던 하늘로 홀연히 떠나버린 그의 안식을, 이 보잘것없는 글로써 대신 빌어본다.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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