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11의 목소리] 사서 고생하니? 사서라서 고생해요!
윤희(가명) | 서울시 공공도서관 사서
선생님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이 호칭을 꺼리시는 분들도 계셔서요. 저희끼리도 오래 함께하지 못해 조심스레 서로의 호칭이 이렇게 굳습니다. 함께 파손된 책을 고치고, 분류방식에 따라 정리하고, 분실된 책을 찾고, 어떤 주제로 책을 전시할지 결정하다가 계약기간이 만료되더라고요. 경력을 인정받진 못해도 좁은 업계니 어디선가 다시 마주치길 희망하며 저희는 헤어집니다. 도서관들이 정규직 자리를 계약직으로 메꾸면서, 새로운 사람과 합을 맞추는 일이 익숙해질 즈음 또 헤어지는 반복이 저희를 소모시키는 것이지요.
그뿐이 아닙니다. 도서관끼리 책을 주고받는 상호대차 서비스로 옮겨야 할 책들은 늘어나는데, 쌓고 처리하고 배달하는 인력은 왜 점점 줄어드는 걸까요. 안전 경각심이 높아졌으니 교육을 받으라면서 업무 데스크는 비우지 말라니. 교육장 출석부에 이름만 적고 돌아오는 일은 안전에서 더욱 멀어지는 일 아닌가요?
저희 서비스는 실패했습니다. 코로나19로 비대면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난생처음 유튜브와 줌, 구글 미트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에스엔에스(SNS) 활동도 시작했어요. 부분 개관을 하고 소독한 책들을 출입문 앞에서 대출하고, 방역시간을 정해 무거운 소독기기를 들고 피부가 따끔거리고 눈이 시린데도 소독약을 뿌리기도 했죠. 물론 이용자분들이 오시기 전에는 꼭 환기했어요. 도서관이 50평이든 100평이든, 단독건물이든 아니든 인력이 없으니 서툴러도 주차장 관리와 화장실 청소도 합니다. 그래도 왜 제대로 된 서비스를 안해주냐는 이용자분들이 있어요. 저희는 답하죠. “이용자분께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 문자 알림이 안 왔다고 이태원 참사에 비유하는 분도 있습니다.
저희는 전화 및 방문 응대 서비스 지침에 따라 근무 평가를 받습니다. 저는 이게 참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어요. 아무리 바빠도 전화벨이 3번 울리기 전에 받아야 하고, 미소가 느껴지는 공손한 어투로 응대하며, 이용자의 말을 먼저 끊으면 감점을 받으니까요. 그런데 데스크에서 이용자 문의에 답하며 대출·반납 처리하고, 책을 분류하는데 전화벨이 울려 수화기를 들어 한쪽 어깨에 끼운 채 통화하면 솔직히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데스크에 앉아 편하게 대출·반납만 하는 공무원이라는 오해도 여전해요. 하지만 우리는 공무원도 아니고, 모욕성 발언과 집요한 괴롭힘, 성희롱 등의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이직하거나 퇴사하는 경우도 꽤 있답니다. 다른 사람 회원증을 도용해 계속해서 예약자 이용 자리를 독점 사용하신 분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이용하시면 안 됩니다’라며 업무기준에 따라 주의를 준 동료에게, 그 분은 ‘그럼 내 주식은 어디서 확인하느냐’ ‘지금 확인 못 해서 주식 떨어지면 책임질 수 있느냐’며 되레 강압적으로 나오더군요. 손이 떨리며 경찰을 부를까 고민했지만, 상황을 크게 키워 재단이나 구청에 민원이 들어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저희 선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합니다. 결국 상급자에게 응대를 넘기고 민원인에게 사과한 뒤 경위서를 작성했습니다. 예민한 이용자분 심기를 거스르지 않도록 잘 피하면서 더 친절하게 응대하고 더 조심했어야 했대요. 두근대는 심장을 가라앉힐 휴게공간도 제대로 없어 도망칠 곳 없는 저희는 조용히 서로를 다독이면서 그분이 다시 안 그러시길 바라는 수밖에요.
물론 악성 민원에 시달리는 저희를 보고 힘내라고 응원해주시는 분들도 있고, 먼저 밝게 인사해주시는 분들도 있어요. 누군가 던지고 간 책을 주워서 북트럭에 올려주시는 분도 계십니다. 어린이가 손 그림을 그려 건네주거나, 청소년이 돼 저희를 알아보고 인사하는 경우도 있고요. 도서관이 뭐 하는 곳인지 실무를 모르는 상사, 협업이 안 되는 동료를 만나 힘들다가도 오히려 이용자분들 덕분에 울고 웃네요. 이런 잠깐의 순간들이 이 생활의 숨통을 틔워줍니다.
무거운 책을 옮기거나 쪼그려 앉기를 자주 하다가 관절과 허리, 어깨에 무리가 가도, 높은 곳에 책을 꽂다가 발판에서 떨어져 다쳐도 잘못은 개인의 몫입니다. 산업재해 신청도 안 된다니 조심하고 서로 건강을 챙겨주기로 합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죄송합니다, 사과드립니다, 다른 궁금한 점은 없으십니까…. 사서는 책과 정보를 제공하는 서비스 뒤에 존재하는 그림자 같아요. 사람이 아닌 그림자여서일까요? 가끔은 제가 관내 분실된 도서가 된 듯한 기분을 느껴요. 분명 도서관 안 어딘가에는 있다고 나오는데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이는 책 말이에요. 누군가 우리의 책등을 쓸어주고 펼쳐서 읽어봐 주길 기대하고 있어요.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4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단독] 전장연 수사, 북송사건 맡은 검찰 공안부서가 한다
- “전장연에 ****원 이체”…오세훈 ‘무관용’ 언급 뒤 후원금 연대
- 삼성 공장 13년 일하고 암 진단…산재 신청 앞두고 끝내 숨졌다
- 상임위 올라갔는데 고작 1.1%만…그들이 지하철 막아선 이유
-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은 허리 [김은형의 너도 늙는다]
- 불붙은 ‘5·18 삭제’ 논란…교육부가 새 교육과정 기조 흔들었다
- 연말정산 서류제출 ‘동의’만 하면 끝, 달라진 공제는?
- ‘비평’ 버린 창비…장강명 원고 수정 요구, 홍보 축소 의혹까지
- 10년 부은 청약통장도 깬다, 금리 7% ‘마통’ 못 견뎌
- ‘전주여상’ 되고 싶은 남녀공학…교육청, 학교명 변경 추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