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제균 감독 "안중근·독립운동가들 향한 부채의식에 가슴 미어져"[인터뷰①]

뮤지컬 영화 '영웅'으로 8년 만에 복귀 
"영혼 갈아 넣고 안중근 역 소화한 정성화에 감사해"
"김고은 대체할 배우, 어디에도 없었다"

영화 '영웅'을 연출한 윤제균 감독 /사진제공=CJ ENM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쌍천만 감독' 윤제균이 영화 '영웅'으로 지난 2014년 개봉한 '국제시장' 이후 8년 만에 돌아왔다. 제작 시기부터 따지자면 오리지널 뮤지컬 '영웅'을 영화화하겠다고 마음 먹은 때로부터 딱 10년이 걸렸다. '영웅'은 1909년 10월,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뒤 일본 법정의 사형 판결을 받고 순국한 안중근 의사가 거사를 준비하던 때부터 죽음을 맞이하던 순간까지, 잊을 수 없는 마지막 1년을 그린 작품. 

지난달 21일 개봉한 '영웅'은 개봉 13일 만인 4일 현재 전국 180만명의 누적 관객수를 기록하며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유독 한국 시장에서 흥행이 어려운 장르로 꼽히는 뮤지컬 영화라는 제약과 '아바타:물의 길'이라는 초강력 상대를 만나 개봉 초반 다소 고전했지만 사회 전반에 안중근과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관심에 불을 지피며 흥행 이상의 화두를 던지고 있다. 초등학생부터 40~50대 성인들까지 '영웅' '누가 죄인인가' '장부가' '십자가 앞에서' '사랑하는 내 아들 도마' 등 대표 넘버들을 흥얼거리고 유튜브에는 안중근과 영화 '영웅'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오락 영화 한편 보러 가벼운 마음으로 극장에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영화 '영웅'에 접근했다가는 뒷통수를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오랜 시간 다시 떠올려도 여전할 깊은 여운과 묵직한 조국애, 가슴 밑바닥부터 차오르는 슬픔 등의 감정을 경험하고 싶다면 영화 '영웅'은 이번 겨울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영화 '영웅'을 연출한 윤제균 감독 /사진제공=CJ ENM

지난달 20일 서울 삼청동에서 윤제균 감독을 만났다. 윤 감독은 "안중근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부채의식이 너무 커서 슬펐다. 찍으며 가슴이 미어지더라. 너무 죄송하고 너무 위대해서 슬펐다. 저 시대에 태어났다면 안중근처럼 살 수 있었을까? 죽었다 깨나도 못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 뮤지컬 영화 불모지인 한국에서 한국 오리지널 뮤지컬로 영화를 만드는 일은 너무 어려운 도전 아닌가. 

▶ 많은 분들께 도전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냐는 질문을 들었지만 그런 두려움은 없다. 제 인생을 되돌아 봤을 때 샐러리맨이 쌍천만 감독이 되는 것이 어렵겠나, 쌍천만 감독이 뮤지컬 영화를 하는 게 어렵겠나. 저는 평범한 샐러리맨에서 영화 감독에 도전해 이 자리까지 왔다. 제 인생을 돌아보면 윤제균의 인생 키워드는 끊임 없는 도전이다. 정말 감사한 쌍천만 감독이라는 수식어 특히 그 쌍천만을 만들어 준 두 작품인 '해운대' '국제시장' 이 작품들도 키워드는 도전이었다.

- 더 쉬운 길도 있었을 텐데 어려운 길을 택한 이유는. 

▶ 감독을 안해본 분들은 이해를 못하실 수도 있다. 제작과 감독의 큰 차이이기도 하다. 제작은 상업적인 것이 크게 작용한다. 프로듀서에게는 상업적 성공이 중요하다. 감독은 조금 다른 것 같다. 감독은 스스로에게 필이 꽂히지 않으면 못한다. 평양 감사도 제 하기 싫으면 못한다는 속담이 있잖나. 상업적으로 뻔히 가능한 작품도 감독에게 필이 안꽂히면 하지 못한다. 남들이 모두 안된다고 해도 감독이 필이 꽂히면 할 수 밖에 없다. 

- 제작자일 때와 감독일 때 선택의 전혀 다른 선택을 한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 많은 사람들이 내게 질문한다. 감독으로서 다음 행보를 묻는다. 다음 작품은 무엇이냐, 계획이 뭐냐고 묻는다. 하지만 인생을 살아오면서 느낀 것이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더라. 제 좌우명은 '처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자'이다. 처해진 상황에서 내가 필이 꽂힐 때 그 때 할 뿐이다. 기획 개발 단계부터 시나리오를 쓰고 촬영까지 짧게 1년, 길면 3~5년 걸리는데 어떻게 필도 안꽂히는 걸 하나. 그건 지옥이다. 하고 싶은 작품을 하게 되면 몸은 힘들지만 행복하다. 창작자로서 행복한 고통이다. 단지 뮤지컬 영화에 꽂혔고 그래서 만들었고 내겐 행복한 시간이었다. 

- 이번 겨울 '영웅'을 봐야 하는 이유는 뭘까. 

▶ 극중 안중근의 대사 중 '우리가 힘들지 않았던 적이 단 한번이라도 있었소'라는 말이 있다. 사실 늘 힘들었지만 올 겨울은 참 힘든 것 같다. 경제적으로도 힘들고 엔데믹도 아직 오지 않았다. 2023년에 대해 부정적 신호들이 더 많다. 이런 시기에 지금보다 훨씬 힘든 시절을 살았던 한 평범한 인간 안중근을 보면서 위안과 위로를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 사실 러닝타임 내내 가슴을 울린 질문이 '저 시대에 태어났다면 어땠을까'였다. 

▶ 제가 그 시대에 태어났더라도 그렇게 못했을 것 같다. 안중근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부채의식이 너무 커서 슬펐다. 찍으며 가슴이 미어지더라. 너무 죄송하고 너무 위대해서 슬펐다. 저 시대에 태어났다면 안중근처럼 살 수 있었을까? 죽었다 깨나도 못했을 것 같다. 그 길을 가신 분들에 대한 부채 의식이 너무 컸다. 

- 원작 뮤지컬 '영웅'과 달리 영화화 과정에서의 화두가 있었다면. 

▶ 관통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꼭 놓치기 싫었던 것이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에 대한 부분이었다. 제 어머니가 2017년 6월에 돌아가셨다. 어머니를 보내고 얼마 안된 시기이기 때문일 수도 있고, 개인적 감정이 치우쳤을 수도 있는데 뮤지컬 '영웅'을 봤을 때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의 대결이 아니라 서브 플롯에서의 어머니와 안중근의 이야기가 깊게 와닿았다. 제가 아빠 입장이기는 하지만 자식이 저런 일을 당했을 때 조마리아 여사처럼 저럴 수 있었을까. 엄마가 자식에게 죽으라고 이야기 하잖나. 자식에게 죽으라고 편지를 써보내놓고 한번만 안아보고 싶다고 우는 엄마의 마음이 저를 흔들었다. 뮤지컬을 볼 당시 조마리아 여사가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 무너지더라. 뮤지컬 '영웅'이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의 이야기만으로 된 것이었다면 영화화를 하지 않았을 거다. 어머니와의 이야기가 제 마음을 뒤흔들더라. 

- 관객들의 폭풍 오열을 부르는 장면도 어머니 조마리아가 "내 아들, 나의 사랑하는 도마야. 떠나갈 시간이 왔구나"라고 목놓아 흐느끼는 장면이다. 

▶ 영화 '영웅'은 안중근과 어머니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그게 아니었다면 안중근과 이토의 첨예한 사상 대립을 강조하지 않았을까. 안중근의 노래 속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는 내용도 엄마에 대한 것이다. 왜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울 때 아들이나 딸이나 어머니를 찾을까. 안중근이 부르는 넘버 '영웅'에 '타국의 태양, 광활한 대지~(중략) 어머니, 어머니 서글피 우시던 모습'의 가사에 나오지 않나. 메인 타이틀곡에 어머니 이야기가 나온다. 또 거사 당일 새벽 안중근이 총과 실탄을 놓고 거사를 결심하는 장면에서도 '십자가 앞에서'라는 넘버를 부른다. 차가운 여인숙에 꿇어 앉아 하나님 앞에서 부르는 노래인데 "남겨질 불쌍한 나의 가족, 가슴에 나를 묻을 어머니, 그들 기억 속에서 부디 제가 잊혀지게 하소서"라고 부르지 않나. 장면들을 수백번 보면서 편집을 하다 보니 영화속 넘버들을 다 외우게 됐다. 아들로서 자식의 마음, 아버지로서 가장의 마음이 다 담겨있다. 

- 조마리아의 단독 가창신에서 나문희 배우에게 특별히 주문한 내용이 있나. 

▶ 나문희 여사가 부르신 '사랑하는 내아들 도마'라는 곡이다. 그 촬영이 있기 며칠 전 인터넷에서 어떤 글을 봤다. 부모를 잃은 자식을 가리키는 단어는 고아 아닌가. 반대로 자식 잃은 부모를 가리키는 단어는 전세계 어디에도 없다더라. 그 슬픔의 깊이가 너무 크기에 한 단어로 단정할 수 없다더라. 딱 그 심정으로 나문희 선생님 노래 부르는 장면을 찍었다. 내 영화를 보신 분들은 엄마의 이야기라는 걸 다 이해하시더라. 윤제균이 왜 "'영웅'은 안중근과 어머니의 이야기"라고 하시는지 다 아실 거다.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msj@sportshank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