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 100년 전 새해 덕담 "건강한 신체로 노동 잘 하시오"

2023. 1. 4.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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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흘러가고 희망찬 새해가 밝았다.

"시내의 전차는 가득가득히 사람을 싣고 운전을 분주히 하는데 그 전차의 승객 중에는 그 반수 이상이 모두 남녀 학생들이며 그들은 모두 고운 얼굴에 고운 단장을 하고 선생 집을 찾아 세배하러 다니기에 매우 분주한 모양이다. 그리하고 시내를 남북으로 나누어 남편(南便)에 사는 일본 사람들 시가(市街)에는 모두 점포의 문을 굳게 닫고 처마 끝에는 솔가지와 왕새끼로 단장하였는데, (중략) 과연 일본 사람들에게는 즐거운 새해가 온 듯 하였다. 그러나 북쪽으로 떨어져 있는 조선 사람들의 시가에는 점포마다 문을 열어놓고 오히려 어제에도 손님이 올까 하여 떨고 있는데, 그 모양이 매우 쓸쓸해 보이며, (중략) 조선 사람은 아직까지 음력을 지키는 습관이 있어서 양력 새해는 그리 중요하게 보지 않지마는, 어쨌든 조선 사람은 경제적으로 또는 여러 가지 방면으로 고통을 받는 것은 이 새해의 광경 하나만을 볼지라도 가히 알겠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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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종훈 19세기발전소 대표·아키비스트

창덕궁 신년행사 순종 행차에 일동경례로 축하 일본인 남촌은 왁자지껄, 조선인 북촌은 쓸쓸 상해임시정부도 신년회 열고 '독립만세' 삼창 다사다난은 살면서 인고하며 겪어야 하는 것

한 해가 흘러가고 희망찬 새해가 밝았다. 작년보다 사고도 줄어들고 더 행복한 한 해가 되었으면 하는게 모든 이의 바람일 것이다. 지금부터 100년 전 새해는 어땠을까. 당시 신문에 나타난 1923년 계해년(癸亥年) 새해 모습을 살펴본다.

왕(순종)이 계신 창덕궁 신년 축하 연회부터 시작해본다. "창덕궁 신년 축하 절차는 1일 오전 9시에 이왕직(李王職) 장관을 위시하여 고등관에 상당한 자는 인정전(仁政殿) 동행각(東行閣)에 참입(參入)하였다가 왕 전하께서 행차하심을 기다려서 일동 경례로 축하의 뜻을 표하고, 2일에는 11시경에 총독, 총감, 군사령관이 입궁하여 희정당(熙政堂)에서 축하를 올리고 6일에는 친척 귀족을 부르시어 신년 연회를 베푸신다더라." (1923년 1월 1일자 매일신보)

그럼 일반 백성들의 신년은 어떠했을까. 1월 2일자 동아일보에 '세배 다니는 게다(일본 나막신) 소리만 요란, 북촌(北村)의 거리에는 설인 듯 아닌 듯'이란 제목의 기사가 실려 있다. "시내의 전차는 가득가득히 사람을 싣고 운전을 분주히 하는데 그 전차의 승객 중에는 그 반수 이상이 모두 남녀 학생들이며 그들은 모두 고운 얼굴에 고운 단장을 하고 선생 집을 찾아 세배하러 다니기에 매우 분주한 모양이다. 그리하고 시내를 남북으로 나누어 남편(南便)에 사는 일본 사람들 시가(市街)에는 모두 점포의 문을 굳게 닫고 처마 끝에는 솔가지와 왕새끼로 단장하였는데, (중략) 과연 일본 사람들에게는 즐거운 새해가 온 듯 하였다. 그러나 북쪽으로 떨어져 있는 조선 사람들의 시가에는 점포마다 문을 열어놓고 오히려 어제에도 손님이 올까 하여 떨고 있는데, 그 모양이 매우 쓸쓸해 보이며, (중략) 조선 사람은 아직까지 음력을 지키는 습관이 있어서 양력 새해는 그리 중요하게 보지 않지마는, 어쨌든 조선 사람은 경제적으로 또는 여러 가지 방면으로 고통을 받는 것은 이 새해의 광경 하나만을 볼지라도 가히 알겠더라."

새해를 맞으면 모두 새로운 희망과 각오를 이야기하기 마련이다. '새해에는'이란 제목의 1월 1일자 조선일보 기사에는 다양한 덕담들이 담겨 있어 눈길을 끈다. 그 덕담들을 소개해 본다. ▶새해에는 새 부자 되고 아들 낳고 화락한 생활을 하시오. ▶새해에는 부자보다도 자유와 평등 권리를 보유하시오. ▶새해에는 남의 압박은 모두 태평양으로 몰아 보내시오. ▶새해에는 백곡(百穀)이 풍등(豊登)하고 소작료도 감(減)하여 내시오. ▶새해에는 아무 질병 없이 건강한 신체로 노동 잘 하시오. ▶새해에는 새집 짓고 평화한 가정에서 재미 많이 보시오.

재미있는 당부의 기사도 눈에 띈다. '요리 집 많이 다닌 기생에게 연말에 표창을 한다'라는 제목의 1923년 1월 3일자 매일신보 기사다. "각 권번(券番)에서는 기생들에게 1년 동안에 요리 집을 많이 다닌 기생에게는 상품을 준다던가, 요리 집 많이 다닌 기생을 표창하는 반면에는 상당한 청년들이 부모를 속여 애를 써서 모은 돈을 허비한 사람에게는 상품을 주지 않는지? 화류계에 노는 청년들아, 새해에는 좀 정신차리는 것이 어떠할까. 새해에 좋은 사람이 되기를 비는 바이다."

새해 첫 날 신문에 모두 보이는 기사가 경성역(지금의 서울역)에 관한 기사다. "오늘부터 남대문 정거장은 경성역(京城驛)이 되었다. 광무 원년(光武元年; 1897년)에 미국 사람 '모루스'가 공사를 하다가 그 후 일본 사람에게 넘겨 1899년 7월 8일에 조선 천지에서 처음으로 기차가 기적 소리를 내던 날부터 남대문 정거장이었다. 그 후 어느덧 24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이 동안에 별별 희비극을 보았으리라. 그러나 남대문 정거장이란 이름은 이제 경성역이란 이름으로 여러 가지 희비극을 보게 되리라." (1923년 1월 1일자 동아일보)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것은 멀리 상해에 있는 조선 동포들 역시 마찬가지라. 상해 동포들의 송년회와 임시정부의 신년 축하식 광경도 당시 신문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하늘과 같이 생각되는 만리타국에서 속에 품은 바를 이루지 못하고 매양 고국 강산을 멀리 바라보며 집을 생각하고, 달밤에 어정거리기와 아우를 생각하고 구름만 바라보는 우리 조선 남자로 세말(世末)을 당함에 매양 가절(佳節)을 만나면 부모를 생각하는 회포(懷抱)가 더 하다는 옛말을 친히 당하게 된바 그 비회(悲懷)가 비할 곳이 없는지라. 상해에 유학하는 우리 청년 동포 제씨의 발기로 지난 31일 오후 7시에 당지(當地) 배달공사 안에서 망년회를 열고 모든 명사의 감상 연설과 유학생 중 모모 씨의 재미스러운 빠올잉(바이올린) 연주와 창가(唱歌)의 여흥이 있어 자못 울적한 회를 위로하였다더라." (1923년 1월 3일자 조선일보)

"상해에 있는 임시정부에서는 1월 원조 아침 10시에 그 전과 같이 법조계(法租界; 프랑스 조계)에서 신년 연회를 열고 일반 직원과 독립당 중요 인사들을 청하여 축하식을 거행하였는데, 태극기 앞에서 일동이 경례를 하고 국무총리 노백린(盧伯麟)씨의 축하사가 있은 후, 외교총장 조용은(趙鏞殷)씨의 연설이 있었고 일동이 기념으로 사진을 박은 뒤에 독립 만세를 세 번 부르고 폐식(閉式)하였다더라." (1923년 1월 3일자 조선일보)

연말이 되면 늘 하는 말이,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올 한 해가 지나가고…"다. '다사다난'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당연히 겪어야 하는 것인가 보다. 1923년 1월 1일자 조선일보에 강영재(姜英才·13)의 글씨가 크게 실려 있다. 바로 '인고'(忍苦)라는 두 글자다. 그는 조선 3대 총독 사이토 마코토에 폭탄을 던진 후 체포되어 사형당한 '백발 투사' 강우규(姜宇奎) 의사의 손녀다. 13살 먹은 소녀의 눈에는 '삶이란 참아야 하는 것'이었던가 보다. 올 한 해도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모두가 참고 또 참으며 잘 견뎌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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