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국부펀드, 왕세자 '밀어붙이기식' 투자 지시로 갈등"
(서울=연합뉴스) 이도연 기자 = 사우디아라비아의 실세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막대한 자금을 거침없이 쏟아붓는 공격적인 투자 방식으로 인해 사우디 국부펀드 측과 갈등을 빚고 있다고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자신이 이끄는 자금 규모 6천억달러(약 726조원)의 국부펀드인 공공투자펀드(PIF)를 통해 과감한 투자를 벌이고 있으나, PIF의 금융 전문가들은 투자 위험을 관리하기 위해 제동을 걸고 있다는 것이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그간 다양한 산업을 발전시켜 석유 의존도를 낮추려는 경제 정책을 펼쳐왔다.
그의 관리 아래 PIF는 공격적인 해외 투자를 해 왔는데 PIF는 그가 새로운 투자 전략을 시작한 2017년 9월부터 2021년 말까지 연평균 12%의 수익을 올렸다고 밝혔다.
이는 PIF가 공개한 2014∼2016년 연평균 수익률인 3%를 크게 웃돌고 데이터 분석 회사 '글로벌 SWF'가 분석한 세계 국부펀드 평균 수익률 9%보다도 높은 수치다.
PIF는 2018년 전기차 스타트업 루시드에 38억달러(약 4조8천300억원)을 투자했다. PIF가 보유한 루시드 지분 60%의 가치는 현재 70억달러(약 8조8천900억원)에 달한다.
이와 함께 루시드는 사우디에 공장 건설을 시작했는데 이는 사우디 내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할 전망이다.
그러나 모든 투자가 성공했던 것은 아니다.
그의 관심으로 PIF는 전자상거래 업체 눈닷컴(Noon.com)에도 투자했는데, 이 회사는 지난 2년간 5억2천만달러(약 6천600억원)의 손실을 봤다.
2018년에는 무함마드 왕세자가 미국 스타트업 '매직 리프'의 증강현실(AR) 기기를 써본 뒤 PIF가 이 회사에 4억달러(약 5천83억원)를 투자했다. 매직리프 기업가치는 투자 당시에는 60억달러(약 7조6천200억원) 이상으로 평가됐으나, 2021년 기준 20억달러(약 2조5천400억원)로 쪼그라들었다.
특히 PIF가 일본 소프트뱅크와 함께 조성한 세계 최대 기술펀드인 비전펀드의 대규모 손실은 잘 알려졌다.
총 1천억달러(약 127조원)가 투자된 비전펀드는 초반에는 수익을 냈으나 이후 코로나19 여파 등으로 손실로 돌아섰다. PIF는 여기에 450억달러(약 57조2천억원)를 투자했다.
PIF는 자국 내 신규 기업 수십 곳과 부동산에 투자했으며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EPL) 축구팀 뉴캐슬 유나이티드 FC를 인수하고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 맞서는 LIV 골프를 출범시켰다.
무함마드 왕세자가 무리한 투자를 하려 할 때마다 PIF의 전문가 자문단은 이를 만류하려 했다고 WSJ은 전했다.
특히 코로나19 대유행(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 초 세계 주식 시장이 요동치자 무함마드 왕세자는 PIF에 주식 매수에 나서라고 압력을 넣었다.
PIF 이사회는 너무 위험하다고 반발했으나, 무함마드 왕세자의 아버지인 살만 빈 압둘아지즈 국왕까지 나서서 이를 무마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소식통에 따르면 PIF는 무함마드 왕세자의 신속한 투자 요구에 부응할 유동성 자산이 충분하지 않자 사우디 중앙은행 측을 설득해 수백억 달러를 받아냈다.
이렇게 확보한 자금으로 PIF는 주식 350억달러(약 44조5천억원) 어치를 매수했으며, 이는 이후 주가가 반등했을 때 490억달러(약 62조3천억원)까지 불어났었다.
PIF 금융 전문가들은 비전펀드 1호 투자의 실패를 이유로 들어 2019년 비전펀드 2호에 대한 왕세자의 투자를 만류했다.
당시 왕세자와 친분이 있던 손정의(일본명 손 마사요시) 소프트뱅크 회장은 현재 파산한 그린실 캐피털로부터 대출을 받아 사우디의 이슬람 성지 메카를 개발하는 데 400억달러(약 50조9천억원)를 투자하자는 제안을 했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이 제안에 흥미를 느꼈으나 결국 PIF 투자 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또 PIF는 자문단의 반대에도 왕세자의 주도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가 설립한 '어피니티 파트너스'에 20억달러(약 2조5천400억원)를 투자한 바 있다.
그러나 PIF는 변호인들을 통해 낸 성명에서 "이사회의 의사 결정이나 경영이 지나치게 왕세자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주장을 거부한다"고 밝히며 왕세자의 명령에 따른 투자가 실적을 내지 못했다는 지적을 부인했다.
사우디 왕실은 코멘트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dy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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