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시선] 지혜와 풍요가 절실한 202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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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 방학이 되면 늘 부산에서 진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장사에 바쁜 부모님은 외할머니에게 나와 동생, 두 형제를 맡겼다.
하지만 가끔 외할머니가 토끼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했다.
"곧 새끼를 낳을 건데 그걸 사람들이 보고 있으면 낳은 새끼를 물어 죽인다." 당시에는 외할머니가 하루 종일 토끼장에 붙어 있는 형제를 떼어 놓기 위한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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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마다 돌아오는 토끼해를 맞으면 그때 외할머니의 말이 떠오른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토끼가 마냥 귀엽고 온순하지만은 않다고 한다. 오히려 상당히 공격적이다. 예민해서 출산 때 스트레스를 받으면 실제 낳은 새끼를 물어 죽이는 경우도 있다. 물론 고전 우화소설 '별주부전'에서 '간을 볕에 말리려고 꺼내 놓고 왔다'며 위기에서 벗어난 것처럼 토끼는 영리하고 기민한 꾀돌이다. 이와 관련한 대표적인 고사성어가 교토삼굴(狡兎三窟)이다. 영리한 토끼는 세 개의 굴을 판다는 뜻이다. 초식동물로 천적이 많은 토끼는 실제 굴을 깊이 파는 것은 물론 비상구도 따로 만들어 놓는다고 한다.
2023년 계묘년(癸卯年)은 검은 토끼의 해다. 검은색은 지혜를, 토끼는 번성과 풍요를 상징한다. 올해 대한민국에 절실한 것들이다. 현재 우리나라를 둘러싼 대내외 환경은 그 어느 때보다 어둡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아직 이어지고 있고, 미국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자이언트스텝(한번에 0.75%p 금리인상)을 수차례 단행하며 글로벌 금융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세계의 공장이자 세계의 시장을 자처했던 중국은 코로나19에서 아직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지정학 리스크가 갈수록 커지고, 세계화의 종말은 빨라지고 있지만 수십년간 '세계의 경찰'을 자처해온 미국은 오히려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를 강화하고 있다. 눈치 없는 북한은 기다렸다는 듯이 새해 첫날부터 동해상으로 단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며 도발하고 있다. 현 상황을 이명박 정부 청와대에서 연설기록비서관을 했던 김영수 영남대 교수는 '역사의 휴일'(Holiday from History)은 끝났다는 말로 정의했다.
세상 밖은 이렇게 급박하게 돌아가는데 국내 정치권은 둘로 쪼개져 오히려 국민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국민이 낸 피 같은 세금을 자신들의 돈인 양 '지역구 예산 확보'라는 현수막을 걸며 생색내기에 한창이다.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우리나라의 저출산 현상은 정치권이 주는 스트레스로 인한 국민적 저항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우리나라는 국난 때마다 온 국민이 똘똘 뭉쳐 극복해 왔다. 부디 계묘년이 주는 지혜와 풍요를 받아 정치권부터 국난 극복에 앞장서주길 기대해 본다.
courage@fnnews.com 전용기 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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