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론직설] “구조 개혁 늦어지면 일본 쇠락 전철 밟을 것···설득의 리더십 절실”

정상범 수석 논설위원 2023. 1. 4.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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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찬 건전재정포럼 대표(전 건설교통부 장관)
-선거 없는 올해가 개혁 적기, 실행력에 개혁 성패 달려
-법과 원칙 바로 세우는 노동 개혁 최우선 과제로 삼아
-‘정부개혁실’ 등 공격적 기구 만들어 공공 수술 속도를
-세상에 없는 기술·서비스 무장 ‘퍼스트 무버’가 살 길
건설교통부 장관을 지낸 최종찬 건전재정포럼 대표가 4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구조 개혁이 성공하려면 구체적 실행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면서 “국민의 폭넓은 지지를 이끌어내는 설득과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성형주 기자
[서울경제]

올해 경제 위기의 강을 건너려면 구조 개혁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노동·교육·연금·공공 개혁 등을 통해 경제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꿔 성장 기조를 회복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대한민국의 미래와 미래 세대의 운명이 달린 개혁 작업에 속도를 내겠다고 강조했다. 건설교통부 장관을 지낸 최종찬 건전재정포럼 대표는 4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도 구조 개혁과 혁신을 외면하고 현상 유지에 안주한다면 쇠락한 일본의 전철을 밟게 된다”면서 “법과 원칙을 바로 세우는 노동 개혁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최 대표는 또 “산업구조 대전환기를 맞아 세상에 없는 기술과 서비스로 무장한 ‘퍼스트 무버(선도자)’로 거듭나야 글로벌 패권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새해 들어 경제 한파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의 여파로 올해 한국 경제는 1%대 성장에 머무를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발 금리 인상은 투자와 소비 위축을 초래해 저성장 시대의 장기화를 예고하고 있다. 미중 갈등과 우크라이나 전쟁은 글로벌 공급망을 위협하고 있다. 주력 산업인 반도체 경기마저 위축돼 수출 환경도 악화됐다. 이는 투자 위축과 고용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럴 때일수록 민간·시장 위주의 세밀한 정책 운용이 필요하다.

-지금은 동원 가능한 정책 수단이 많지 않은데.

△대외 여건이 어렵다 보니 정책 차원에서 대응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세계화가 후퇴하면 우리처럼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는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정부는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을 높여주는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해야 한다. 좋은 인력을 키우고 기업들이 마음껏 뛸 수 있도록 주변 환경을 계속 개선해줘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정치권의 각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권이 경제를 보는 근본 시각을 바꿔야 한다. 삼성전자의 경우 소액주주가 600만 명에 달하고 있어 법인세를 낮춰 배당이나 투자가 늘어나면 소액주주에게 혜택이 돌아간다. 이런데도 야당은 대기업이 잘되면 오너 등 일부만 혜택을 본다는 낡은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24개국이 2008년 이후 법인세를 낮춘 이유가 무엇이겠나. 법인세는 국가 간 경쟁에서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투자를 유치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다. 우리 기업들이 국내 투자를 줄이는 대신 줄곧 해외로 빠져나가는 이유를 곱씹어봐야 한다.

-윤 대통령은 새해 벽두부터 구조 개혁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데.

△국가가 발전하려면 기업도 정부도 끊임없이 혁신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노동 개혁이다. 세계 최악 수준의 노동 경직성은 투자와 일자리 창출의 최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생산 라인을 바꾸려고 해도 노조와 협의해야 하고 전기자동차도 노조의 반대로 마음대로 만들지 못하니 누가 선뜻 투자에 나설 수 있겠는가.

-노동 개혁의 핵심은 무엇인가.

△노동 개혁은 고용 시장 유연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대기업과 공공 부문의 기득권 노조가 개혁을 거부하면서 그 피해는 비정규직과 청년들이 떠안고 있다. 획일적인 주 52시간 근로제를 유연하게 바꾸고 임금구조를 서둘러 개편해야 한다. 산업 현장에 법과 원칙을 바로 세우는 것이야말로 돈 안 들이고 경제를 살리는 방법이다. 건설사 사장을 만났더니 노조에서 인력 채용은 물론 임금 인상까지 멋대로 요구한다고 하소연하더라. 한마디로 무법천지다. 노동 개혁은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한 최우선 과제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정부에서 노조의 회계 투명성 문제를 제기한 것은 아주 적절한 조치다.

-연금 개혁도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표를 의식하느라 역대 정부 가운데 유일하게 연금 개혁에 나서지 않았다. 지금 구조로는 2055년이면 연금 고갈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하루빨리 적게 내고 많이 받는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건강보험 문제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1990년대 중반만 해도 노인 인구 비중이 16~17%에 머물렀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부채 비율도 60%로 현재의 한국과 비슷했다. 하지만 경기 부양책을 남발하고 규제 완화에 미온적으로 대응했다. 그러다 보니 일본의 GDP 대비 국가 부채 비율은 지난해 270% 수준까지 치솟았다. 우리도 구조 개혁과 혁신을 외면하고 현상 유지에 안주한다면 쇠락한 일본의 전철을 밟게 된다.

-방만하게 운용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 문제도 심각한데.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에 따라 내국세의 20.7%를 시도 교육청에 내려보내는 구조는 잘못됐다. 경제 규모가 커질수록 교부금 액수도 늘어나는데 학생 수는 줄어들다 보니 돈이 넘쳐나게 마련이다. 교육청이 학생들에게 태블릿PC를 지급하고 수학여행비를 지원하는 데다 교복·체육복도 나눠준다고 하더라. 반면 대학은 14년째 등록금 동결에 묶여 황폐화의 길로 가고 있다. 유초중등교육에 필요한 만큼만 지원하고 나머지를 대학이나 보육 시설로 돌리는 방안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공공 부문 개혁이 기대만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과거 김대중 정부 시절 4대 개혁 차원에서 기획예산처에 ‘정부개혁실’을 설치했다. 지금이야말로 이런 공격적 기구 설치를 검토할 때다. 공공 부문도 시대 변화를 반영해 경쟁력이 없는 곳은 통폐합하거나 민영화해야 한다. 공공 기관의 효율성은 바로 국민 세금과 직결된다. 지난 정부에서 공기업 평가 지침에 사회적 기여도를 높이고 수익성 배점을 낮추는 바람에 공기업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더 신속하고 과감한 개혁 조치가 뒤따라야 마땅하다.

-저출산 문제도 발등의 불이다.

△문제의 심각성에 비해 정부 대책이 너무 미온적이다. 지난해 합계 출산율이 0.8명대로 떨어지면서 인구 자연 감소는 1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고령 인구 비율은 2025년 20%를 기록하고 2045년이면 37%에 달해 세계 최고령 국가로 올라선다. 연금 고갈과 국가 부채 급증 문제 등을 생각하면 끔찍할 정도다. 이런 와중에 기초연금 40만 원을 전체 노인의 70%에게 지급하는 정책은 사실상 현금 퍼주기로 미래 세대에 큰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 월 30만 원씩 지원하는 아동수당과의 형평성 문제도 따져봐야 한다. 이제라도 정부가 불필요한 재정지출을 줄이고 보육 시설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등 보육 부담을 낮춰줘야 한다.

-우리 경제는 4차 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산업구조 대전환기를 맞고 있다.

△이제는 ‘패스트 팔로어(빠른 추격자)’에서 ‘퍼스트 무버’로 나아가야 한다. 기존의 추격자 역할에서 벗어나 세상에 없는 기술과 서비스를 내놓아 시장 주도권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자면 창의성과 유연성을 갖춰야 한다. 화석처럼 굳어진 제도와 관행으로는 국가 간의 치열한 전쟁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혁명보다 어렵다는 개혁을 성공시키려면 지도자의 리더십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개혁은 진짜 어렵다. 오죽하면 달리는 차의 바퀴를 바꾸는 것에 비유하겠는가. 따라서 정부가 솔선수범해야 한다. 특히 국가 지도자가 설득과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나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를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 대처 전 총리는 석탄노조와 싸워 ‘영국병’을 치유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슈뢰더 전 총리는 개혁 추진 이후 정권을 빼앗기지 않았나. 우리도 과감한 개혁을 완수해야 대한민국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국민의 폭넓은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개혁의 필요성을 널리 알리고 공감을 끌어내는 설득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전국 단위 선거가 없는 올해 상반기가 개혁의 적기라는 얘기가 있는데.

△하반기로 갈수록 내년 4월 총선과 맞물려 개혁 동력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당위성만 갖고 개혁을 밀어붙이지 말고 치밀한 전략을 세워 추진해야 한다. 불쑥 로드맵만 던져놓고 기득권층에서 반발하면 바로 물러서는 기존 방식으로는 안 된다. 사전에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찬성과 반대 입장을 따져보고 설득 방법, 보완 대책 등 대응책을 꼼꼼하게 마련해야 한다. 기득권 계층의 거센 저항에 막혀 주저앉는 과거의 잘못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부동산 시장이 경제 위기의 진원지로 꼽히고 있는데.

△지난 정부는 반(反)시장 부동산 정책으로 일관해왔다. 특히 임대 사업자 정책처럼 국민의 뒤통수를 치는 정책은 잘못된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정부 정책을 믿고 따른 사람이 손해를 보게 해서는 안 된다는 대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현 정부가 나름 노력하고 있지만 시장 원리에 맞춰 규제를 더 많이 풀어야 한다. 보유세를 높이고 거래세는 낮추는 게 맞는 방향이다. 징벌적 규제를 과감히 풀어 부동산 경착륙을 막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

-복합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경제주체들의 비상한 각오가 절실한데.

△가장 중요한 것은 미래를 위한 준비다. 최근 여야 정치권의 공방을 보면 과연 미래를 생각하는지 의문을 갖게 된다.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도 단순한 책임 추궁이 아니라 재발 방지를 위한 시스템 개혁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국가 흥망은 불합리한 제도의 혁신 여부에 달려 있다. 지금은 미래를 길게 내다보면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할 때다.

◆He is···

1950년 강원 강릉에서 태어나 경복고와 서울대 무역학과,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1971년 행정 고시 10회에 최연소로 합격해 경제기획원 공정거래총괄과장·경제기획국장, 재정경제원 경제정책국장 등을 거쳐 조달청 차장, 기획예산처 차관, 대통령 정책기획수석비서관 등을 지냈다. 참여정부 시절 초대 건설교통부 장관을 마지막으로 공직에서 물러난 뒤 건전재정포럼 대표와 선진사회만들기연대 공동대표 등을 맡아 활동해왔다. 저서로는 ‘최종찬의 신국가개조론’ 등이 있다.

정상범 수석 논설위원 ssa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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