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9·19 군사합의’ 효력정지 검토 지시, 섣부르고 위험하다

한겨레 2023. 1. 4.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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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4일 "북한이 다시 우리 영토를 침범하는 도발을 일으키면 9·19 남북 군사합의의 효력 정지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북한의 추가 '영토 침범'을 가정한 '검토' 지시라서 당장 합의 파기 절차를 밟는 건 아니지만, 애초 남북 간 합의의 의미가 우발적인 확전 방지에 있음을 고려할 때 섣부르고 위험한 발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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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무인기]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4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북한의 추가 영공 침범 시 9·19 남북 군사합의의 효력 정지를 검토하라”는 지시를 했다고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4일 “북한이 다시 우리 영토를 침범하는 도발을 일으키면 9·19 남북 군사합의의 효력 정지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북한의 추가 ‘영토 침범’을 가정한 ‘검토’ 지시라서 당장 합의 파기 절차를 밟는 건 아니지만, 애초 남북 간 합의의 의미가 우발적인 확전 방지에 있음을 고려할 때 섣부르고 위험한 발언이다. 새해 초부터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 윤 대통령이 연일 거칠고 강한 수위의 발언으로 맞서며, 한반도에서 우발적 충돌 위험을 높이는 상황이 몹시 우려스럽다.

2018년 제3차 남북정상회담과 9·19 평양공동선언의 부속합의서로 작성된 군사합의는 “지상과 해상, 공중 등 모든 공간에서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 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명시했다. 그럼에도 북한은 윤석열 정부 출범 뒤 마치 인내심을 시험하듯 이 합의를 위반해, 수많은 도발을 자행해온 것이 사실이다. 지난해 10월 동·서해상 북방한계선(NLL) 북방 해상 완충구역 안으로 해안포 사격을 한 이래 모두 15건에 이른다. 특히 지난달 26일 소형 무인기 5대를 군사분계선(MDL) 이남으로 침투시켜 서울 상공까지 휘젓고 다닌 사례는 합의를 대놓고 무시한 것이다. 윤 대통령의 지시는 이 무인기 사태에서 비롯된 충격과 그 여파에 따른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9·19 군사합의’의 의미와 효과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합의는 접경 지역에서 확전 방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사소하고 우발적인 충돌이 국지전이나 전면전으로 번지지 않도록 하는 일종의 안전장치인 것이다. 북한이 먼저 합의를 무력화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 이상의 맞대응을 하게 되면 자칫 명분도 잃고 실익도 놓칠 수 있다. 지금은 합의라는 기준이 있기에 북한의 위반을 비판하고 준수를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지난해 말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북한이 여러 차례 위반했다고 해서 우리가 먼저 파기를 언급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말한 바 있다.

지금은 대통령이 “일전 불사의 결기”, “보복과 응징”을 외치는 대신 더 큰 인내심을 갖고 북한의 합의 준수를 강력히 요구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설령 그 효과가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해도, 합의라는 안전장치를 우리가 먼저 걷어냄으로써 지금보다 더 위험한 상황을 자초할 이유는 없다. 일부 보수층이 강경 대응을 요구한다 하더라도 안보는 전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일이다. 윤 대통령과 정부의 신중한 접근과 대응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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