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9합의 '효력 정지'되면… 철수 GP 재가동? JSA 재무장?
DMZ 내 군사 활동 '2017년 이전' 수준으로 복귀 가능성
(서울=뉴스1) 박응진 기자 = 정부가 북한의 연이은 무력도발을 이유로 남북한이 지난 2018년 서명한 '9·19 군사 분야 남북합의서'의 효력을 정지하는 방안을 본격 검토하기로 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4일 국가안보실과 국방부·합동참모본부·국방과학연구소(ADD)로부터 북한 무인기 대응 전략을 보고받은 뒤 이 같은 지시를 내렸다.
윤 대통령은 "북한이 다시 우리 영토를 침범하는 도발을 일으키면"이란 단서를 달긴 했으나, 그동안 북한의 9·19합의 무력화 시도가 계속돼온 점을 감안할 때, 북한의 추가적인 합의 위반과 그에 따른 우리 정부의 효력 정지 선언이 이어지면서 남북한의 군사적 대치가 사실상 '9·19합의 이전'으로 되돌아가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북한은 지난달 26일 무인기 5대를 군사분계선(MDL) 이남 우리 영공을 향해 날려보냈다. 우리 군 당국이 북한 무인기의 영공 침범 사실을 공식 확인한 건 2017년 이후 처음으로서 이는 북한의 명백한 9·19합의 위반에 해당한다.
9·19합의엔 MDL 동부 지역(MDL 표식물 제646~1292호 구간)으로부턴 15㎞, 서부 지역(표식물 제1~646호 구간)의 경우 10㎞ 내 지역에서 무인기 비행을 금지하는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에 앞서 작년 10~12월엔 동·서해안 일대에서 '해상 완충구역'(9·19합의에 따라 군사행동을 금지하기로 한 남북한 접경 수역)을 향해 방사포(다연장로켓포) 등을 잇달아 쏘며 수차례 9·19합의를 위반하기도 했다.
서해에선 우리 측 덕적도 이북으로부터 북한 초도 이남까지(약 135㎞), 그리고 동해에선 우리 측 속초 이북으로부터 북한 통천군 이남까지(약 80㎞) 수역이 '해상 완충구역'에 해당한다.
북한은 앞서 9·19합의 뒤에도 △2019년 11월 서해 창린도 포사격과 △2020년 5월 강원도 비무장지대(DMZ) 내 우리 군 감시초소(GP)를 향한 총격 등을 통해 9·19합의를 위반한 사례가 다수 있다.
이와 관련 군 관계자는 이날 "북한의 주요한 9·19합의 위반 사례는 이번 무인기 도발까지 17건, 작년 10월 이후에만 15건"이라고 설명했다.
우리 군은 북한의 지난달 무인기 도발에 따른 '상응조치'로서 유·무인정찰기를 MDL 인근 및 이북 지역에 투입, 대북 정찰활동을 수행토록 했다.
일각에선 우리 군의 이 같은 정찰기 투입 또한 9·19합의 위반에 해당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지난달 28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 출석 당시 "9·19합의는 우리만 지키라고 있는 게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북한의 무인기 도발에 우리 군 또한 자위권 행사 차원에서 해당 조치를 취했단 게 군 당국의 설명이다. 우리 군 당국은 남북한의 한국전쟁(6·25전쟁) 정전협정 준수 여부를 관리 감독하는 주한유엔군사령부 측에도 이 같은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군 관계자는 "9·19합의와 관련해선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해 남북한의 상호 준수가 중요하단 입장을 지속적으로 밝혀왔다"며 "우리 군은 확고한 대비태세를 유지한 가운데 북한의 행보를 예의주시하면서 추가 도발시 9·19합의의 효력 정지를 포함한 필요한 조치를 냉정히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일각에선 '9·19합의 효력 정지'가 현실화될 경우 접경지 일대에서 남북한 간의 우발적 충돌 가능성이 더 커질 수 있단 우려도 제기된다.
남북한은 9·19합의에서 △지상·해상·공중 등 모든 공간에서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중지하고, △비무장지대(DMZ)를 '평화지대'로 만들며, 특히 △서해 NLL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들어 우발적 군사 충돌을 방지하고 안전한 어로활동을 보장하기로 했다.
또 △남북 간 교류협력·접촉 왕래 활성화에 필요한 군사적 보장대책 강구 △상호 신뢰구축을 위한 조치 등이 9·19합의 주요 내용이다. 이 가운데 DMZ의 '평화지대'화는 1953년 7월 한국전쟁(6·25전쟁) 정전협정 당시 설치한 "DMZ의 본래 목적을 구현하기 위한 것"이란 평가를 받기도 했다.
정전협정은 남북한의 군사적 충돌 및 확전을 방지하기 위해 DMZ를 설치하고 병력 주둔 규모 및 무기 휴대를 엄격히 제한토록 했지만, 현재 남북한은 정전협정상에 규정된 것보다 훨씬 많은 인원을 주둔시키고 있다. 휴대무기 또한 협정이 정한 수준을 크게 웃돌고 있는 실정이다.
남북한은 또 9·19합의에 따라 DMZ 내 최전방 GP 11곳의 시범적 철수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 등에도 합의하고 관련 조치를 이행했다.
따라서 9·19합의 효력이 정지된다면 남북한의 DMZ 내 병력 운용이 지금보다 확대되고 JSA 내에서 남북한 병력이 다시 무장 상태로 근무하는 상황이 재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MDL 일대 확성기 방송과 전단 살포를 포함한 군사적 조치가 뒤따를 수도 있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북한이 또다시 무모한 도발을 시도한다면 비례적 수준을 넘어 압도적으로 대응하란 게 윤 대통령 지시사항"이라며 "특히 국군 통수권자로서 북한이 MDL을 넘어 침범해오는 도발을 한다면 '9·19합의'의 정신을 더 이상 살릴 수 없어 '효력 정지'로 맞대응할 수밖에 없단 의지를 밝힌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정부와 군 관계자들은 "9·19합의를 없애는 게 아니라 '효력 정지를 검토하겠다는 것"이라며 북한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합의 준수'임을 강조했다.
pej86@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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